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지만 나는 박근혜 연대론이나 현정은 지키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그것도 여성운동의 한 전략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을 비판하지 않는다.

최근에 드는 생각은 중산층 여성운동도 여성운동의 한 갈래일 수 있고 좌파 운동과 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여성주의의 큰 방향에서 좌파 여성운동과는 서로 연대할 지점이 있지 않을까. 사안에 따라 얼마든지 서로 연대할 수도 있고 전선이 그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맥락에서 김규항 같은 좌파 진영에서 중산층 여성운동을 비판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의 비판은 일리가 있고 그가 남성인 것과 자칭 얼치기 여성주의자인 것은 비판의 자격과 무관하다. 비판할 자격을 따지는 것은 좀 치졸한 일이다.

그러나 김규항과 일다의 전선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김규항은 중산층 여성운동을 비판하지 않는 좌파 여성운동을 비판했고 일다는 그런 비판을 여성운동이 보수화하고 있다는, 여성운동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였다. 얼핏 좌파 여성운동이 중산층 여성운동을 감싸고 도는 모양새다.

일다는 그동안 여성운동 내부에서 중산층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이 충분히 있었다고 반박했지만 김규항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여성운동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김규항이 난데없이 비판이 없었다고 비판하고 나서는 것은 좀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고 부당해 보일 수도 있다.

문제는 여성운동의 보수성을 비판하는 전선이 여성운동과 가부장주의의 전선으로 변질된다는데 있다. 비판을 해도 우리가 한다. 우리는 비판할 수 있지만 너희는 비판하면 안된다는 전선이다. 여성운동의 보수성에 대한 비판은 결국 여성운동에 대한 공격으로 왜곡돼 해석되고 김규항은 어쩔 수 없는 가부장주의자로 매도된다.

이런 전선에서 기꺼이 좌파 여성운동은 중산층 여성운동을 끌어안고 김규항과 맞선다. 최근의 논란은 언뜻 외부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스럽고 폐쇄적인 태도로 비춰질 수도 있다. 김규항은 얼떨결에 순교자가 된다.

여성운동의 전선은 일상의 곳곳에 있다. 나는 일다가 여성운동을 대변한다고 보지 않고 마찬가지로 박근혜 연대론이나 현정은 지키기도 여성운동의 한 갈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여성운동의 최전선은 오히려 일상이라고 본다. 김규항이 나름대로 스스로를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할 것이다.

나는 일상의 최전선에서 실제로 많은 여성과 남성의 의식 가운데 김규항이 비판한 중산층 페미니즘의 논리가 파고 들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판의 방식에 문제는 있지만 그렇다고 비판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김규항은 분명히 얼치기 여성주의자고 또 상당부분 가부장주의자일 수도 있지만 그를 배제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현정은 지키기에 나서는 사람들 못지않게 여성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 아닐까.

다시 정리하면, 여성운동와 좌파 운동은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지만 그 정치적 지평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깊이 들어가면 중산층 여성운동과 좌파 여성운동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연대할 부분과 비판할 부분이 있고 때로는 서로의 전선을 존중할 필요도 있다. 그걸 넘어서면 소모적인 논쟁이 된다.

참고 : 시민의 신문 인터뷰. (김규항의 블로그)
참고 : 여성주의와 진보운동의 연대.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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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omments

  1. 이정환에게 질문한다. 1

    기본부터 하나씩하나씩 해 보자.

    중산층 여성운동의 실체가 무엇인가?
    그 여성운동의 주체가 어떤 단체들인가?
    여연인가?
    여연이 중산층 여성운동인가?
    그렇다면 왜 “중산층” 여성운동인가?
    답변하기 바란다.

    호주제 폐지는 중산층 여성운동인가?
    자유주의 페미니즘인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인가?

  2. 이정환님께서 남기신 글입니다.
    : 철저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지만 나는 박근혜 연대론이나 현정은 지키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그것도 여성운동의 한 전략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을 비판하지 않는다.

    물론 “여성”운동이다.
    그 운동에서 여성들이 다수를 차지해서 “여성”운동이라 하는가?
    하지만 박근혜 지키기는 여성주의가 아니다.
    현정은 지키기는 여성주의가 아니다.

    그것이 너에게 중산층 여성운동이라면,
    그것은 또한 자유주의 페미니즘도 아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정치와 관련되어
    예를 들면 할당제 주장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여성운동이라면
    그것은 여성(주의)운동을 지시한다.

    그런데 이것을 누가 여성운동이라고 명명했나?
    누가 여성운동의 정의에 과부하를 걸었나?
    누가 여성운동을 팬티 고무줄처럼 늘렸나?

    1) 가부장 언론
    2) 김규항
    3) 이정환

    이건 어떻게 생각하나?

  3. 이정환에게 질문한다. 3

    이번 글은 따옴표를 잘 구별해자.
    “여성”운동은 여성이 하는 운동이고,
    여성운동은 일반적인 여성(주의)운동을 일컫는다.

    : 이정환이 썼다
    : 최근에 드는 생각은 중산층 여성운동도 여성운동의 한 갈래일 수 있고 좌파 운동과 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여성주의의 큰 방향에서 좌파 여성운동과는 서로 연대할 지점이 있지 않을까. 사안에 따라 얼마든지 서로 연대할 수도 있고 전선이 그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중산층 여성운동도 여성운동의 한 갈래일 수 있고”

    이렇게 말하는 순간 비판하는 사람도 답이 안 나온다.
    실타래를 풀어보자.

    가부장 담론이 정의한
    중산층 여성운동이 있다면
    그 이름 자체에서 – 여성운동이란 말이 있으니까,
    가부장 담론에서는
    당연히 여성운동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운동은 여성운동이다라는 자명한 진리이다.

    그런데 이 자명한 것을
    정환이는 한 갈래일 “수가 있다”고 말한다.
    이전까지는 한 갈래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부장적 담론의 중산층 여성운동은
    페미니즘 담론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인가?
    그렇다면 가부장적 담론에서든 페미니즘 담론에서든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당연히 여성운동이다.
    한 갈래일 수가 있다고 얘기할 계제가 못된다.

    그렇다면 이정환은 왜 갈등하면서
    문장이 성립하지도 않는 말을 했을까?

    1) “갈래일 수 없다”의 경우.

    정환이가 이전에 갈래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중산층 여성운동이란 단어를 사용할 망정,
    그것의 내용을 가부장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 “갈래일 수 있다”의 경우

    이 경우에는 또한 각각 두가지 경우가 혼용되어 있다.
    첫번재는 중산층 여성운동은 여성이 하는 운동이므로,
    “여성”운동이고 또한 여성운동이다.
    두번째는 중산층 여성운동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가깝고,
    따라서 여성운동이다.

    김규항이나 이정환이나
    이런 혼란스런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

    페미니즘 담론에서는
    박근혜 지지와 현정은 지키키는
    가부장적 “여성”운동이며,
    따라서 여성운동이 아니며 또한 여성주의도 아니다.
    가부장적 “여성”운동이란 공허한 개념을 사용할 필요없이,
    즉, 박근혜 지지와 현정은 지키기는
    가부장 운동이며,
    따라서 여성운동이 아니며 또한 여성주의도 아니다.

    그리고 예를 들면, 할당제나 호주제 폐지의 경우,
    이미 진보운동과 연대하고 있다.

  4. 이정환에게 질문한다. 4

    : 이정환이 썼다
    : 그런 맥락에서 김규항 같은 좌파 진영에서 중산층 여성운동을 비판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의 비판은 일리가 있고 그가 남성인 것과 자칭 얼치기 여성주의자인 것은 비판의 자격과 무관하다. 비판할 자격을 따지는 것은 좀 치졸한 일이다.

    무엇이 상식적인가?
    좌파가 아무 이유없이 중산층이기 때문에 비판해서는 안된다.
    중산층은 이념적인 개념이 아니다.
    좌파가 여성주의를 비판한다.
    이것도 상식이 아니라 허술하고 추상적인 문장이다.

    좌파가 우파를 서로 비판한다.
    여성주의가 가부장제를 서로 비판한다.
    이런 것은 상식이다.

    박근혜 지지와 현정은 지키기는
    그것이 중산층 여성운동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수구적(<우파)이며 가부장적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페미니즘 지지자인 김규항은
    수구에 반대하는 좌파로서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페미니즘 지지자로서
    그것을 동시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지지자로서
    그것을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김규항이 제대로만 말하고 있다면,
    – 중산층 여성운동 운운하는 헛소리 하지 않으면서 –
    여기까지는 김규항의 신념으로써는 옳은 것이다.

    그가 남성이든, 얼치기 여성주의자든
    그것이 김규항이 신념이므로
    여기까지는 옳다.

    여기까지는 누가 뭐라 하는가?
    김규항보고 현정은 지지 비판하지 말라는 사람이 있던가?
    누구냐?
    도대체 비판의 자격을 따지는 자가 누구인가?
    그가 남성이라서 누가 현정은 지지 비판을 하지 말라고 하던가?
    그가 얼치기 여성주의자라서 누가 현정은 지지 비판을 하지 말라고 하던가?
    이정환은 이름을 대기 바란다.

    현정은 지키기와 박근혜 지지에 대해 임의로 “중산층 여성운동”과 “주류 여성운동”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 자칭 페미니즘 지지자인 김규항은 그러한 개념으로 여성운동에 오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다.

    김규항이 자기 신념에 투철하다면 김규항은 그것에 대해 여성이 하는 “보수적 가부장 운동”이라고 명명하고 비판에 임하는 것이 양심적인 것이다. 도대체 김규항이 생각하는 여성운동과 여성주의가 무엇인가?

    박근혜 지지를 자신은 여성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것에 자신이 신조어로 “여성운동”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5. 이정환에게 질문한다. 4

    : 이정환이 썼다.
    : 그러나 김규항과 일다의 전선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김규항은 중산층 여성운동을 비판하지 않는 좌파 여성운동을 비판했고 일다는 그런 비판을 여성운동이 보수화하고 있다는, 여성운동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였다. 얼핏 좌파 여성운동이 중산층 여성운동을 감싸고 도는 모양새다.

    좌파 여성주의는 또 무엇인가?
    좌파 여성주의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인가?
    그렇다면 일다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아니며,
    정확하게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한정되지 않으며,
    따라서 좌파 여성주의가 아니다.
    하지만 그 좌파라는 것이 여성주의에서의 왼쪽,
    기존의(또는 보수적) 여성주의 또는
    여성주의에서의 보수성을 비판하는 의미라면,
    일다는 좌파 여성주의가 될 것이다.
    일다는 분명 여성주의 내부에서 왼쪽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남성 너그들이 왜 이렇게 신조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냐?

    김규항과 이정환은 사태파악을 못 하고 있다.
    박근혜 지지를 보자.
    좌파진영 내부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그것에 비판적이다.
    예를 들면,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
    좌파진영 외부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도 그것에 비판적이다.
    예를 들면, 여성해방연대.
    여성주의에서 왼쪽도 그것에 비판적이다.
    예를 들면, 일다 그룹.
    여성주의에서 오른쪽도 그것에 비판적이다.
    예를 들면, 이프 그룹.
    그리고 여연마저도.

    여성운동 모두가
    그것의 가부장성을 나름의 담론장에서 비판을 수행했다.
    그런데 비판하지 않았단다.
    말지에 걸려들었던 최보은이
    여성해방연대 간담회에서 얼마나 비판받았나?

    더우기 여성운동의 왼쪽 그룹은
    박근혜 지지 비판을 넘어서,
    여성정치세력화에서의 보수적 흐름과
    엘리트 편향도 비판해왔다.
    여성신문 사장이 한나라당인가 민주당인가 가서,
    기자들이 사표내고 일다 만들지 않았나?

    여성운동 오른쪽을 비판하면서
    여성운동 왼쪽은 성장하고 있다.
    일다, 여성해방연대, WOW, 한국여성노동자협회, 장애여성공감,
    언니네, 다닮연대, 끼리끼리, 기존 여성단체들의 실무자들 등등.
    이렇게 여성운동의 왼쪽 진영은 성장하고 있는데,
    김규항은 이런 흐름을 거세하고 괄호치고
    헛발질을 해대고 존재를 지우면서,
    결국은 찬물과 오물을 끼얹는다.
    가부장적 시선으로 여성운동을 재단한다.

    “좌파 여성운동이 중산층 여성운동을 감싸고 도는 모양새다.”

    일다가 현정은 지지자와 박근혜 지지자를 감싸고 도는 모양새다?
    이런 말은 모양새란 말을 붙여도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좀 더티한” 이미지 메이킹이다.
    김규항이나 이정환이나 이런 말을 아무렇게나 해버린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시간나면 비판하겠다.

    김규항이 자칭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할 일은
    여성운동 왼쪽에 힘을 싣는 일이지
    그들의 존재를 지우는 일이 아니다.

    김규항에 대한 비판은
    1) 현정은 지키기와 박근혜 지지를 비판하는 방식 – 비판하면서 여성운동을 끌어들이는 방식에 대한 비판,
    2) 여성주의를 바라보는 시선에 비판, 즉 여성운동을 재단하고 왜곡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6. 이정환에게 질문한다. 6

    : 일다는 그동안 여성운동 내부에서 중산층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이 충분히 있었다고 반박했지만 김규항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여성운동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김규항이 난데없이 비판이 없었다고 비판하고 나서는 것은 좀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고 부당해 보일 수도 있다.
    : 문제는 여성운동의 보수성을 비판하는 전선이 여성운동과 가부장주의의 전선으로 변질된다는데 있다. 비판을 해도 우리가 한다. 우리는 비판할 수 있지만 너희는 비판하면 안된다는 전선이다. 여성운동의 보수성에 대한 비판은 결국 여성운동에 대한 공격으로 왜곡돼 해석되고 김규항은 어쩔 수 없는 가부장주의자로 매도된다.

    1) 김규항은 현정은 지키기를 비판하면서 여성운동을 왜곡해서 끌어들였다.
    2) 김규항은 여성운동을 왜곡하고 재단했다.
    3) 그것은 김규항의 가부장성이다.
    4) 여성주의자들은 그것을 비판했다.
    5) “김규항의 가부장성에 대한 비판”이 이정환의 시각에선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도 김규항은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왜곡된다.

    6) 김규항이 신이냐?
    (이정환의 글의 뒷부분에는 김규항이 순교자라는 표현도 나온다)
    7) 김규항의 가부장성은 비판할 수 없는거냐?
    8) 남성 느그들은 느그들의 가부장성을 비판하면 왜 이런 말도 안되는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냐?

  7. 이정환에게 질문한다. 7

    : 이런 전선에서 기꺼이 좌파 여성운동은 중산층 여성운동을 끌어안고 김규항과 맞선다. 최근의 논란은 언뜻 외부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스럽고 폐쇄적인 태도로 비춰질 수도 있다. 김규항은 얼떨결에 순교자가 된다.

    이제는 모양새가 아니라,
    조이여울이 현정은 지키기 지지자를 아예 “끌어안”는다.
    조이여울이 박근혜 지지자를 아예 “끌어안”는다.
    조이여울은 그것 때문에 사표 쓰고,
    일다를 만든 사람이다.
    지금까지 조이여울의 현정은 지키기 비판과 박근혜 지지론 비판은,
    거짓이었고 포즈였고 쇼였단 소린가?
    김규항이나 이정환이나 이런 마타도어를 서슴치 않는다.

    김규항의 가부장성은 성역이라서,
    김규항의 가부장성을 비판하면
    현정은 지지자와 박근혜 지지자를 끌어안고
    김규항과 맞서는 것이 된다.

    그리고는 드디어 외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전형적인 저널리즘의 선동적 글쓰기다.
    “여성주의자들은 김규항이 현정은 지키기를 비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는
    이정환의 주장(내 입장에선 마타도어)를,
    있지도 않고 확실하지 않은 외부사람들을 끌어들여 강화한다.
    카더라 통신.

    그리고 김규항이 순교자가 된단다.
    멋부리지 말고 솔직하게 쓰자.
    이것은 이정환의 머릿 속에서 나온 것이다.
    이정환에게 김규항이 순교자인 것이다.
    김규항은 이제 이정환에게선 순교자가 되버린다.

  8. 이정환에게 질문한다. 8

    : 여성운동의 전선은 일상의 곳곳에 있다. 나는 일다가 여성운동을 대변한다고 보지 않고 마찬가지로 박근혜 연대론이나 현정은 지키기도 여성운동의 한 갈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여성운동의 최전선은 오히려 일상이라고 본다. 김규항이 나름대로 스스로를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할 것이다.

    여성주의는 “일상”에서부터
    성차별주의로 인한 억압과 착취를 종식시키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여성운동은 가장 중요한 구호가 무엇인가?
    “사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이정환은 도대체 여성주의를 지금까지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가?
    김규항을 자칭 여성주의자로 만들기 위해,
    여성주의의 과거엔 일상이 없었던 것으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이정환, 드디어 일상을 발견한다.
    이런 발화 방식은 오만이고 몰이해이다.

    이 사람아.
    일상이 없으면 여성주의는 성립자체가 안 되는 것이란다.
    하나하나 짚고 있으면 네가 쓴 글은 실타래와 같다.
    여성주의가 뭔지 진득하게
    공부도 좀 하고 생각도 좀 하고 그러자.

  9. : 이정환이 썼다.
    : 나는 일상의 최전선에서 실제로 많은 여성과 남성의 의식 가운데 김규항이 비판한 중산층 페미니즘의 논리가 파고 들고 있고 여기서 비롯한 여성운동에 대한 오해도 많다고 생각한다. 비판의 방식에 문제는 있지만 그렇다고 비판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정말 알고 싶다.
    중산층 페미니즘의 논리란 것이 무엇이냐?
    현정은 지키기와 박근혜 지지론이 중산층 페미니즘이냐?
    그런데 그것을 중산층 페미니즘이라고
    페미니즘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여성주의자들이 아니라,
    바로 이정환, 김규항, 가부장 언론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만들어낸 페미니즘이 일상에 침투해서
    가부장성을 강화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가부장성을 강화하는데 왜 거기에 페미니즘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는가?
    페미니즘이란 가부장성을 강화하는 것인가?

    박근혜 지지론과 현정은 지지론이 생기는 토양은
    한국 사회의 우편향성과 가부장제이다.
    그것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그런데 그 가부장성과 우편향성이
    이정환의 글에서는 페미니즘의 책임이 된다.
    이렇게 전혀 논리가 안 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다.

  10. 이정환에게 질문한다. 10

    : 이정환이 썼다.
    : 김규항은 분명히 얼치기 여성주의자고 또 상당부분 가부장주의자일 수도 있지만 그를 배제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현정은 지키기에 나서는 사람들 못지않게 여성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 아닐까.

    현정은 지키기 지지자가 이해하든
    김규항이 실천하든 비판과는 별개의 사안이다.
    현정은 지키기의 가부장성, 김규항의 가부장성,
    모두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 이정환이 썼다.
    : 다시 정리하면, 여성운동와 좌파 운동은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지만 그 정치적 지평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깊이 들어가면 중산층 여성운동과 좌파 여성운동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연대할 부분과 비판할 부분이 있고 때로는 서로의 전선을 존중할 필요도 있다. 그걸 넘어서면 소모적인 논쟁이 된다.

    가부장 담론에서의 중산층 여성운동,
    즉, 페미니즘 담론에선 여성이 하는 가부장 운동과
    여성주의나 좌파나 연대할 부분은 거의 없다.

    좌파와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연대할 부분이 있다.
    지금도 좌파와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많은 사안에서 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가부장성이 완화되는 만큼,
    앞으로 이 둘은 비판적일 수 밖에 없다.

    한편 여성운동은 이전의 여협 / 여연 구도에서,
    여협은 “여성” 운동이 되었고,
    여성운동의 왼쪽 진영이 분화하고 있다.
    그러한 일련의 상황에서
    김규항과 같은 일부 진보남성들은 여성운동을 왜곡하고 있고,
    여성주의는 진보남성들의 가부장성을 비판하고 있다.

    좌파는 자신의 가부장성과
    현정은 지키기와 같은 보수적 가부장 운동을 비판해야 하고,
    그것은 또한 여성운동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여성운동 내부에도 문제가 많이 있을 것이다.
    여성운동 내부나 여성운동 외부나
    이것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열려있는 것이다.

  11. 이렇게 긴 질문에 단 한 줄의 답변도 없다니…
    오만함인가 비겁함인가 아니면 무관심이나 무시인가…
    그게 무엇이든 좋아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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