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특검팀은 17일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조세포탈,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이 회장을 포함해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 최광해 부사장 등 10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간단히 특검 발표를 요약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을 짚어본다.


1. 삼성에버랜드 사건.

이건희 회장 등은 1996년 12월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발행해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이 인수하도록 해 969억원의 손해를 끼쳤다. 특검은 전환 사채 발행 과정에 당시 그룹 비서실 재무팀 소속의 이사 김인주와 재무팀장 유석렬 등이 주도하고 차장 이학수, 비서실장 현명관에게 보고를 하고, 그 내용이 회장 이건희에게 전달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검은 전환사채의 발행 계획 단계부터 에버랜드의 법인주주인 중앙일보와 제일모직, 삼성물산, 삼성문화재단 등은 인수가능성이 전무했다고 밝혔다. 애초에 기존 주주들을 상대로 한 전환사채 인수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을 알고도 주주배정 형식으로 발행해 이재용 등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도록 했다는 이야기다.

2. 삼성SDS 사건.

이건희 회장 등은 1999년 2월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헐값에 발행해 이재용 등이 인수하도록 해 1539억원의 손해를 끼쳤다. 특검은 구조본 재무팀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삼성SDS 이사회는 당시 시가인 5만5천원에 훨씬 못 미치는 7150원에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는 것을 동의했다. 특검은 이 회장 등을 배임죄로 불구속 기소했다.

3. E삼성 사건.

제일기획과 에스원 등 삼성 9개 계열사는 2001년 3월, 구조본의 지시를 받고 이재용이 최대 주주로 있던 E삼성과 E삼성인터내셔널, 시큐아이닷컴, 가치네트 등 4개 회사의 보유 지분을 사들였다. 문제는 이들 회사들의 경영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특검은 E삼성 등의 지분을 인수한 9개 계열사가 고의로 이재용 등에게 부당한 이득을 취하게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검은 E삼성 등의 당기순이익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고 외부 회계법인에 의뢰, 가치평가를 하고 의사회 의결을 거치는 등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고 밝혔다.

4. 서울통신기술 사건.

1996년 11월 이재용 등이 헐값에 인수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사건이다. 특검은 이 사건 역시 그룹 회장 비서실의 개입이 있었고 이재용의 주식 취득 이후 삼성전자 등의 지원으로 주식 가치가 급상승하는 등 이재용에게 재산상 이득을 얻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지만 공소시효(7년)가 만료됐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5. 4건의 고소·고발 사건의 수사방치 의혹에 관한 조사.

특검은 에버랜드 사건 등의 수사기간이 8년에 이르는 등 통상의 사건처리에 비춰 상당기간 지연처리된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주임 검사들이 검찰 인력 여건상 이 사건만 전담한 것이 아니므로 그때그때마다 발생하는 현안 사건을 처리하면서 함께 수사하는 처지였고 수사기록만 2만5000쪽에 이를 정도로 나름대로 수사를 해 온 것을 보면 결코 고의적으로 수사를 기피하였다거나 사건을 방치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6.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명의 차명계좌 추적.

특검이 확인한 차명 계좌는 총 486명 명의의 1199개에 이른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대부분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이 가운데 이건희 회장의 차명 보유재산은 지난해 12월말 기준으로 4조5373억원에 이른다.

7. 양도소득세 포탈 및 증권거래법위반에 대한 수사.

차명으로 확정된 1199개 계좌 가운데 양도 소득세 부과 대상이 되는 삼성그룹 7개 계열사(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물산, 삼성증권, 삼성화재, 에스원)의 주식 거래가 있는 증권위탁계좌는 258명 341개 계좌. 이 가운데 주식 매매로 발생한 양도 소득액은 5643억원, 이에 대한 양도소득세 포탈액은 1128억원에 이른다. 이건희 회장은 소유주식수 변동 내용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8. 삼성화재보험 비자금 조성 및 증거인멸 사건 수사.

특검은 삼성화재가 고객들에게 지급하지도 않은 미지급 보험금을 마치 실제로 지급한 것처럼 허위로 회계처리를 하고, 직원들 명의의 차명 계좌로 송금한 다음 이를 현금 인출한 정황을 밝혀냈다. 특검이 밝혀낸 횡령 규모는 9억8천만원에이른다. 특검은 황태선 삼성화재 대표이사 등을 횡령 혐의, 전산데이터를 삭제한 삼성화재 김승언 전무 등을 특검법위반 및 증거인멸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9. 고가 미술품 구입 관련 수사.

특검은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가 구입한 미술품 대금은 이 회장의 개인 차명계좌에서 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특검은 또 홍씨가 구입한 미술품 대금을 삼성생명에서 현금으로 지급하였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 내사를 종결했다고 밝혔다.

10. 삼성생명 주식의 차명 여부 수사.

특검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선대 이병철 회장 사망 당시 삼성생명 지분을 차명으로 상속받아, 1998년 이 가운데 일부를 매매의 형식을 빌어 자신의 명의로 변경했고 일부는 에버랜드에 저렴한 가격으로 매도했다고 밝혔다. 특검은 또 1998년 12월, 이 회장이 차명주주 15명으로부터 주식 299만주를 주당 9천원에 매입하는 과정에서 상속세를 내지 않은 사실이 인정되지만 공소 시효가 지나 상속세 포탈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명의신탁한 주식지분을 반환받은 행위에 대해 조세포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도 밝혔다.

11. 삼성전자 성과급 유입계좌의 차명여부 수사.

삼성전자의 자금이 성과급 명목으로 빠져나와 구조본 재무팀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과 관련, 특검은 회사 비자금 계좌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12. 삼성계열사의 분식회계를 통한 비자금 조성 혐의.

특검은 삼성중공업 등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임의제출 받은 감사조서와 외부 공시자료, 삼성물산으로부터 제출받은 관련 자료 등을 통해 검토한 결과,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과 관련된 분식회계 및 비자금 조성 혐의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검은 특히 국세청 등으로부터 임의적인 자료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세청 보유 각종 자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영장판사에 의해 기각되는 등 추가적 자료 확보가 어려웠고, 상법상 보관기간인 5년을 넘는 2001회계연도 이전의 감사조서와 관련 회계전표를 확보하는 것이 현행 법규상 불가능하여 이에 따른 어려움도 있었다고 밝혀 조사가 충분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또 삼성물산이 해외법인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였다는 혐의와 관련, 해외법인의 금융계좌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고 밝힌 대목도 주목된다. 특검은 삼성중공업의 분식회계와 삼성전자의 부당지원 의혹과 관련해서도 혐의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13. 삼성전자의 해외운송비 과대계상을 통한 비자금 조성 혐의.

특검은 삼성전자가 해외 운송비를 과대 계상하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과 관련, 수출신고필증에 기재된 운임으로 운임의 과대계상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고 삼성전자로지텍의 공시자료와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임의 제출받은 감사조서 등을 분석한 결과 혐의점은 발견할 수 없어 내사를 종결했다고 밝혔다.

14. 삼성SDS 전산 관련 경비 조작을 통한 비자금 조성 혐의.

삼성생명이 삼성SDS에 지급하는 전산관련 경비를 과다 지급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특검은 회사로부터 제출받은 인건비 사용 내역과 외주비 지급 내역을 검토한 결과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해 내사 종결했다고 밝혔다.

15. 불법비자금의 2002년 대선자금 및 최고 권력층 관련 의혹.

특검은 삼성의 비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거의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특검은 “이건희 회장 및 이학수 등 전략기획실 및 계열사 임직원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했으나 계열사에서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고 밝혔다. 또 ” 전략기획실에서 관리하는 거대 규모의 비자금 계좌를 철저히 추적했으나 계열사에서 횡령한 자금이 유입된 흔적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도 밝혔다. 특검은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은 추상적 주장에 불과하고, 삼성그룹이 비자금을 조성하여 정치자금을 제공하였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특검은 또 “참여정부 관계자들에게 당선 축하금이 교부된 사실 역시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16. 불법 비자금으로 공직자에게 뇌물을 제공하였다는 의혹.

특검은 삼성이 조직적으로 공직자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의혹과 관련, “삼성그룹 내에 조직적 인맥관리체제가 구축된 것이 아닌가 또 이에 기하여 구체적 로비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조직적 로비체계를 구축한 정황이나 기타 구체적 로비정황을 추정할 만한 어떠한 증거자료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검은 “김용철 변호사가 로비 담당자라고 지목한 각 계열사 소속 전, 현직 임직원 30여명을 모두 조사했나 이들은 전부 조직적 로비체제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삼성그룹 임직원은 기업경영에 있어 부정은 ‘암’이고 그것이 있으면 반드시 망한다는 소신에 따라 준법경영을 강조해 왔으므로 조직적인 로비체제는 물론 개별적 로비도 있을 수 없다고 진술했다”면서 삼성의 입장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그쳤다. 특검은 “수사결과만으로는 삼성그룹이 현대 기업 경영의 필수요소로서 강조되는 인맥관리의 범주를 넘어서는 불법 로비를 위한 조직적 인맥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볼만한 증거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특검이 김용철 변호사의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은 대목도 주목된다. 특검은 “그룹 차원의 조직적, 체계적 로비의 존재를 주장하면서도 검찰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 대한 로비활동에 관하여는 구체적인 사례를 전혀 밝히지 못하고 있어 진술 내용에 경험이 아닌 추측이 많이 가미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한 “김 변호사가 명단을 제출하지 않는 점도 명단이 실재하는지 불명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특검은 또 “사제단이 제출한 명단의 소위 삼성관리대상 검사 숫자도 수십명에서 40여명, 50여명, 40-50명 등 언급하는 때와 장소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검은 “결국 김용철의 진술은 삼성그룹의 전반적, 조직적 로비체계가 구축되어 있음을 입증하기에 불충분하고 이를 근거로 로비대상자로 지목된 개인이나 검찰 조직 전반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착수할 수 있는 수사단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

특검은 이 회장과 구조본이 에버랜드와 삼성SDS 사건 등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을 밝혀냈지만 이는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데 그친 것이다. E삼성과 서울통신기술 등 이재용의 경영권 불법 승계와 관련해서는 대부분 불기소 처분했고 이들 사건과 관련, 검찰이 수사를 일부러 지연시켰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의 업무 과다와 사안의 복잡함을 이유로 근거 없다고 일축했다.

차명계좌와 관련, 양도소득세 포탈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지만 대부분 차명 계좌가 비자금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차명 재산이라는 삼성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고가 미술품 구입이나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삼성화재 비자금 조성 의혹은 삼성화재 경영진의 책임으로 돌렸고 증거 인멸 혐의도 실무 담당자들에 한정했다.

무엇보다도 광범위한 정치권 로비 의혹과 관련해서도 특검은 아무런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단정하고 삼성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검의 수사 자료집은 150페이지 분량이지만 “자료가 부족하다”, “혐의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근거 없다”는 등의 변명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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