존 그레이켄 론스타펀드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고 24일 출국했다. 대검 중수부는 그동안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아온 그레이켄에 대한 기소여부 판단을 유보하고 1차 조사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그레이켄은 언제라도 검찰 요청이 있으면 다시 입국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검찰이 무죄 또는 면죄 결정을 내린 셈이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지만 25일 언론의 반응은 두루뭉실하다. 대부분 언론이 검찰이 그레이켄에 대해 사법처리를 유보했다는 사실을 단순 전달할 뿐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는 “검찰은 그레이켄이 외국으로 도주한 론스타의 엘리트 쇼트 부회장과 스티븐 리 한국 대표, 마이클 톰슨 법률고문 등과 공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그레이켄을 구속할 정도로 혐의를 파악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23일 “검찰은 그레이켄 측 인사와 쇼트, 리, 톰슨 등이 주고 받은 이메일을 확인해 이들 4명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및 외환카드 주가조작을 위한 계획을 논의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하면서도 검찰이 그레이켄을 그냥 놓아보낸 사실을 비판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24일에도 “쇼트 등 다른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그레이켄의 혐의를 밝히기 위한 수사는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등은 검찰이 그레이켄을 놓아보낸 것과 관련, 쇼트 등이 도주 중이라 더 이상의 수사가 불가능하다는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그쳤다. 그레이켄의 입국부터 다소 단호한 어조의 언론 플레이, 그리고 행방이 묘연한 관계자들에 핑계를 돌리면서 수사가 불가능하다는 너무나도 뻔한 변명으로 이어지는, 애초에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일련의 수사 과정에 대한 비판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매일경제 등 경제지들은 그레이켄의 출국에는 큰 관심을 안 보이면서 오히려 이번 기회에 외환은행의 매각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매일경제는 25일 “오는 4월까지 외환은행을 HSBC에 매각하기로 한 론스타로서는 부담을 덜게 됐다”고 전했다.

매일경제는 “론스타가 한국에서 투자자로서 활동했던 선의가 입증됐기를 바란다”는 그레이켄의 말을 전했지만 정작 그레이켄에게 면죄부룰 준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싣지 않았다. 매일경제는 “검찰이 그레이켄을 기소하지 못했다는 것은 론스타의 유죄를 입증할만한 결정적 증거를 잡지 못했다는 의미”라며 “법원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박탈할 만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은 낮아보인다”는 금융권 관계자의 말을 익명으로 전하기도 했다.

한국경제도 “HSBC의 인수 가능성이 이전엔 20~30%였다면 이제는 60~70%로 뛰었다”는 금융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한국경제는 “검찰의 이번 결정이 사실상 수사중단이며 승소에 이를만큼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분석에서”라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그레이켄이 곧 2차 조사를 받기 위해 입국하기로 했지만 입국하지 않을 경우 그레이켄에 대한 수사가 장기화 할 수도 있다”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한겨레 역시 검찰의 기소 유보 결정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머니투데이는 25일 “검찰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적격성이 없었다는 판단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론스타 면죄부는 아니다?>라는 다소 애매한 제목을 달았다. 서울경제가 “검찰은 아직 이렇다할 방향을 잡지 못하고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검찰을 압박하고 나선 것과 대조적이다. 서울경제는 “HSBC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데 유리한 여건이 형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새 정부가 문제를 풀어주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공판은 장기화될 조짐”이라고 지적했지만 “2월 1일 판결에서 대주주 적격성과 관련해 론스타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면 금융 당국으로서도 HSBC의 외환은행 승인심사를 늦출 명분이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언론이 피상적으로 전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검찰이 그레이켄에 면죄부를 준 것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숱하게 지적돼 온 문제지만 외환은행 헐값 매각의 핵심은 은행법에 근거, 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는 사모펀드가 어떻게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됐느냐데 있다. 당시 금감위는 외환은행이 부실은행은 아니었지만 부실은행에 가까운 심각한 부실이 있어 특례 조항에 의거, 은행법의 예외조항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재판의 핵심은 특례조항을 적용할만큼 당시 외환은행이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리수는 없었는지, 그리고 자본과 관료들의 결탁 또는 금품 수수는 없었는지를 밝혀내는 일이다. 그런데 검찰은 다분히 형식적인 수사와 언론 플레이를 하고 그레이켄을 유유히 놓아 보냈다. 주가조작 혐의야 증거가 없다고 하지만 정작 헐값 매각과 관련한 조사는 아무것도 밝혀진 바 없는데 검찰은 스스로 의지를 꺾어 버린 셈이다. 검찰의 분위기로 볼 때 남은 수사 과정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헐값 매각관 관련한 혐의를 파헤칠 것인지도 의문시 되는 상황이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의 책임자는 그레이켄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니라 사실은 불법을 합법으로 바꿔 무리수를 용인하면서 승인해준 정부 관료들에 있다. 적은 바깥이 아니라 내부, 바로 우리 곁에 있다. 검찰은 이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있다. 제도를 뛰어넘는 것은 정부 관료들의 융통성이다. 왜 우리나라 관료들이 외국 자본에 그렇게 파격적인 융통성을 허용했는지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언론은 막연히 외국 자본에 대한 반감이나 국수주의를 부추길 뿐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의 부작용에 대해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수사중단의 이유가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검찰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만 답변했다. 언론은 이해하기 어려울만큼 관대한 검찰을 비판하지 않았다. 법적 처벌 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추가 수사를 통해 명확히 진상 규명까지는 최소한의 검찰의 책임이지만 검찰은 전혀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26일 성명을 내고 “검찰이 끝까지 론스타 면죄부 주기식 수사로 일관한다면 더 이상 우리는 검찰에 기대지 않고 특별검사 도입을 통한 의혹규명에 나설 것”이라곻 밝혔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검찰의 이번 조처는 사실상 외환은행 재매각을 통한 ‘론스타 먹튀의 완결’을 위한 법률적 장애물을 제거 하는 수순이 아니냐는 우리의 의혹이 전혀 근거 없는 억측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 셈”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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