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나는 애증이 있다. 분명히 노무현의 가치라는 게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의 죽음에 연민하고 분노한다. 그렇지만 그에게 결코 동의할 수 없었던 부분이 많다. 그게 노무현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막연히 감상에 젖을 게 아니라 그의 공과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의 죽음이 모든 가치의 대립을 희석시키고 이명박 대 노무현의 구도로 한국 정치를 몰아가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우선 나는 야권 단일화에 반대한다. 이번 선거의 목표가 이명박 심판인가. 다른 건 모르겠고 나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민주당이과 단일화를 한다면 그건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3당 합당과 같은 참담한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당선 가능성을 보고 투표한다면 우리는 늘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보수 양당 이외의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고 아무리 이명박을 반대해 봐야 그건 또 다른 이명박을 뽑는 일이 될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노무현과 이명박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 노무현 지지자들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많은 정책에서 이명박은 노무현의 충실한 계승자일 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금융시장 개방이나 사상 최대의 부동산 거품, 시장주의 교육, 금융 규제 완화 등은 모두 노무현의 작품이었다. 노동법 개악과 비정규직 확산 역시 노무현에게 원죄가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극단적인 양극화, 노동의 소외, 노무현이 과연 자유로울 수 있나.
한명숙은 노무현의 분신이다. 나는 이명박의 대안이 노무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을 심판하기 위해 한명숙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현실이 참담하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떨어진 이계안 의원이 한명숙 후보에게 보낸 질의서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계안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한명숙 후보가 이 질문들에 답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명숙 후보는 이라크 파병안을 찬성했다. 한미 FTA 협상을 “개방국가로서 추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총리 시절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에 대한 폭력 진압에 대해 “정당한 법 집행 과정에서 일어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총리 시절 불법 폭력시위에 가담한 시민단체들에 보조금을 중단하라고 지시한 적도 있다. 왜 우리에게는 더 나은 대안이 없는 걸까.
내 생각은 이렇다. 잘못 뽑은 대통령은 5년만 참고 견디다가 반대편 당에 투표하면 되지만 언젠가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진보정당이 집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10년쯤 15년쯤 기다릴 생각으로 철저하게 신념에 따라 투표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최근 행보가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전선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왜 최선을 두고 차악을 선택하려고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