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빌리는데 한 달에 5만5천원. 담보도 필요없고 복잡한 서류도 필요없다. 사흘 굶으면 부잣집 담도 넘는다는데 전화 한통에 당장 입금을 해준다는 솔깃한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당신의 평온한 일상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다. 사채는 헤어날 수 없는 늪이다. 한번 빠져들면 파국으로 치닫는 수밖에 없다.

학습지 교사 박아무개씨는 지난해 이맘 때 신용카드 대금을 막기 위해 대부업체 문을 두드렸다. 딱 한 달만 쓰고 갚을 생각으로 110만원을 빌렸는데 1년도 채 안 돼서 원금과 이자가 1억8천만원으로 불어났다. 박씨가 사채업자로부터 받은 돈은 선이자 45만원을 떼고 65만원 밖에 안 됐다. 이자는 1주일에 30만원씩, 월 100%가 넘는 살인적인 이자였다.

박씨는 두 달 뒤 이자 280만원을 모두 갚았지만 원금을 갚지 못해 이자를 갚기에도 허덕여야 했다. 그래서 다른 대부업체를 찾아 남편의 자동차를 담보로 잡히고 700만원을 빌렸다.선이자 200만원에 수수료 70만원을 떼고 나니 수중에 들어온 돈은 430만원. 먼저 빌렸던 원금에 이자까지 갚고 나니 80만원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부터 빚으로 빚을 막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그때마다 원금과 이자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고 이제는 평생 벌어도 갚을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사채 이자를 갚지 못해 콩팥이나 신장을 떼어 내거나 술집이나 성매매 업소로 팔려가기도 하고 강도로 돌변하기도 한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놀라운 것은 이런 무지막지한 고리대금업이 법적으로 허용돼 있다는 사실이다. 2002년에 제정된 대부업법은 등록대부업체와 신용카드회사, 상호저축은행 등 여신전문 금융기관의 이자상한선을 70%로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에서 66%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시중 금리의 10배가 넘는다.

연 66%의 이자로 300만원을 빌리면 1년 뒤에 498만원을 물어야 한다. 1년 반이면 이자가 원금만큼 불어난다. 2년 뒤면 원금과 이자가 827만원이 되고 3년째 되는 해에는 1372만원이 된다. 흔히 이자를 갚으려고 다른 대부업체 문을 두드리게 되는데 이자에 이자가 붙으면서 300만원이 3천만원이 되고 3억원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2002년 7월 대부업법이 제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애초에 60%를 상한선으로 제시했는데 국회에서 폐기된다. 60%의 이자율로는 대부업체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어렵고 영업을 중단하거나 지하로 숨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그해 여름 국회에서는 이자상한선을 90%에서 심지어 120%까지 올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이자상한선을 70%로 하되 시행령에서 66%로 낮추는 법안이 통과된다. 2002년 이후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 대부업체들은 대부분 대부업법에 따른 합법적인 업체들이다.

대부업법의 입법과정에서 일부 정치인들이 대부업체들을 비호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는 없다. 분명한 것은 대부업법의 제정 이후 고리대금업이 양성화됐고 대부업체들이 크게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제도권 금융기관들은 대부업체들에게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줬고 저소득 계층은 자연스럽게 대부업체로 내몰렸다.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업체들은 철저하게 이자제한법의 제한을 받았다. 이자상한선을 40%로 제한했던 이 법은 금리 자유화라는 명목으로 폐지됐다가 올해 3월 국회를 통과돼 6월 말부터 시행된다. 이 법에 따르면 이자상한선이 30%로 제한되는데 정작 등록대부업체와 신용카드회사, 상호저축은행 등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 입장은 대부업체의 이자상한선을 무리하게 낮출 경우 대부업체들이 지하로 숨어들고 이자율이 뛰어오르면서 서민들의 자금조달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대부업법을 만들어 66%의 이자율을 보장해줬을 때와 같은 논리다. 등록한 대부업체는 66%로, 등록하지 않은 대부업체는 40%로 제한해 대부업체의 양성화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결국 10년만에 부활된 이자제한법은 개인들 사이의 금전거래를 규제할 뿐 음성적인 대부업체들을 규제하지도 못하고 이자율을 낮추지도 못하는 유명무실한 법이 됐다. 올해 5월 말 기준으로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대부업체는 모두 1만7210개, 무등록 업체까지 합치면 4만여개가 난립하고 있다. 대부업체 이용자는 18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부업법이나 이자제한법은 대부업을 규제하는 법이 아니라 보호하는 법이다.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높은 이자율을 법으로 보장하는 나라는 없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이자율을 연 15~20%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29.2%가 넘으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일본의 대부업체들이 우리나라로 건너온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도 이자 제한을 하고 있는 주의 대부분이 20% 미만의 이자상한선을 두고 있다. 뉴욕주는 6%, 캘리포니아주는 12%가 이자상한선이다. 독일은 시중 금리의 두 배가 넘거나 시중 금리를 12%포인트 웃돌 경우 폭리로 인정한다. 시중금리가 6~11% 수준이니까 최고 23%를 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정부는 최근 대부업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70%로 돼 있는 이자상한선을 60%로 낮추고 시행령에서는 54%까지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노동당과 참여연대 등은 20%까지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급격히 낮추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대부업체들은 자금 조달 비용이 크고 연체율이 높아 66% 미만의 이자상한선으로는 영업을 할 수 없다고 엄살을 부리고 있다. 대부업체들에게 높은 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제도권 금융기관들은 물론이고 정부 역시 대부업체들 편에 서 있다. 시장 경쟁에 맡겨 두면 자연스럽게 금리가 내려간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짚고 넘어갈 부분은 무작정 이자상한선을 낮추는 것이 절대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자가 높더라도 대부업체를 찾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강제로 이자율을 낮추면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들은 더욱 음성적인 지하자금을 찾게 될 것이고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대부업법이 규제하고 있는 연 66%의 이자율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데 있다. 한 달에 200% 이상의 이자를 받거나 신체포기각서 등의 가혹한 조건을 요구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 불법 대부업체들을 규제하고 피해자 구제대책이 따르지 않는 이상 본질적인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대부업피해신고센터가 지난 1년 동안 신고된 630건의 피해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자율 위반이 전체 신고의 65%를 웃돌았다. 연 이자율이 무려 9600%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전체 평균 이자율은 756%로 대부업법의 이자상한선을 10배 이상 웃돌았다. 금감원에 등록된 합법적인 대부업체들이 800% 이상의 이자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이자상한선은 당연히 낮춰야겠지만 정부는 무엇보다도 대부업체들의 불법행위를 엄격하게 단속하고 이들의 부당이득은 몰수·추징해야 한다. 그동안 수수방관해왔지만 채권 추심과정에서 가혹행위도 금지해야 한다. 등록하지 않은 불법 대부업체들도 적발해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 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대부업체들에게도 요구해야 한다.

좀 더 근본적인 대안으로는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소외된 계층을 끌어들일 서민 금융기관을 활성화할 필요도 있다. 주택담보대출에 치중하는 제도권 금융기관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제할 수도 있다. 미국의 지역재투자법처럼 신용공여의 일정비율을 저소득 계층에 지원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저소득 계층에게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거나 고금리 대출을 낮은 금리로 갈아탈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살다보면 누구나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담보도 없고 신용도 없는 저소득 계층에게 제도권 금융기관의 대출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이들은 결국 대부업체를 찾을 수밖에 없다. 대부업체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른 대부업체의 이자를 갚으려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부업체의 문제는 저소득 계층의 금융 소외와 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 문제를 함께 고민할 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도덕적 해이를 경계해야겠지만 합리적인 수준에서 개인회생과 파산제도도 활성화해야 한다. 단계적으로 대부업체의 이자상한선을 낮추되 장기적으로는 저소득 계층을 제도권 금융기관으로 끌어들이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정환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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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1. 연이율 66%일 때 월복리로 계산하면 1년 후에는 498만원보다 훨씬 많은 570만원의 원리합계가 발생합니다. 아무래도 사채업자들은 이자가 더 자주 붙는 월복리계산을 좋아하겠죠.

    얼마전 2ch 개그란에서 20% 이율로 돈을 빌렸는데 한주에 20%씩 이자만 갚고 있다는 글을 (물론 개그입니다!) 본 적이 있는데, 이런 개그를 현실화하는 국회의원들은 정말 몸개그의 달인들인걸까요. 씁쓸합니다.

  2. 사채는 그렇겠지만, 대부업체는 ‘복리’가 아닌 ‘단리’입니다. 전 오래전 사채도 써보고 최근 대부업체돈도 써본 사람입니다. 이정도 사정 되어보지 못한 사람은 잘 모릅니다. 대부업체라도 없었다면, 길바닥에 나앉아버렸을껍니다. 66%…후… 비싼 금리죠. 하지만 그거라도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것 같습니다. 어린분들…세상 호락호락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사십시오. 당신들이 욕하는 대부업체나 사채를 절대 이용하지 않도록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래도 힘든게 세상입니다. 그리고 저처럼 어쩔 수 없이 남의돈 끌어다가 쓰면서 겨우 버티는 사람들 화이팅입니다.

  3. 아주 좋은 글이었습니다..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나름인듯합니다..결국 소비자들이 대부업에 문을 두드린게 이나라의 정책 아닐까 싶네요..우리같은 서민들은 은행에서 대출할려면 진짜 어떤 목적이 있지않는한 많음 금액을 대출하기가 어렵습니다.그리고 정말 무지 넘 급해서 사용을 할려고 해도 많은 절차를 걸쳐야 합니다..그리니깐 솔직히 조금 이라도 단기간 사용을 할려면 절차가 간단한 대부업의 문을 두르리게 되는겁니다..본인이 의식만 재대로 있다면 대부업 결코 나쁘지는 않습니다..저도 한두번은 이용 했습니다..무이자라는 말에 이용을 하기는 했지만 결코 언론에서 떠드는 그런 피해는 당하지 않았습니다.30일동안 잘쓰다 갚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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