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건설경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 대통령의 출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건설업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건설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9%, 취업자 수 비중도 7.9%에 이른다. 세계적으로 불황이 확산되고 국제 유가 급등과 환율 상승 등으로 내수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건설경기 부양은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대안이다.


정부가 21일 내놓은 부동산 대책에서는 일단 고심의 흔적이 읽힌다. 간단히 정리하면 첫째, 신도시 건설과 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해 공급을 늘리고 둘째, 수도권 전매제한을 완화해 거래를 활성화하고 셋째, 미분양 아파트를 정부가 매입해 건설회사 연쇄 부도를 막는다는 등이다. 그러나 정부는 당초 논란이 됐던 금융규제는 당분간 풀지 않기로 했다.

과거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기 위한 대책이었다면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한 대책이다. 그 과정에서 투기 수요가 몰려들고 집값이 뛰어오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투기 광풍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건설회사들을 모두 안고 가면서 동시에 부동산 거품을 빼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여러 대책을 종합하면 이명박 정부는 일단 건설경기를 부양하되, 집값이 폭등하는 사태는 피하겠다는 입장이다. 아무리 강부자 정부라고 하더라도 경기 침체 국면에 집값 폭등이 가져올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투기 수요를 뿌리 뽑지 못한 상태에서 공급을 늘리고 집값이 안정되길 바란다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하고 무책임한 발상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인천과 김포 등 신도시 건설 계획은 일단 일산이나 분당에 비교할 때 입지조건이 너무 안 좋은데다 가뜩이나 이 지역에 미분양이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몹시 우려스럽다. 재건축 규제 완화 역시 재건축 아파트 가격을 다시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수도권 전매 제한 완화는 투기적 수요를 부추길 우려가 있고 미분양 매입은 건설회사들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키면서 정작 집값 거품 해소를 지연시키게 될 전망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차이를 굳이 정리하자면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철저하게 환수해 투기 수요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입장이었고 이명박 정부는 세금을 줄여 거래를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은 투기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 불로소득을 억누르기 보다는 시장 원리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수·경제지들은 그동안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관련 세금정책을 부동산 부자들, 그리고 집 가진 사람들 전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사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없고 다만 들어가서 살 집 한 채만 있으면 된다는 사람들에게는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은 결코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주택경기는 살리되 투기는 차단해야 한다”는 22일 세계일보 사설은 이런 딜레마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신문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각종 규제를 가하고 중과세하는 등 공세를 가한 결과 집값은 안정됐지만 거래마저 끊기는 부작용을 낳았다”면서도 그 대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이 신문은 “중장기적으로 주택가격을 부추기지 않으면서 지나친 규제를 풀어 경기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정부의 고육지책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좋지만 어렵사리 안정세를 찾아가는 부동산 시장이 다시 흔들릴까봐 심히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 신문은 부동산 거래가 끊긴 이유가 과도한 세금 때문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세금을 깎아줄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거래를 활성화시키려면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깎아줄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하는 것이 바른 해법이다.

핵심은 투기 수요를 뿌리 뽑아야 집값이 내려가고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사게 되고 그때 비로소 건설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대출 받아 비싼 집을 산 사람들이나 재건축을 기다리면서 강남에 터무니 없이 비싼 아파트에 버티고 있는 사람들은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또 건설회사들 폭리 구조도 한계를 맞게 되고 일단 지어놓기만 하면 무조건 팔려나가던 시절이 끝나면 건설회사들 연쇄 부실과 도산도 불가피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딜레마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집값 폭등을 막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투기 수요를 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기 수요에 의존해 경기침체를 넘어서려 한다. 금융규제까지 풀지는 못했지만 보수·경제지들은 더 비싼 집을 살 수 있도록 대출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건설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경우 조만간 이마저도 풀릴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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