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진짜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박대성씨를 체포한 때가 지난달 8일, 박씨는 이튿날인 9일 자신은 신동아에 기고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신동아가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자들의 문의 전화가 쏟아졌지만 신동아는 2월호에서 밝히겠다면서 답변을 미뤘고 1주일 남짓 지나서 17일 발간된 2월호에 K씨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미네르바는 7명의 전문가 그룹이며 박씨와는 무관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신동아의 K씨 인터뷰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첫째, 7명의 자칭 미네르바 그룹은 왜 굳이 IP주소를 공유하는 등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을까. 이들이 그룹으로 활동하면서 1명인 것처럼 행세할 이유가 있었을까. K씨의 주장이 맞다면 이들은 미네르바가 유명세를 타기 훨씬 전부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행동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IP 공유도 가능하긴 하지만 매우 복잡하고 번거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K씨는 어떻게 자신들이 박씨의 집 IP주소를 쓸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만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는데 2월호 발간 직후 미네르바가 쓴 글이 모두 박씨의 다음 ID로 로그인한 뒤 작성됐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박씨가 자신의 ID를 도용했거나 이들이 박씨의 ID를 도용했을 때만 가능한 일인데 둘 다 설득력이 떨어진다.
셋째, K씨는 박씨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으면서도 멤버들 가운데 연락이 두절된 한명이 박씨를 시켜 글을 올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멤버가 언제부터 사라졌는지, 그리고 그 뒤 이들은 어떻게 박씨의 ID로 글을 올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넷째, 그러면서도 이들은 정부가 달러 매수를 금지하는 공문을 금융기관 등에 보냈다는 문제의 12월29일 글은 자신들이 쓴 것이 아니라고 발뺌을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신들 멤버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계속 자신들을 사칭해 글을 올리는데도 왜 이를 방관했을까. 왜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을까.
다섯째, 결정적으로 K씨는 자신들이 진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면서도 박씨의 체포 직후 미네르바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한번이라도 글을 올리면 깔끔하게 자신들이 진짜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들은 직접 모습을 드러내 인터뷰까지 하면서도 더 순쉬운 방법은 쓰지 않았다.
그렇다면 신동아 기자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런 상식적인 의문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했으면서도 그냥 넘어간 것일까. 송문홍 편집장이 직접 K씨를 인터뷰하는 자리에는 2명 이상의 신동아 기자들이 합석해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아는 2월호 발간 이후에도 의혹이 계속 쏟아지자 3월호에 밝히겠다고 시간을 벌었으나 결국 K씨가 가짜라는 사실을 시인했다.
향후 진상 조사를 지켜봐야겠지만 현재 시점에서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단 신동아가 처음부터 가공의 인물을 미네르바로 내세웠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금방 들통날 게 뻔한 너무 엄청난 모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난해 12월호에 K씨의 기고문을 받았을 때만 해도 K씨가 진짜 미네르바라고 확신했을 가능성이 크다.
박씨가 체포된 직후 2월호를 출간하기까지 1주일 동안 신동아 기자들은 K씨를 다각도로 취재했다. 첫 번째 가능성으로는 K씨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속아 넘어갔을 수도 있다. 두 번째 가능성으로는 자신들의 오보를 적당히 덮고 넘어가기 위해 미심쩍은 부분을 자세히 캐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이외의 다른 가능성은 상상하기 어렵다.
12월호 기고문이 부주의에 의한 실수였다고 한다면 2월호 인터뷰는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신동아는 취재의 기본조차 방기했거나 국민들을 의도적으로 속였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경우든 이 사건이 갖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면 신동아는 사운을 건 치명적인 대국민 사기극을 저지른 셈이다.
기자들에게도 함구, 신동아 편집장의 이상한 행보.
“가짜라고 생각한 기자들도 있었다” 고의적 조작 가능성도.
신동아 기자들은 17일 아침 동아일보가 “신동아 K씨는 가짜였다”는 내용의 사고를 1면에 내보낼 거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날이 신동아 3월호가 발간되는 날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 기자는 전화를 받고 나서야 인터넷을 보고 확인을 했다고 했다. “월간지의 특성상 다른 기자들 기사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지만 이 사건에 쏠린 사회적 관심을 감안하면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이었다.
신동아는 “16일 동아일보 최맹호 이사를 중심으로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출간 직전까지 오보 인정과 사과 여부를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고위 간부인 최 이사가 직접 진상규명위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동아일보가 이번 사태를 심각한 비상 국면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신동아 편집장과 기자들이 K씨가 가짜라는 사실을 언제 알게 됐느냐로 집중될 전망이다.
복수의 신동아 관계자들에 따르면 처음 K씨와 접촉하고 기고문을 받아온 것은 송문홍 편집장이었다. 신뢰할 수 있는 금융권 인사를 통해 K씨를 소개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송 편집장은 그가 누구인지 기자들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송 편집장은 1월7일 진짜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박대성씨가 경찰에 체포되고 난 뒤에야 K씨를 기자들에게 소개했다. 적어도 K씨가 100% 허구의 인물은 아닐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신동아 편집국에서 진행된 2월호 인터뷰에는 송 편집장과 2명 이상의 기자들이 배석해 K씨의 주장을 검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신동아가 K씨가 가짜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면 이 시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 관계자는 “K씨의 신원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결과 진짜 미네르바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고 말했지만 다른 관계자는 “기자들이 모두 K씨가 진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송 편집장은 2월호 발간 이후 기자들에게도 극도로 보안을 지켜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신동아에서 인터뷰 요청이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도 송 편집장은 “박씨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 사실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진짜 미네르바를 접촉할 수 있는 1차적인 경로인 포털 사이트 다음을 통하지 않고 왜 굳이 사적인 경로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진상 조사를 지켜봐야겠지만 2차례에 걸쳐 치명적인 오보를 낸 것으로 판명된 이상 송 편집장을 비롯해 책임자 중징계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송 편집장은 17일 미네르바 오보에 대한 경위를 묻자 “본사 경영전략실로 창구를 단일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경영전략실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돼 조사 중인데 결과가 나오면 공개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