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사나운 일이다. 한나라당이 대기업들을 겨냥, ‘투자 좀 하라’고 재촉하자 기업들이 ‘할만큼 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취임 직후 온갖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쏟아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경제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는 꼴이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21일 “재벌들이 몇십조원씩 쌓아두고도 투자를 안 한다”고 불평을 터뜨렸다. 같은 당 차명진 대변인은 한술 더 떠서 “경제 살리기라는 이유로 욕 들어가면서 특별사면도 해줬는데 투자는 뒷전이고 다른 기업 먹기나 자식들 물려주기에 급급한 기업들이 꽤 있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4일 보도자료를 내고 “올해 상반기 600대 기업의 투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8%나 늘어났다”면서 “대기업이 투자에 무관심하다고 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반박했다.

논란의 발단은 이에 앞서 한국은행이 18일 발표한 국민소득 통계에서 비롯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총고정자본 가운데 설비투자 증가율은 1.1%에 그쳤다. 건설투자는 -0.9%,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광물탐사 등 무형고정투자는 7.4%에 그쳐 총고정자본의 실질증가율이 0.5%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의 철학은 감세와 규제완화로 요약된다. 기업투자가 늘어나면 수출도 늘어나고 고용도 늘고 내수가 살아나 성장률도 올라간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이런 믿음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중반까지는 통했다. 그런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 개혁에 착수하고 주주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늘리기 보다는 구조조정과 자산운용으로 이익을 늘리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일단 관심이 가는 대목은 한은과 전경련 가운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부분이다. 전경련은 “한은의 총투자 추계에는 중소기업을 포함해 모든 경제주체의 모든 투자가 포함된데다 물가 변동분을 감안한 실질증가율을 산정하는 방식이고 전경련 집계는 건축물과 기계설비, 차량 등 유형고정자본투자로 명목 증가율을 산정하는 방식이라 괴리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전경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600대 기업의 시설투자는 45조87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8조5907억원 보다 16.8% 늘어났다.

전경련은 특히 “전체 투자의 50%를 차지하는 건설업계 및 내수 중소기업이 부진해 총고정자본 증가율이 낮게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한은 집계가 낮게 나온 것은 건설업계와 중소기업의 탓이지 대기업의 책임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전경련의 주장에 따르면 건설업계와 중소기업이 크게 부진했는데도 600대 기업들은 투자를 오히려 크게 늘린 셈이니 칭찬을 받아도 아쉬울 판이다.

그러나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 국내 기업들 현금성 자산이 77조원을 웃돈다. 총자산에서 현금성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9.7%, 자본금 대비 현금성 자산의 비율을 의미하는 현금 유보율은 404.9%에 이른다. 지난 10년 동안 총자산은 해마다 평균 6.2%씩 늘어났는데 유형자산증가율은 4.3%에 그쳤고 연구개발투자 비중도 10년 동안 0.6%포인트 늘어나는데 그쳤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국내 기업의 7대 투자부진 원인과 유인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투자부진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수익률 감소”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2002년부터 2006년 사이 가중평균 자본비용이 14.4%에 이르는데 총자산순이익률은 6.0%에 그쳤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에 크게 못 미치는 성과다.

부채비율이 이들 나라보다 낮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 기업들 부채비율은 1997년 396.3%에서 2006년 98.9%로 줄어들었는데 미국과 일본은 각각 131.5%와 156.2%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은행이 가계 대출이나 부동산 담보대출에 치중하면서 기업 대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 단기수신 비중은 1997년 16.9%에서 2006년 51.1%로 오른 반면, 시설자금 대출 비중은 15.1%에서 11.3%로 줄어들었다.

분명히 기업들 투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맞다. 전경련은 대기업들 투자는 늘었다고 반박하지만 이는 지난해 대비 늘었다는 것일 뿐 전체 투자여력 대비 투자가 줄어든 것은 명확한 사실이고 추세로 굳어지고 있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은행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기업들이 언제는 대통령 얼굴 보고 투자했나. 돈이 된다고 하면 하지 말라고 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투자를 늘릴 기업들이다. 그런데 막무가내로 기업들 투자를 늘리라고 윽박지르는 정부나 투자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맞받아치는 전경련이나 이를 단순 중계하는 언론이나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짚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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