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특검은 삼성 전현직 임원 486명 명의의 차명계좌 1199개를 확인했다. 이들 차명계좌에 예금이 2930억원, 주식이 4조1009억원,채권과 수표가 978억원과 456억원씩 분산 예치돼 있었다. 특검은 이 차명계좌가 삼성의 비자금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차명 자산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 회장의 차명 자산은 4조5373억원 규모. 이 가운데 삼성생명 차명지분이 2조2254억원 포함돼 있다.
주목할 부분은 차명계좌의 자금 원천을 밝히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이건희 회장의 상속 재산이라고 판단한 부분이다. 조준웅 특검은 기자들의 질문에 “자세히 하기는 설명하기 좀 그렇다”고만 답변했다. 가장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 설명을 얼버무린 것이다.
조 특검의 이 발언은 수사 결과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특검은 차명계좌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그 출처를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았고 삼성 비자금과의 연관성도 부정했다. 삼성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법적 허점을 이용해 사실상 삼성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조 특검은 “차명계좌를 운용하는 것이 우리의 관행, 우리의 경제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져 특수한 몇 명만 하는 것이지, 전혀 안 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금융실명제 이후에는 차명 자체가 안 되게 돼 있는데, 그것조차도 차명계좌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처벌하지는 않는다”는 것. 현재 금융실명제가 차명계좌를 개설해준 금융기관 당사자들에 과태료 부과하는 수준에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차명 자체로는 엄청난 범죄 아니라는 이야기다. 조 특검은 “차명계좌 지금 많이 있다”면서 “여러분들 중에서도 차명 가진 사람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특검은 “차명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당시 사정이, 오늘까지 이르는 상황이 우리 경제 습관이랄까, 관행에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니냐”면서 “완전한 차명이란 건 있을 수 없다는 차원의 말”이라고 덧붙였다. 또 “차명 운용 자체는 처벌의 대상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주식을 사고파고 할 때의 양도세를 포탈한 내용이 있다든지, 그 속에서 증권거래법 위반 등이 있다든지 그것은 처벌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특검은 양도소득세 포탈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지만 대부분 차명 계좌가 비자금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차명 재산이라는 삼성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고가 미술품 구입이나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삼성화재 비자금 조성 의혹은 삼성화재 경영진의 책임으로 돌렸고 증거 인멸 혐의도 실무 담당자들에 한정했다.
조 특검은 또 “일반적인 배임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 것과 관련,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CB나 BW 발행이 법에 저촉되지 않고 물려줄 수 있는 자기들 나름의 법적 검토를 했지 않았겠느냐”면서 “소유와 경영구조나 법제도 등 장치와 거기에 대한 규제, 대주주가 몇 %이상은 보유하지 못한다, 분산해야 한다는 등의 요건이 있는데 경영권 방어를 해야 하니까 차명으로 보유해야하지 않냐 그런 상황들을 고려해서 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