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자우편을 거의 공짜로 주고받는다. 포털 사이트의 전자우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나 아웃룩이나 썬더버드 같은 전용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단 데스크톱 PC나 노트북을 장만해야 하고 운영체제와 여러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고 달마다 초고속 인터넷 사용료를 내야하지만 이런 비용은 굳이 전자우편 때문이 아니라도 들어가야 할 비용이다. 이밖에 간접적으로 치르는 비용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경우 전자우편을 위해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궁금한 것 하나는 왜 전화는 전자우편처럼 공짜로 걸거나 받을 수 없느냐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전화선과 기지국과 중계기를 설치하고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누군가가 부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그 비용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우리는 왜 10초마다 끊어서 비용을 치러야 할까. 전자우편과 유선전화 또는 휴대전화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가 휴대전화로 통화할 때 데이터 전송량은 13kbps다. bps란 1초에 전송되는 데이터의 양을 비트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니까 13kbps란 1초에 1만3천비트를 전송한다는 의미다. 1시간이면 4680만비트, 8비트가 1바이트니까 바이트로 환산하면 5.58MB밖에 안 된다. CD 한 장이 700MB인데 이 정도 용량이면 125시간 이상의 음성통화 내용을 저장할 수 있다.
휴대전화로 125시간을 통화한다면 10초에 18원씩 잡고 무려 81만원을 전화요금으로 내야 한다. 그런데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해서 이 정도 데이터를 전송한다면 거의 무료로 보낼 수 있다. 요즘 초고속 인터넷은 정액요금으로 3만원 정도 밖에 안한다. 3만원이면 한 달 내내 그야말로 무제한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휴대전화의 데이터와 초고속 인터넷의 데이터가 다른가. 그렇지 않다. 데이터를 전파에 실어 보내느냐 케이블에 실어 보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휴대전화 요금은 왜 이렇게 비싼가. 물론 이동성 때문이다. 휴대전화만큼 쉽고 빠르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다른 방법이 아직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과연 그럴까.
관심이 가는 첫 번째 변화의 징후는 인터넷 전화다. VOIP폰이라고도 하는데 인터넷 회선을 이용해 전화를 한다는 이야기다. 상대방이 지구 반대편에 있더라도 인터넷에 연결돼 있고 마이크와 스피커만 갖추고 있다면 그 사람과 거의 무료로 무제한 통화를 할 수 있다. 물론 통화를 할 때마다 컴퓨터를 켜고 별도의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수고를 거쳐야 한다.
두 번째 변화의 징후는 최근에 시작된 3세대 이동통신이다. 이제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됐다. 휴대전화 인터넷 접속이야 과거에도 됐지만 이제야 속도가 충분히 빨라졌다. 속도가 최대 14.4Mbps, 이 정도면 CD 한 장 분량의 데이터를 48.6초 만에 내려 받을 수 있다. 인터넷에 접속해 스트리밍 방식으로 영화를 받아보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
세 번째 변화의 징후는 손바닥 크기의 휴대용 PC다. 울트라 모바일 PC, 줄여서 UMPC라고도 부른다. 놀랍지 않은가. 윈도우 운영체제가 설치된 데스크톱 PC가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간다. 아직은 자판 입력도 어렵고 휴대하기에는 배터리 용량이 짧아 불안하지만 중요한 것은 컴퓨터의 크기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세 가지 징후들을 모아 보면 휴대전화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UMPC에 3세대 이동통신을 연결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제 지하철 안에서도 인터넷 뉴스를 보거나 전자우편을 확인할 수 있다. 이 UMPC에 헤드셋을 연결해 인터넷 전화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굳이 휴대전화가 아니라도 언제 어디서나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게 된다.
KT의 무선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는 한시적이긴 하지만 월 1만9800원 정액요금을 내면 무제한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USB 어댑터만 꽂으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SK텔레콤이나 KTF의 무선 데이터 통신 서비스는 좀 더 비싸지만 장기적으로는 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간단하게는 굳이 UMPC가 아니라도 무선 인터넷 전용 VOIP폰이 나올 수도 있다. 휴대전화 단말기와 똑같은 크기에 무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월 2만원 정도 정액 요금에 세계 어디에나 무제한으로 전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연인과 하루 종일 전화를 들고 살아도 요금은 똑같다.
여기서 잠깐, VOIP폰에 대해 설명을 곁들일 필요가 있다. VOIP폰에서 VOIP폰으로 전화를 거는 것은 100% 무료다. 초고속 인터넷 이용료 외에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상대방의 아이디를 선택해 클릭하면 접속된다. VOIP폰에서 유선전화나 휴대전화로 거는 것은 유료다. 유선전화나 휴대전화 사업자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VOIP폰 사용자가 충분히 늘어난다면, 그래서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VOIP폰을 쓴다면 그때도 유선전화나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될까. 지금은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기억해야 하지만 그때는 상대방의 아이디만 알면 될 것이다. 아이디를 입력하면 상대방의 이름과 사진이 단말기에 뜨게 될 것이다.
VOIP폰이 무선 인터넷과 결합하고 가격이 낮아진다면 VOIP폰이 유선전화는 물론이고 휴대전화까지 대체하게 될 수도 있다. 컴퓨터의 크기가 충분히 작아져서 VOIP폰과 결합한다면 이 VOIP폰 단말기가 네트워크 허브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들고 다니면서 인터넷에 접속하고 전자우편을 확인하고 전화도 걸 수 있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무선 인터넷 서비스의 가격이다. 독점과 담합이 계속되겠지만 무선 인터넷은 결국 유선 인터넷 수준이나 유선 인터넷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크게 비싸지 않은 수준까지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물론 거꾸로 유선 인터넷이 종량제로 바뀔 가능성도 있지만 무선 인터넷의 가격이 지금보다 내려갈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동통신회사들의 딜레마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선 인터넷의 가격이 낮아지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제 무선 인터넷으로 전화를 걸거나 받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 굳이 10초마다 끊어서 전화요금을 내지 않더라도 무선 인터넷에 접속할 수만 있으면 무제한으로 통화를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전자우편처럼 음성통화나 영상통화도 무료 서비스로 바뀌게 될 가능성이 크다. 첨부 파일 용량이 크다고 해서 또는 전자우편을 자주 많이 보낸다고 해서 요금을 더 내지는 않는다. 같은 사무실 옆자리 동료에게 보내거나 지구 반대편의 친구에게 보내거나 마찬가지다. 음성통화나 영상통화도 그렇게 될 것이다.
무선 인터넷의 가격이 충분히 낮다면, 또는 무제한 정액제가 가능하다면, 그리고 보안이 확실하다면 이제 네트워크에 파일을 저장해두고 여러 단말기가 공유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굳이 휴대전화 단말기에 사진 파일이나 MP3파일을 저장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그때 그때 열어보면 될 테니까.
이동통신회사들 입장에서는 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당장은 매출을 늘려주겠지만 장기적으로 음성통화 시장을 축소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미 휴대전화 보급률이 90%를 넘어선 데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입자 한 사람 평균 매출이 3만5천원 이상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동통신 시장의 장기적인 추가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무선 인터넷을 포함해 통신 요금은 좀 더 올라가겠지만 상대적으로 음성통화나 영상통화 요금은 지금보다 훨씬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SK텔레콤이나 KTF 등의 이동통신회사들 말고 전혀 다른 누군가가 새로운 시장에서 새로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관건은 인프라지만 그 인프라를 장악할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정환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논지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 속도가 최대 14.4Mbps, 이 정도면 CD 한 장 분량의 데이터를 48.6초 만에 내려 받을 수 있다.
최소한 48.6초 곱하기 8 만큼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선 인터넷의 최대 속도란게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숫자라는건 차치하더라도요.
관련 기술 문서를 뒤적여보아야 확실하겠지만 예전 기억이 맞다면 모바일 와이맥스와 달리 와이브로에는 이동통신사들의 기득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음성통신을 위한 프로토콜을 제외하였던걸로 기억합니다.
과연 통신사들이 자사의 기지국을 사용하는 VoIP 서비스를 허가할지는 의문입니다. 허가하더라도 굉장히 먼 미래일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휴대폰으로서의 VoIP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휴대폰과 비슷한 사이즈의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VoIP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UMPC 기반의 VoIP는 현재도 가능하지만 그리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블루투스를 꼽아서 VoIP를 이용하는 기술 수준에 속하는 사람들의 수는 소수이고 UMPC를 제외하면 PMP 정도가 가능성이 있는데 기기의 성능이나 임베디드 OS를 고려하면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게다가 범용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항상 대기 상태를 유지하기에는 배터리 타임이 견디질 못합니다.
USIM 교체 방식의 범용 디바이스가 등장하려면 휴대폰 이외의 기기로 USIM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락을 설정한 현재의 정책 변경이 우선입니다. 만약 휴대폰으로서의 시장에 유통되고자 한다면 아마도 통신사에서 망연동테스트를 통과시키지 않을 겁니다. T-login과 iPlug를 통채로 꼽는 형태의 기기가 나오더라도 통신사에서는 디자인을 바꿔서 usb 모뎀을 다시 출시하겠지요. 밥줄이 걸린 일이면 놀랄만큼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그들이라는 건 익히 지켜보아온 일이니까요.
짧은 시간 내에는 어렵지 않을까요 🙂
무선 통신에서 사용하는 주파수는 유선과 달리 “한정된” 자원이라 대부분 국가에서 관리를 합니다.
락을 해제하긴 하였으나 이는 SHOW 단말기 내부에서만 호환될 뿐입니다. KTF의 망연동테스트를 통과하지 않은 기기들과는 아직 연동이 되질 않습니다.
와이파이 스카이프 폰이 가능한 것은 와이파이의 소유자가 통신사와 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와이브로나 HSDPA 기지국의 소유자가 통신사이기 때문에 와이브로나 HSDPA 스카이프 폰의 출시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합니다.
스프린트 넥스텔이 미국 전역에 모바일 와이맥스 망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이후 미국에서는 VoIP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과 스프린트 넥스텔이 음성 통신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네트웍에서 다른 VoIP 서비스가 동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혼재하였습니다. 이윤 추구가 설립 목적인 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후자가 더 타당하지 않을까요.
UMPC가 휴대폰으로서의 기능성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보급률부터 올리고, 그 다음 대기 시간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체 모듈을 내장하여 윈도우와 별개로 동작하지 않는다면 어렵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HSDPA용 스카이프 폰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받게 됩니다.
문제가 될 만큼 VoIP의 사용량이 증가한다면 통신사의 인가를 받지 않은 VoIP 서비스는 접속할 수 없다는 조항을 약관에 삽입한 후, 사용자 인증 시스템에서 VoIP 어플리케이션을 인식하면 접속을 차단한다거나 네트웍에서 SIP, H.323과 같은 프로토콜 자체를 원천적으로 블록하는 방법 등을 채택하면 기술적으로는 무리가 없습니다. 다만 약관 변경에 따른 소비자들의 반발은 감수해야만 하겠지요.
매달 늘어가는 고지서의 숫자들을 볼 때마다 VoIP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은 저도 굴뚝 같습니다. 벨킨 와이파이 폰을 사용했었는데 편하고 저렴해서 마음에 들더라구요 🙂 다만 와이파이 폰보다는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꺼내어 전화를 거는 바람에 생각만큼 휴대폰 요금이 줄어들진 않아서 실망했답니다. 🙁
바쁘실텐데 일일히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환님 말씀처럼 이통사간 USIM 카드 호환도 풀리고 다양한 기기로의 사용도 허용되어서 소비자의 편의성을 최대화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
근데, 이정환님의 글을 읽으면서 갑자기 궁금해 지는게 ‘왜 유선 인터넷은 거의 공짜인가?’ 입니다. DNS 서버를 비록하여 인터넷 망 기저를 구성하는 백본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데에는 상당히 많은 비용이 들 것이 분명한데 말이지요. 국가와 국가간의 해저 광 케이블이나 국가 내의 초고속 백본망, 그리고 여러 서버들에 비용이 많이 들어갈텐데, 어떻게 이렇게 저렴하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전자우편도 전자우편 서버를 구매하고 운영하고, 업그레이드 유지 보수 하는데 돈이 많이 들잖아요.
갑자기 정환님 읽다 보니 궁금해져셔 댓글 남겼습니다. ^^;
저도 무선 인터넷을 통한 인터넷 전화가 편리하고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죄송한데… 이정환 기자님은 어떤 매체에서 일하고 계십니까. 궁금해서…
죄송한데…
이정환 기자님은 어느 매체에서 일하고 계십니까.
블로그를 보면서도 알 수가 없어서.. 문의드립니다.
인터넷은 패킷교환 방식 네트웍을 사용하고 전화는 서킷교환 방식 네트웍을 사용하기 때문에 인터넷이 전화 보다 더 저렴합니다. 대신 통화의 품질(QoS)은 서킷교환 방식 네트웍을 사용하는 전화가 더 좋습니다.
‘VoIP 써보니 통화 품질 괜찮던데, 무슨 소리냐?’하실 분이 있을텐데요. VoIP 사용자가 일반 전화 사용자 만큼 많아지면 무슨 뜻인지 아시게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