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울산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노조 차원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아니나 다를까. 현대차가 최대 주주로 있는 한국경제가 발끈하고 나섰다. 29일 1면 머리기사 제목이 “고유가로 경영난 심각한데… 현대차 노조 웬 ‘쇠고기 투쟁'”이다. 고유가나 경영난과 쇠고기 투쟁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한국경제는 1면에 이어 4면에도 “‘명분 없었던 FTA 투쟁 실패 벌써 잊었나'”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경제는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의 말을 인용, “일부 노동단체들은 겉으로는 조합원들의 복지향상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권력쟁취에만 몰두해온 측면이 크다”면서 “쇠고기 수입 반대투쟁을 벌이는 것은 정치적 반대자에게 타격을 주고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속셈”이라고 비난했다.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것과 노조가 입지를 강화하는 것은 또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같은 기사에 인용된 박영범 한성대 교수의 말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박 교수는 “노동계가 한미 FTA와 연계된 쇠고기 수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앞으로 늘어날 일자리의 싹을 스스로 잘라내는 격”이라며 “조합원들의 복지향상은 뒷전으로 한 채 사회운동 쪽으로만 관심을 둔다면 생산현장이 정치적으로 변질돼 글로벌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노조는 사회문제에 아예 관심을 둬서는 안 되고 임금 투쟁만 해야 한다는 말일까. 앞으로 늘어날 일자리를 위해 한미 FTA를 무작정 찬성하고 광우병의 위험에도 침묵해야 한단 말일까. 한국경제의 기사와 이 신문이 인용하고 있는 교수들의 주장은 애초에 상식을 벗어난다.
“명분 없었던 한미 FTA 투쟁”이라는 비난도 자가당착적이다. 노동자가 개별 사업장을 넘어 노동자 전체의 연대와 계급적 이해를 고민하는 것은 노조운동의 기본 이념이다. 특히 한미 FTA는 만약 시행되기만 한다면 미국식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우리 사회에 이식하고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송두리째 뒤바꿔 놓을 것으로 우려된다. 노조가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미 FTA에 목을 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난 20년 동안 노동법 개정과 비정규직법 등 크고 작은 정치 현안을 놓고 현대차 노조가 정치파업에 참여해 중소기업들이 엄청난 시련을 겪어 왔다”는 비난도 역시 적절치 않다. 노조가 노동법 개정이나 비정규직법에 침묵할 수 있나. 그렇다면 그야말로 어용노조일 뿐이다. 파업손실 역시 다분히 과장돼 있다. 실제로는 파업 이후 노동 강도 증대와 야근, 특근 등을 통해 작업 물량을 모두 소화하고 있는데다 오히려 재고 물량을 처분하고 부담을 덜어내는데 적극적으로 파업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2006년 한 해 동안 50여차례 정치파업을 벌여 회사에 수조원의 손실을 입힌 것으로 나타났다”는 등의 주장은 한국경제의 해묵은 고정 레파토리다.
이 신문은 30일 5면 “현대차 4만여 노조원 중 ‘촛불’ 참가 90명”에서는 정작 촛불 집회 참가자가 적었다며 “조합원들이 정치파업 참가를 반대하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며 재를 뿌리기도 했다. 이 신문은 “조합원 대부분이 정치파업 참가를 반대하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며 “현대차 노조 내부에서도 임금 협상은 간데 없고 정치투쟁 양상으로 변질되는데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촛불 순수성 왜곡… 좌파 운동권은 빠져라'”라는 기사에서는 “자발적인 시민들의 순수성을 왜곡시키지 말아달라”거나 “그들로 인해 선량한 시민들이 연행되고 시위가 변질되고 있다”는 등의 네티즌들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노조에 탈정치적일 것을 요구하면서 촛불집회의 반정치성을 애써 강조하는 이 신문의 속셈은 무엇일까. 노조는 순수하게 쇠고기를 반대할 수도 없는 것인가. 시민과 노동자는 과연 다른가. 노조가 애초에 탈정치적일 수 없는 것처럼 촛불집회 역시 시작부터 지극히 정치적인 민중 봉기였음을 이 신문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촛불집회는 이미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반발을 넘어 신자유주의 정부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제기로 확산되고 더 나아가 아래로부터의 대안 세계화 운동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10대 여학생들이 중심이었던 초창기 집회와 달리 최근 집회에서는 대학생들과 직장인들, 그리고 노조 관계자들 참여가 늘어났고 29일 집회부터는 대학 학생회나 사회단체들 깃발도 훨씬 더 많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고 과연 10대가 순수성을 짓밟혀 밀려나고 있는 것도 아니다. 29일 집회에는 유모차를 앞세운 아기 엄마들이 선두에 서기도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현실과 맞서 싸우고 더 나은 현실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을 깨닫고 있다. 이들 보수 언론이 진짜 두려워 하는 것은 바로 이들 민중의 현실 인식과 저항으로 우리 사회의 기득권 시스템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발전적인 노조 운동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노조에 작업장 이기주의를 넘어 거리로 나와 사람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라고 조언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주제 넘은 월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