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로 수입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넣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
탤런트 김민선이 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긴 말이다. 조선일보가 5일 사설에서 이를 두고 “미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만약 정부가 PD수첩 보도의 비과학적 선정적 내용을 과학적·논리적으로 반박만 했더라면 어느 탤런트의 미친 발언이 인터넷을 주름잡는 사태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조선일보 사설은 그야말로 수준 이하다.
조선일보는 “TV 등 일부 매체가 유언비어의 소재를 제공하고 거기에 일부 선동에 쉽게 휠쓸리는 사람들, 그리고 이 사태를 반미운동의 운동장으로 삼으려는 세력의 움직임이 합쳐져 판단력 없는 중고교학생들까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밀려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6년 전 효순·미선양 사건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광우병 위험이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지만 이 생태적 재앙의 잠복기가 최소 10년 이상이고 아직 드러나지 않는 위험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먹거나 말거나 알아서 하면 되겠지만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입안에 청산가리를 털어넣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일단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고 나면 크든 적든 광우병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런 우려를 ‘유언비어’로 치부하고 이에 대한 논란을 ‘반미’ ‘선동’으로 매도한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집회에 참석한 중고등학생들을 판단력 없이 유언비어에 휩쓸려 다닌다고 비난한 대목이다. 조선일보는 심지어 이런 이유로 효순·미선양 추모집회까지 유언비어와 반미 선동의 결과로 매도한다.
조선일보의 주장은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사태를 키웠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2일 농림수산식품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끝장 기자회견’이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주장만 반복했을 뿐 그 구체적인 근거를 대지 못했다. 핵심은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거나 광우병의 위험이 과장된데 있는 게 아니라 정부가 국민들의 안전을 볼모로 굴욕적인 협상을 했다는데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는데 있다.
조선일보 주장의 논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조선일보가 말하는 “반대운동을 벌이는 세력들의 거짓과 논리적 모순과 위선”은 이를테면 “광우병이 위험하다는 미국과 유럽 일본지역에 태연히 관광여행을 다녀오고 맛있게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먹고 왔다”는 것. 또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가 있는 자녀들에게 ‘쇠고기를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는 사람이 있었다는 소식은 여태 한번도 없다”는 것. 조선일보는 이런 논리로 “자식들에게는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먹이면서도 다른 국민들에게만은 먹이지 않겠다면서 쇠고기 수입 반대운동에 팔을 걷어붙이는 대한민국 위선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도대체 자식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먹이면서 다른 국민들에게는 먹이지 않겠다고 반대운동에 나서는 그런 위선자가 어디에 있나. 청계천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거나 앞으로도 먹을거면서 반미를 위해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고 있다는 말일까. 도대체 반박할 가치도 없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다.
조선일보는 “정부는 밀면 넘어지고 찌르면 구멍이 뚫릴 이들의 거짓과 논리적 모순과 위선에 대해 제때 제대로 된 공박하나 못한채 여기까지 밀려왔다”고 정부를 질타한다. 해명이 부족해서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잘못된 협상이 문제라는 사실을 조선일보는 지적하지 않는다.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문제가 정부가 해명을 적절히 못해서라면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해명을 하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일보조차도 이 굴욕적인 협상을 정당화할 아무런 납득할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1등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의 꼬락서니다. 조선일보의 이날 사설은 거리로 뛰쳐나온 중고등학생들의 순수한 분노에 대한 모독이고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순이, 미선이, 그리고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광장을 가득 메웠던 2002년 6월,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에너지, 그 뜨거웠던 기억에 대한 모독이다. 조선일보는 한갓 말장난으로 이 거대한 물결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