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가까이 파업을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에 정리해고와 공권력 투입이 예고됐던 8일 오전, 쌍용차 평택 공장은 기자들로 가득했다. 이미 1천여명의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 통보가 된 상태고 이날부터 효력이 발생할 예정이었지만 쌍용차 공동관리인은 일단 정리해고를 유예했다. 이에 따라 공권력 투입도 일단 미뤄진 상태다. 이에 앞서 7일 노사정협의회에서 사쪽은 노동조합의 파업 해제를 전제로 정리해고 유예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한바 있다.

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리해고 유예가 아니라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한상균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은 “노조는 그동안 1천억원의 담보를 제공하고 비정규직 기금 12억원을 출연하는 것을 비롯해 일자리 나누기 등 회생 방안을 제출하면서 정리해고를 막으려고 노력했으나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면서 “이는 고용보장을 전제로 한 회생방안이었는데 이미 1700명 이상이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퇴직 당한 상태에서 전제가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이창근 노조 기획부장은 “기자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지난 5월4일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다”면서 “이는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언론은 늘 파업 앞에 불법이라는 말을 붙인다”고 지적했다. 이 부장은 “지금 쌍용차의 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권리”라면서 “기자 여러분들이 우리가 여러분들의 아버지와 삼촌, 형, 동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기사를 써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굳게 걸어잠근 쌍용차 정문 앞에서는 조선일보 기자가 들여보내달라고 통사정을 하고 있었다. 노조 관계자는 “악의적인 보도를 계속해온 조중동과 일부 경제지들은 취재 거부를 하고 있다”면서 “언론의 왜곡 보도를 바로잡는 것도 투쟁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동자가 좌파가 어디 있고 우파가 어디 있느냐”면서 “우리는 다만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사쪽이 한발 물러서서 정리해고를 유예하기로 하면서 당장 공권력이 투입되거나 무력 충돌로 치닫는 사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조가 “정리해고 철회가 아니면 파업을 풀 수 없다”고 맞서고 있고 사쪽 역시 정리해고 강행을 고집하고 있어 원만한 해결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현장에는 김근태 전 민주당 원내대표와 원유철 한나라당 의원 등이 나와 있었지만 발언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한 지부장은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정부가 이야기 못하는 것을 파헤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를테면 상하이차 기술 유출 의혹에 대해 조사를 다 끝내고도 왜 발표를 하지 않는지, 설비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데도 정부가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하는데 다른 배경은 없는지 언론이 밝혀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 지부장은 “상하이차가 기술 로열티만 제대로 지불해도 쌍용차의 회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는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은 거대한 난민촌”이라면서 “악만 남은 듯 눈빛이 매서웠다”고 썼다. “노조원들이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고도 썼다.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한 조합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바리케이드에 막힌 출입구처럼 쌍용차의 미래도 꽉 막혀 보였다”고 답답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현장의 분위기는 느끼기 나름이겠지만 이 신문은 ‘꽉 막힌 미래’의 책임을 노조에 전가했다.

조선일보는 더 심했다. “차체 공장 주변과 본관 곳곳에 쇠파이프와 죽봉을 수북하게 쌓아놨고 공장 안에는 시너와 기름, 화학가스 등 화재에 취약한 물질로 가득 차 있다”는 조합원의 말을 전하면서 “노조원 200~300명은 매일 쇠파이프를 들고 공권력 투입에 대비한 방어 연습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취재도 거부당하는 처지에서 어떻게 이렇게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을까. 한 지부장은 “어처구니 없는 작문 기사”라고 잘라 말했다.

동아일보는 “불법행위와 극단적 파업 진행과정 등 대부분의 상황이 쌍용차 직원이 아닌 외부 좌파 노동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이유일 공동관리인의 말을 인용했다. 한국경제도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좌파단체와 용산참사대책위원회 등 외부세력 10여 명이 잠입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들이 쌍용차 상황을 사회적 투쟁의 도화선으로 삼고 대정부 투쟁의 거점으로 활용하려 한다”고 색깔론을 제기했다.

국민일보는 ‘악만 남은 듯’ 매서운 경계의 눈빛을 봤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은 절박하면서도 결연했다. 그것은 악이 아니라 희망과 의지였다. 조선일보는 쇠파이프와 시너에 주목했고 동아일보는 그 배후를 의심했지만 사실 이들은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노동자들이었다. 이곳에서 18년을 일했다는 한 조합원은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이 오죽하면 이렇게 나섰겠느냐”면서 “살기 위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이들이 왜 언론을 경계하는 것일까를 먼저 고민했어야 한다. 일등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는 왜 취재를 거부당하는지를 돌아봤어야 한다. 동아일보는 뒷짐지고 물러앉은 정부의 배후를 파헤쳤어야 한다. 기자회견을 할 때 한쪽 구석에 서 있었던 조합원 가족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아기를 업은 여성도 있었다. 만약 오늘 정리해고가 단행됐으면 이들은 모두 실업자 가족이 될 운명이었다.

정리해고 대상자가 됐다는 한 조합원은 “이곳에서 젊음을 다 바쳤는데 여기서 나가면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만 했는데 우리가 뭘 잘못했습니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요. 쌍용차를 헐값에 팔아넘긴 정부도, 기술만 빼내간 상하이차도, 이 지경까지 오도록 만든 경영진도 다들 그대로 있는데 왜 우리만 잘리는 겁니까. 정리해고를 하고 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고용이 넘쳐서 이 지경이 됐습니까?”

한 지부장은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공장을 조금도 훼손하고 싶지 않다”면서 “일부 언론에서 우리가 공장을 파괴하기라도 할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한 지부장은 “이 투쟁은 정리해고 전면 철회와 고용보장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노조는 이미 최선의 해법을 내놓았으니 충분한 권한이 있는 정부 관계자가 와서 책임있는 중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멈춰버린 공장은 을씨년스러웠다. 보름을 훌쩍 넘긴 파업에 쌍용차 사람들은 피곤에 지쳐있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절망할지언정 이들은 의지를 꺾지는 않았다. 기자들은 “공권력이 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지만 이들은 “끝까지 맞서 싸운다”고만 짧게 답변했다. 이기기 어려운 싸움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에게 더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2009년 6월 쌍용차 평택 공장에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미래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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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잘 읽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요즘 참 언론들이 문제가 많습니다.
    아니 원래부터 문제가 많았는데 이제야 눈을 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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