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완성될지 모르는 안드로메다 시나리오 1편입니다. 3편으로 완결 예정.)

장면 1 = 술집.
삼겹살 집. 친구들 일곱명이 둘러앉아 폭탄주를 마시고 있다. 장태만이 제조자. 맥주잔 위에 올려놓은 소주잔이 도미노처럼 차례로 쓰러진다.
장태만 : 야야,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마시고 머리에 털기.
친구들, 박수와 함성.
장태만 : 야, 우리 딱 한 바퀴만 더 돌고 가자.
친구들 : 좋아좋아.

장면 2 = 장태만의 집, 새벽.
침대 밑에 벗어놓은 옷가지가 흩어져 있다. 새벽 7시. 자명종이 계속 울리는데 장태만, 일어나지 못한다. 자명종을 끄고 베개 밑으로 머리를 파묻고 다시 잠에 빠져든다.

장면 3 = 장태만의 집, 아침.
아까 보다 훨씬 더 밝아졌다. 시계를 클로즈업. 9시 반이다. 태만이 벌떡 일어나다가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진다.
장태만 : 으아, 큰일났다.
허겁지겁 바지를 입기 시작한다.

장면 4 = 장태만의 회사.
사무실로 뛰어 들어오는 태만. 과장이 고개를 들어 흘깃 째려본다.
과장 : 장태만씨, 잠깐 봅시다.
장태만 : 네. 과장님. (군기가 바짝 들었다)
과장 : 어제 또 술 마셨지? (대뜸 반말이다) 이달 들어 지각이 몇 번짼 줄 알아?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지? 술을 먹건 뭘 하건 좋은데 출근시간은 지켜야 될 거 아냐. (볼펜으로 책상을 탁탁 두둘긴다)
장태만 : (곤혹스러운 표정, 아직 술도 덜 깬 듯)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과장 : 어디 지켜보겠어. 한번만 더 지각하면 시말서 쓰게 할 거야.

장면 5 = 장태만의 회사, 그 날 오후.
과장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장태만이 결재를 받으려고 그 앞에 서 있다.
장태만 : 과장님. 흠흠. (헛기침 소리)
과장, 계속 잔다.
장태만 : (다시 좀 더 큰 목소리로) 과장님.
과장 : (그제서야 깜짝 놀라 깬다, 잠이 가득한 표정) 어, 장태만씨, 뭐야.
장태만 : 결재 좀.
과장, 성의 없이 서류를 넘겨보더니 사인을 해서 넘겨준다. 장태만이 돌아가자 아예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잠이 든다. 코까지 곤다. 다른 직원들, 키득거리면서 웃는다.

장면 6 = 퇴근 지하철 안.
장태만,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느슨하게 풀린 넥타이. 여전히 졸린 표정이다. 지하철 승객들도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많다.

장면 7 = 장태만의 집, 저녁.
장태만, 캔맥주를 놓고 소파에 비스듬하게 기대 TV를 보고 있다.
장태만 : (리모컨을 꾹꾹 누르며) 아, 재밌는 것도 없네.
앵커(신나나) : 오늘 오후 4시쯤 자유로 일산 방면 가양대교 북단 5km 지점에서 5톤 트럭이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승용차 5대가 연쇄 추돌해 트럭 운전자 박아무개씨 등 5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12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졸음운전이 사고 원인인 것으로 보고 CCTV와 차량 블랙박스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장태만, 채널을 또 바꾼다.

장면 8 = 퇴근 길, 올림픽 대로, 승용차 안.
승용차 안의 시계가 1시10분을 가리키고 있다. 신나나, 운전 중에 꾸벅꾸벅 존다. 눈을 잠깐 감으면서 차선을 밟는 순간, 옆 차선에서 택시가 빵~하고 경음을 울리고 가로질러 지나간다. 신나나, 잠에서 번뜩 깨서 운전대를 다시 움켜쥔다.

장면 9 = 신나나의 집.
가벼운 옷 차림의 신나나. 샤워를 하고 나온 듯, 머리에 물기가 젖어있는데 여전히 졸린 표정이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마시는데 눈이 자꾸 감긴다. 장면이 바뀌면 신나나, 냉장고에 등을 기대고 앉아 고개를 왼쪽으로 꺾고 잠들어 있다.

장면 10 = 장태만의 집, 새벽.
자명종이 울리는데 한참 비비적거리다가 이번에는 용케 일어난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귀찮은 듯 양치질을 하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집을 나선다. 오늘은 버스로 출근한다. 버스 안에는 사람이 절반 정도 차 있는데 다들 졸고 있다. 버스가 커브 길을 도는데 앞에 앉은 여학생이 픽하고 바닥에 쓰러진다.

장면 11 = 장태만의 회사.
장태만 : (들어서면서) 좋은 아침입니다.
동료1 : 어, 웬일이야, 모처럼 일찍 출근이네.
장태만 : 부지런히 살기로 했습니다. 으하핫. 일찍 나오니까 좋구만. 그런데 아직 과장님은 안 나오셨네. 맨날 일찍 출근하는 양반이.
동료2 : 아, 과장님 오늘 몸이 안 좋다고 늦는다고 전화 왔어.

장면 12 = 장태만의 회사, 오후.
동료1와 동료3이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다.
장태만 : (머그컵을 들고 들어오다가) 얼씨구, 과장님 없다고 완전 여관방이 됐네. (동료2의 등을 툭툭 때리면서) 이봐, 담배나 한 대 피우자고.
동료3, 고개를 들고 게슴츠레 쳐다보더니 다시 얼굴을 파묻는다.

장면 13 = 신나나의 방송국, 오후.
신나나도 커피 자동판매기 앞에 선배랑 서 있다.
신나나 : 선배, 저는 요즘 왜 이렇게 잠이 많아졌죠? 어제는 집에 가다가 사고 날 뻔 했어요.
선배1 : 졸음운전이 음주운전보다 무섭다니까. 차라리 갓길에 차를 대고 좀 자다가 가야지.
신나나 : 커피를 좀 독하게 마셔볼까. 머리도 멍한 것 같고.
선배2 : 나도 왕년에는 이틀씩 날밤 새고도 끄덕 없었는데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다니까. 운동을 좀 해볼까. 마흔 넘어가니까 몸이 망가지는 것 같아.

장면 14 = 신나나의 방송국, 스튜디오.
‘온 에어’에 불이 들어와 있다.
신나나 : 한반도의 온난화 속도가 전 세계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1 : 기상청 국립기상연구소는 한반도 기후변화, 현재와 미래에서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이 지난 100년동안 1.7도 올랐다고 밝혔습니다.
(장면이 바뀌어서 스튜디오로 돌아오면 신나나가 눈을 비비고 있다)
기자1 : 이 수치는 전 지구 평균 0.74도보다 1도가량 높은 것으로 온난화 속도가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셈입니다. 기상청은 지금 추세대로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2100년쯤에는 제주도와 울릉도, 동해안과 남해안 등에서 겨울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다시 ‘온 에어’에 불이 들어왔는데 신나나, 눈을 감고 있다. 밖에서 PD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신나나씨. 신나나,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린다.
신나나 : 아, 다음 뉴습니다. 지난달 신규 취업자 수가 5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청년층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 기잡니다.
기자2 : 경기 침체로 고용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지난달 취업자 수는 2324만5천명으로 1년 전보다 1만2천명이 줄었습니다. 신규 취업자 수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신용카드사태 당시인 지난 2003년 10월 이후 5년 만에 처음입니다. 20만명을 넘던 신규 취업자 수가 지난해 10월, 10만 명 아래로 떨어진 뒤 12월에는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신나나, 하품을 한다. 밖에서 PD가 다시 소리친다. 신나나씨, 왜 그래? 정신 안 차려? 신나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뺨을 탁탁 두둘긴다.
기자 2 : 고용률은 58.4%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0.7%포인트 하락했고, 실업률은 3.3%로 0.2%포인트 올랐습니다. 아예, 구직을 포기한 구직단념자는 14만7천명으로 1년 전보다 42%가 늘었습니다. 연령별로는 10대에서 30대까지 청년층 일자리가 크게 줄었고, 제조업과 건설업 등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실직이 많았습니다. 올 상반기 우리 경제는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면서 취업자 감소폭이 12만 명까지 확대될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장면 15 = 술집.
장태만과 회사 동료들이다. 오뎅바다. 오뎅꼬치를 놓고 L자 형태로 둘러 앉아 사케를 마시고 있다. 동료 3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장태만 : 으아, 따뜻하고 좋네. (동료3을 툭 치면서) 야, 또 자냐. 하루종일 자냐?
동료3 : (벌떡 일어나더니) 아, 나 먼저 가야겠다. 졸려 죽겠어. 여기까지 내가 낼게.
장태만 : 야, 그런 게 어딨어?
동료1 : 내버려둬라. 신혼이잖냐.
동료2 : 신혼이면 다냐. 술 먹다가 토끼는 놈들이 제일 나빠.
동료1 : 아, 술 진탕 먹고 내일 휴가나 쓸까. 나는 올해 휴가 아직 절반도 못 썼다.
장태만 : 진짜 나도 휴가 1주일 넘게 남았을 텐데, 안 쓰면 그거 돈으로 주는 거 아냐?
동료2 : 돈은 필요 없고 어디가서 그냥 늘어지게 좀 쉬었으면 좋겠다.
장태만 : 아, 몰라몰라. 술이나 먹자. 우리 이런 거 말고 자리 옮겨서 소폭 어때?

장면 16 = 노래방.
장태만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다. 동료1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동료2는 소파에 옆으로 누워 자고 있다.
장면이 바뀌면 장태만이 동료1과 2를 양쪽에 부축하고 노래방을 빠져 나온다. 택시를 잡아 하나씩 밀쳐 넣고 담배를 꼬나문다.
장태만 : 에고, 왜 이렇게 재밌는 일이 없냐. 택시를 불러 세운다. 둔촌동이요.

장면 17 = 택시.
신호등에 멈춰 있는데 룸미러로 운전기사가 꾸벅꾸벅 조는 게 보인다. 흰 머리가 희끗희끗하다.
장태만 : 아저씨.
택시기사 : 어어, 아, 죄송합니다.
장태만 : 아, 큰일 날 아저씨네. 이제 퇴근 시간 다 됐죠? 얼른 끝내고 들어가 주무세요.
택시기사 : 그래야죠. 제가 어제까지 주간반을 하다가 오늘부터 야간반이라 거의 24시간 연속 운전을 하는 거라서요.
장태만 : 아, 네.

장면 18 = 장태만의 아파트 앞.
택시가 아파트 입구에 멈춰 선다. 장태만 내려서 걸어오는데 계단 앞에 한 여자가 앉아 있다. 신나나다. 장태만, 지나치려다가 슬쩍 보니까 예쁜 얼굴이다. 어딘가 낯이 익기도 하고. 신나나의 어깨를 잡아 흔든다.
장태만 : 저기요. 여기서 자면 죽어요. 아, 날도 추운데.
신나나, 꼼짝도 하지 않는다. 장태만, 신나나의 얼굴에 손을 대본다. 차갑다.
장태만 : 어, 이거 큰일 났네.
장태만, 핸드폰을 꺼내 119를 누르다 말고 택시가 아직 출발하지 않고 있는 걸 보고, 신나를 들춰 업는다.
장태만 : 아저씨.
택시기사는 아예 의자를 젖히고 자고 있다.
장태만 : 더 크게 부른다. 아저씨!
택시기사, 그제서야 일어난다. 어리둥절한 표정. 장태만 신나나를 택시에 밀어넣는다.
장태만 : 아저씨, 병원으로 갑시다.
택시기사 : 어, 이 아가씨, 어디 아파요?
장태만 : 모르겠어요. 암튼 빨리 갑시다.

장면 19 = 병원 응급실.
장태만, 신나나를 업고 뛰어들어온다. 간호사들이 받아서 침대에 눕힌다.
간호사1 : 보호자세요? 어떻게 된 거에요?
장태만 : 모르겠어요. 그냥 길에 쓰러져 있길래.
의사들이 달려온다. 가위로 겉옷을 잘라내고 응급조치를 시작한다.
간호사1 : 일단 나가 계세요. 원무과에 가서 접수부터 하시고요.
장태만 : 네.
장면이 바뀌면 장태만, 응급실 현관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다시 들어간다.
장태만 : (간호사 2를 붙잡고) 아까 그 아가씨 어떻게 됐죠?
간호사2 : (귀찮다는 투다) 아, 별건 아니고요. 좀 쉬다가 퇴원하시면 돼요.
장태만, 응급실 물을 밀고 들어간다. 의사1이 신나나를 들여다 보고 있다. 편안히 잠든 얼굴이다. 침대 맡의 심박계에 맥박도 정상으로 뛰고 있는 것 같다.
의사1 : (장태만을 돌아보며) 신나나 앵커 아니에요?
장태만 : 아, 그래요? 어쩐지.
의사1 : 술을 마신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자고 있는데요. 신기하네. 좀 이따가 깨워서 데리고 가세요. 그런데 어떤 사이세요?
장태만 : (멋쩍은 표정으로) 아, 그냥. 같은 아파트에.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길에서 자다가 얼어 죽으면 어쩔라고.

장면 20 = 병원 응급실.
장태만, 나무 의자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그 위에 시계를 클로즈업하면 4시 반.
간호사1 : 신나나씨 보호자시죠? 깨어났으니까 퇴원시키세요.
장태만 : 아, 네.
응급실에 들어서니 신나나,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장태만 : 아, 괜찮으세요? 아파트 입구에서 자고 있길래, 깨워도 일어나지도 않고 내버려두면 얼어죽을까봐.
신나나 : 아, 네. 고맙습니다. 아파트 열쇠를 차에 두고 온 거 같아서 다시 가려다가 너무 졸려서 잠깐 앉아 있으려던게.
장태만 : 헤헷. 별일이 다 있죠? 들어가시죠. 저도 그 아파트 삽니다.
장태만, 신나나에게 걸칠 걸 건네준다.

장면 21 = 장태만의 회사.
장태만, 오늘은 더 졸린 표정이다. 모니터를 쳐다보면서도 눈꺼풀이 자꾸 감긴다.
동료3 : 야, 어제 늦게까지 마셨냐.
장태만 : 말도 마라. 집에 들어가니까 5시더라.
동료1 : 야, 어제 2시쯤 끝났잖아.
장태만 : 아, 그럴 일이 있었어. (피식 거리면서 웃는다)
동료2 : 그나저나 과장님은 오늘도 안 나오시려나? 병문안이라도 가야 되는 거 아냐?
동료3 : 어떻게 주변에 멀쩡한 사람이 없냐.

장면 22 = 신나나의 방송국.
신나나, 국장한테 불려가 야단을 맞고 있다.
국장 : 신나나씨, 마감 뉴스가 힘들어? 방송 중에 졸았다며? 인터넷에 동영상 돌아다니는 거 봤어?
신나나 : 죄송합니다.
국장 : 요즘 무슨 문제 있어? 저녁에 잠 안 자고 뭐해?
신나나, 안 보이게 찌푸리며 이를 깨문다.

장면 23 = 신나나의 방송국, 커피 자동판매기 앞.
신나나 : 아, 왜 이러지?
커피를 뽑아들고 앉아서 또 꾸벅꾸벅 존다.

장면 24 = 전철 안.
장태만, 휴대전화 통화 중이다. 입을 가리고 있지만 목소리가 크다.
장태만 : 아, 새끼, 오랜만이다. 그래? 많이 모였네. 아, 근데 나 오늘 좀 일찍 들어가 자려고. 며칠 달리고 잠을 못 잤더니. 완전 컨디션 다운이야. 아, 좀 봐주라. 다음에 내가 크게 쏠게. 한번만 봐주라. 응응. 그래.
전화를 끊고 또 잔다. 다른 승객들도 이어폰을 꽂고 있는 사람, 신문을 보는 사람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서 있는 사람들도 졸린 표정이다. 하품 하는 사람도 여럿 있다.

장면 25 = 전철 안.
한참 뒤 전철 종점이다. 승객은 많이 줄었다. 서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안내방송 : 다음 역은 마천, 마천역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모두 하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열차는 오늘 운행을 모두 끝내고 차고로 들어가는 열차입니다. 다시 한번 안내말씀드립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소지품을 모두 챙기시고 모두 하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저희 도시철도를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장태만, 잠에서 깬다. 둘러보니 졸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전철이 종점에 닿고 몇 사람들이 내렸지만 아직도 열댓명이 자고 있다. 장태만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을 흔들어 깨운다.
장태만 : 아저씨, 종점이랍니다. 내리세요.
장태만이 흔들던 중년 남성이 갑자기 툭 쓰러진다. 장태만, 허걱 하고 뒤로 물러선다. 안내방송이 계속 나오고 전등이 깜빡거린다. 장태만, 문득 생각난 듯 다음 칸으로 가보지만 거기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다.

장면 26 = 장태만의 집.
오늘도 맥주 한캔에 땅콩 쪼가리를 놓고 TV를 보고 있다. 신나나는 여전히 예쁘지만 오늘따라 더 피곤한 얼굴이다.
신나나 : 자살이 20대 남녀 모두의 사망원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 청년층의 자살 방지를 위한 국가적인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07년 20대 10만명당 사망원인 가운데 자살이 21명을 기록, 1위를 차지했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장태만 : 상태가 안 좋아.
신나나 : 이같은 20대 청년층의 자살률 급증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취업난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장태만 : 뭐 좋은 뉴스가 없구만. (채널을 돌린다, 디스커버리 채널,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이다.)
나래이션 : 하지만 겨울철과 같이 먹을 것이 적은 계절에 식량을 구하기 힘든 동물들은 다른 방법을 통해 몸의 체온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겨울잠을 자는 것입니다. 즉, 적게 먹었으니 조금만 움직여 에너지 소모를 줄이자는 것입니다. 겨울잠을 자는 정온 동물들은 먹이가 풍부한 가을철에 최대한 많은 양의 먹이를 섭취해 몸에 지방을 비롯한 영양분을 많이 비축해 두게 됩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따뜻한 동굴 등에 들어가 잠을 자면서 되도록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비축한 에너지를 최소량씩만 소모하며 겨울을 지낼 수 있게 됩니다. 정온동물이 이 두 가지 방법으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은 겨울잠을 자는 곰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보통곰은 겨울잠을 잔다고 알고 있지만, 모든 종류의 곰이 다 겨울잠을 자는것은 아닙니다. 같은 종류의 곰이라도 동물원에 있는 곰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데, 이는 동물원에 사는 곰은 매일 조련사 아저씨가 주는 먹이를 충분히 먹을 수 있으므로 겨울잠을 자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북극곰도 겨울잠을 자지 않는데, 이는 북극곰의 몸이 추운 지역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털로 덮여 있으며, 풍부한 먹이가 있어 겨울을 지내는 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카메라가 TV 밖으로 빠져나오면 장태만, 어느 새 잠이 들어 있다.

장면 27 = 올림픽 대로 갓길, 신나나의 차 안.
새벽 2시 반. 신나나, 비상등을 켜놓고 쿨쿨 자고 있다. 전화 벨이 울리는데 계속 잔다.

장면 28 = 여전히 신나나의 차 안.
아침 7시. 신나나 게슴츠레한 눈으로 시계를 보더니 깜짝 놀라 일어난다.

장면 29 = 신나나의 아파트 앞.
주차를 하고 올라가던 신나나, 장태만과 마주친다. 서로 가볍게 인사.
장태만&신나나 : (동시에) 저기.
장태만 : 아, 네.
신나나 : 전에는 고마웠어요.
장태만 : 헤헷. 고맙긴요. 그런데 어디 몸이 안 좋으거 아닐까요. 안색도 안 좋아 보이고.
신나나 :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요즘 너무너무 졸린 거 있죠.
장태만 : 아, 네. 그럼 들어가세요. 저는 아침 일찍 출근을. 흐흐.
신나나 : 네. 저기, 그날 의사가 별 말 안 했죠?
장태만 : 네? 네. 길에서 자지 말라고 그러던데요.

장면 30 = 병원.
좀 나이가 많은 다른 의사다.
의사2 : 일단 검사결과는 좀 기다려 보고요. 충분히 쉬는 거밖에.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아마 신장이 안 좋을 수도 있고 당뇨가 있을 수도 있어요.
신나나 : 저 같은 환자들이 또 있나요? 막 졸립고, 정신 못 차리고. 길에서 자고.
의사2 : 그러고 보니까, 요즘 유난히 그런 환자가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졸음운전 사고도 많고. 그거 참 신기하네.
신나나 : 의사 선생님도 막 졸립고 그러세요?
의사2 : 허허, 나이 먹으면 원래 잠이 많아지죠.
신나나 : 뭐 약 같은 건 없을까요? 잠 안 오는 약 같은 거 말이죠.
의사2 : 각성제 같은 게 있긴 한데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요. 머리가 멍해지니까. 제일 좋은 건 충분히 자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거죠. 하루 8시간씩 자는 게 좋은데. 8+8+8 몰라요? 8시간 일하고 8시간 놀고 8시간 자고. 그게 정상적인 생활이지. 신나나씨는 하루 몇시간이나 주무시나?
신나나 : 많아 봐야 5시간?

장면 31 = 장태만의 회사.
과장이 모처럼 자리에 앉아있다. 사무실 분위기가 안 좋다.
과장 : 장태만씨, 내가 없는 동안 도대체 뭐한 거야? 프로젝트 F 기안서 가져와 봐요.
장태만 : (어느 샌가 옆에 와서 서 있다) 그거 여기 서류함에 있는데요. 두세번째쯤에 있을 겁니다.
과장 : 아, 그렇군.
장태만 : 건강은 괜찮으세요?
과장 : 응. 그냥 좀 피곤했을 뿐이야. 며칠 무리를 해서 그런가. 아침에 못 일어나겠더라고. 그래서 내친 김에 좀 쉬었지.
장태만 : 아직도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아침부터.
과장 : 뭐야? (째려본다) 아, 그런데 정말 피곤하긴 하네. 누가 커피나 좀 진하게 한잔 타주지?
장태만 : 넵. 제가 한잔 타드리겠습니다.

장면 32 = 그날 오후, 장태만의 회사.
장태만, 인터넷으로 스포츠 신문 만화를 보면서 키득거리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동료들이 모두 책상에 엎드려 있다. 과장은 역시나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자고 있다.
장태만 : 얼씨구.
컴퓨터를 들여다보니 메신저에 친구들도 모두 자리비움이다.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보니 복도가 텅 비어 있다. 옆 사무실 역시 마찬가지다. 창밖을 내려다보니, 유난히 도로가 텅빈 느낌이 든다. 장태만 복도에 나가 혼자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에 잠긴다.

장면 33 = 퇴근시간, 장태만의 회사 앞.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교차로에서 접촉사고가 났다.
운전자1 : 야, 운전 똑바로 안 해?
운전자2 : 아, 당신이야 말로 직진 차선 우선인 거 몰라?
운전자1 : 뭔 소리야. 빨간 불일 때 들어온 놈이 누군데.
바로 그때 다른 차가 운전자2의 차를 뒤에서 쿵하고 들이받고 운전자2의 차가 운전자1의 차를 한번 더 들이받는다. 운전자3은 괴로운 듯 핸들에 머리를 묻고 있다.
운전자2 : 저 새끼는 눈을 어따 두고 다니는 거야?
바로 그때 교차로 반대편에서 또 쿵 소리가 난다. 이번에는 버스가 택시 옆구리를 들이 받았다. 교차로는 온통 난장판이 된다. 경적소리가 사방에서 울린다.
장태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사람들이 좀비 같다. 표정도 멍하고 다들 매우 지쳐 보인다. 길가에 커피 전문점 넓은 유리창 안으로 사람들이 테이블 위에 쓰러져 있는 게 들여다 보인다.
장태만 : 아, 뭐야.
장태만, 버스 잡는 걸 포기하고 지하철을 타러 길을 걷기 시작한다. 교통사고 천지다. 차 안에서 자고 있는 사람도 많다. 빨간색 우체통을 끌어안고 자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좀비처럼 떠다니면서 어깨를 부딪힌다. 마주 오던 고등학생이 피식 쓰러지는 걸 붙잡아 세운다.
장태만 : 이봐, 정신 차리라고.

장면 34 = 지하철 역.
계단에 걸터앉아 난간 손잡이에 머리를 기대고 자는 사람들이 있다. 역 안 매표소 앞에도, 플랫폼 안쪽 나무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모두 졸고 있다. 늘씬한 20대 여성이 신문 판매대에 기대고 섰다가 흠칫 쓰러질 뻔 하는 게 눈에 띈다. 장태만, 시계를 들여다 보는데 좀처럼 지하철이 들어오지 않는다.

장면 35 = 신나나의 방송국.
신나나,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신나나의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신나나, 고개를 들고 정수기 앞으로 가서 머그컵에 물을 따라 약을 집어 삼킨다.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움켜쥔다. 역시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장면 36 = 국장 방.
국장 역시 자고 있다. 책상에 다리까지 턱 올려놓고.
신나나 : 국장님.
국장, 좀처럼 깨지 않는다. 신나나, 작정하고 흔들어 댄다. 뺨까지 때린다.
신나나 : 국장님. 뭔가 이상해요.
국장 : 응. 신나나씨, 아, 피곤하네. 미안.
신나나 : 사람들이 다 자고 있어요. 이래서 방송을 하겠어요?
국장 : 아, 그래? 나 잠깐만 눈 좀 붙이면 안 될까.
신나나, 어이 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나간다.

장면 37 = 스튜디오.
‘온에어’ 불이 들어와 있다. PD와 방송기사 역시 매우 졸린 표정이다. 신나나 그 뒤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다.
PD1 : 어, 신나나씨. 웬일이야.
신나나 :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선배.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PD1 : 뭐가?
신나나 : 미친 듯이 졸립지 않아요? (유리창 안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도 지금 졸려 죽기 직전인데요.
스튜디오 안의 앵커 둘, 한 사람은 졸린 듯 고개를 흔들고 있고 다른 한사람은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있다.
PD1 : 아, 그래? 응. 왜 이렇게 졸립지? 뭐 잘못 먹었나?
신나나 : (알약을 하나 튿어준다) 이거 한알 먹어요. 잠깨는 약.
방송기사1 : 신나나씨, 나도 한알 줘.
작가1&작가2 : 저도요.
앵커1 : 오늘 저녁 시내 곳곳에서 심각한 교통 체증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지하철 1호선과 3호선, 7호선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전면 운행이 중단됐고 현재 서울 경찰청에 접수된 교통사고만 해도 150건이 넘습니다. 현재까지 사망자가 12명, 부상자는 74명으로 집계됐습니다. 경찰은 지하철 이외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되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경에 ○○○ 기자가 나가 있습니다. ○○○ 기자?
신나나, 스튜디오를 빠져 나온다.

장면 38 = 지하철 역무실.
지하철 역무실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데 창구 앞에 아무도 없다. 성난 시민들이 유리창을 두둘기지만 아무 응답이 없다.
시민1 : 뭐라고 안내방송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카메라가 창구를 넘어서 들어가면 역무실 안쪽 간이침대에 공익 요원이 자고 있고 책상 위에도 두명이 머리를 파묻고 있다.
장태만, 지하철 역을 빠져 나온다.

장면 39 = 지하철 역 앞.
사이렌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교차로에는 차가 엉망으로 뒤엉켜 있다. 장태만, 교차로를 마구 가로질러 편의점으로 들어선다.

장면 40 =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도 카운터에 엎드려 자고 있다. 장태만, 볶음김치와 컵라면을 집어 들고 천원짜리 몇장을 카운터에 놓고 와서 라면에 물을 붓고 창밖을 내다본다. 온통 아수라장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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