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하는 게 좋을까, 안 하는 게 좋을까,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언론조차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부실의 핵심인 건설업이나 여기에 발목이 잡힌 금융업이나 뭔가 구조조정이 필요할 것 같긴 한데 이게 또 10년 전 외환위기 때와 달리 당장 문 닫게 만들 기업을 골라내기가 쉽지 않다. 4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중앙 일간지 경제부장들과 모임에서 지적한 것처럼 10년 전에는 곪을대로 곪은 상처를 도려냈다면 지금은 아직 멀쩡한 기업을 퇴출시켜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다.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에는 부채비율이 400%를 넘거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에 미달하는 은행 등 이미 부실이 심해 수술대에 오른 기업이나 금융기관을 정부가 수술하기만 하면 됐지만 지금은 기업의 부채비율이 평균 90%이고 은행의 BIS 비율은 10%가 넘어 상황이 다르다.” 강 장관은 “아직 정부 주도 구조조정은 필요없는 상황”이라면서 “필요할 경우 민간부문에서 구조조정하고 정부는 뒤에서 지원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장관의 이날 발언은 과거 김대중 정부 때부터 추진해 왔던 이른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한계와 딜레마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10년 전에는 대기업 부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 금융 불안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구조조정을 통한 재무 건전성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면 최근에는 부실의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실현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위험한 상황인 건 분명하지만 당장 부실을 도려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강 장관의 주장이고 주요 언론이 모두 동의하고 있는 관점이다.
금융위원회가 저축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실태를 조사한 결과, 89개 저축은행의 899개 대출 사업장 가운데 PF 대출이 모두 12조2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대출의 25% 수준인데 이 가운데 연체가 있는 곳이 210개, 금액으로는 1조7천억원 규모였고 악화 염려가 있다고 판단된 곳이 189개, 1조4640억원 정도였다. 정부는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부실우려가 있는 164개 사업장의 1조3000억원 규모 채권을 매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향후 부동산 시장의 전망에 따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이 불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의 저축은행 지원은 무모한 도박일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의 추가 하락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언론의 구조조정 관련 논의도 핵심이 빠져있다. 대부분 언론이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이나 경착륙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10월 중순 이후 이달 1일까지 12조8천억원 이상 유동성을 지원했지만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면서 신용경색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정부가 아무리 유동성 지원 대책을 내놓아도 추가 부실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굳이 모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실을 선제적으로 털어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 될 수밖에 없다.
피를 흘리지 않고 생살만 도려낸다는 논리인 셈인데사실은 피도 살도 도려낼 생각이 없음을 의미한다. 최근 언론의 구조조정 논의에는 막연한 원론만 있을 뿐 정작 실천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부실 건설사 몇 개와 부실 저축은행 몇 개 문 닫는 건 오히려 쉬운 일이다. 건설업 전반에 걸친 거품을 드러내고 부동산 가격 인하를 유도해 부실을 현실화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 되겠지만 정부나 언론이나 거기까지 손을 댈 생각이 없는 듯하다.
10년 전과 다른 점이라면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밀어붙였지만 지금의 위기는 자본의 이익 기반 자체가 구조조정의 대상이다. 이런 맥락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털어내고 적당히 은행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도는 본질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적당히 보여주기 위한 퇴출로는 부족하고 주가 폭락에 맞먹을 부동산 가격 현실화가 필요하고 자연스럽게 그에 따른 부실 정리가 뒤따라야 한다. 살을 도려내려면 피를 흘리는 걸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게 아니라면 한갓 말장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