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4년째 적자를 내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이를 지적하고 비판하기는 했지만 정작 적자의 근본 원인에 대한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은의 적자는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정책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비용이다. 환율 방어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 붓고 있는 정부는 물론이고 이를 비판하는 여당이나 언론조차도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27일 윤건영 한나라당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은은 올해 상반기 5634억원의 적자를 냈다. 유가증권과 예치금 이자 등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6조2057억원, 통화안정증권 이자와 예금 이자 등으로 나간 지출이 6조7691억원에 이른다. 올해 적자 규모는 1조2310억원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4년 연속 적자가 계속되면서 적립금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것. 2003년말 6조원에 이르던 적립금이 지난해 말 1조9970억원으로 줄어든데 이어 올해는 7660억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규모로 적자를 기록한다면 적립금이 바닥나는 것은 물론이고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줘야 할 상황이다.

한은의 적자는 통화안정증권과 외국환평형기금의 이자 부담이 원인이다.

정부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대규모 환율 방어 전략을 폈다. 환율 방어를 위해서는 민간부문으로부터 달러를 사들여야 하는데 이때 대규모로 원화가 시중에 풀리게 되므로, 한국은행은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통안증권을 발행해서 시중에 풀린 원화를 다시 흡수하게 된다. 달러화 약세가 계속되면서 통안증권의 발행 규모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이자 비용도 계속 늘어난 상황이다.

외평기금 이자 비용 역시 한은 적자의 또 다른 주범이다. 재정경제부와 한은은 약정에 의해 외평기금 중 한국투자공사 투자분을 제외한 전액을 한은에 예치하고 미국 국채수익률의 이자를 보장하도록 되어 있는데, 외평기금이 늘어날수록 한은의 이자비용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통안증권 이자지급액은 6조8063억원, 한은의 전체 비용 11조9563억원의 56.9%에 이른다. 또한 외평기금에 지급하는 이자비용도 2조3379억원으로 전체 비용의 19.6%에 이른다. 둘을 더하면 76.5%. 올해는 이 비율이 78.5%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윤 의원은 “한국은행 적자는 국민의 세금부담을 직․간접적으로 증가시킬 뿐 아니라, 한국은행이 소신 있는 통화금융정책을 펴는 데도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또 “정부 재정이 투입된다면 중앙정부로부터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는 여지도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건영 의원실 이정 보좌관은 “정부의 환율 시장 개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 운용을 비용 편익 분석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집행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보좌관은 또 “그 과정에서 판단착오가 있다면 책임 소재를 가리고 원인 규명을 해야 할 텐데 재경부와 한은은 숨기기에 급급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전창환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전 교수는 통안증권과 외평기금의 합리적인 운용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정부의 환율 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은의 적자는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등 수출 대기업을 키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출한 비용이다.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를 우리나라 정부가 방어할 수 없다는 건 너무나도 분명한 현실이다. 정부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수출 대기업들을 노골적으로 밀어줬다. 그 결과 외국인 투자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우리 기업들 주식을 사들였고 기업들 수익의 상당부분을 배당으로 빼내가고 있다. 결국 환율이 하락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시세차익에 환차익까지 얻고 있다.”

환율 조작은 원화가치를 낮춰서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의도라는 게 환율 개입에 반대하는 주장의 핵심이다. 이를테면 수출 총액이 수입 총액보다 100억달러 많은 기업이라면 만약 정부의 개입으로 달러화 환율을 10원 높일 경우 앉은 자리에서 1000억원의 추가 수입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은 수입 물가가 높아져 부담을 안게 된다. 무작정 높은 환율이 좋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중앙일보 등의 비판은 이런 맥락이 빠져 있다. 한은의 적자를 비판하면서 왜 적자를 내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환율 방어에 나서는 과정에서 투기세력들에게 차익거래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개입으로 원화 대비 달러화 가치가 적정수준보다 높게 유지되면 투기꾼들은 더 적극적으로 원화를 사들이게 된다.”

그러나 달러화 가치 하락이 계속되면 환율을 방어하는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투기세력들은 막대한 환차익을 얻게 된다. 수출 대기업을 밀어주는 과정에서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고 결국 혈세를 외국계은행 국내 지점에 몰아주는 결과가 된다는 이야기다.

이 보좌관도 이를 인정한다. 밀물과 썰물에 단기적으로 반응할 수는 있겠지만 달의 만유인력 자체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의 환율 조작은 한계가 분명하고 투기세력과의 싸움은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전 교수는 환율 방어의 대안으로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 차원에서 환율 공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동아시아 공동통화나 IMF에 대항할 AMF(아시아 통화기금) 등의 논의도 무르익고 있다. 울며겨자먹기로 달러화 가치 하락에 묶여 있는 답답한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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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아 그렇군요..
    여기 오면 그동안의 궁굼증들이 해도 되는 느낌 입니다.
    아주 잘 보고 있습니다.. 이런 글들이 진정한 언론과 기자들이 할일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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