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성구 한신대학교 국제경제학과 교수.

A-B-C-D 다음에는 다시 A가 온다. 이게 이른바 경기순환론이다. 호황일 때는 생산이 늘고 수익도 늘어나지만 과잉생산으로 재고가 쌓이고 수익이 줄어들면 불황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윤이 무제한 늘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순환론에서는 불황이 계속되면 재고가 줄어들고 다시 생산이 늘어나면서 호황 국면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만약 A-B-C-D 다음에 A가 아니라 전혀 다른 E가 온다면 어떻게 될까?


경기순환론을 비롯해 이른바 주류 경제학에서는 공황을 연구하지 않는다.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위기는 C와 D를 지나 다시 A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경기침체를 의미할 뿐 경기회복과 경기침체의 주기적인 반복을 벗어난 구조적으로 다른 어떤 상태를 예견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한다. 애초에 시장이 완벽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탓에 시장의 한계와 실패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촉발한 세계적인 금융시장의 몰락과 경기 둔화, 스태그플레이션의 확산은 세계 경제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정부는 주요 투자은행이 잇따라 무너지자 주먹구구식 대책을 남발하더니 급기야 19일 7천억달러의 긴급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부실이 터져 나올지 알 수 없다는데 있다.

국내 대표적인 좌파 경제학자로 꼽히는 김성구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를 만나 미국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 경제를 전망해 봤다. 김 교수는 최근 위기를 자본주의의 단계적 이행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바야흐로 국가독점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결합이 붕괴하는 시점에 왔다는 이야기다. 2008년 9월 이후 세계 경제는 어디로 가는가.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스템은 앞으로도 과연 지속가능한 것일까.

– 최근 세계 경제의 위기를 어떻게 보나.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위기에 직면한다. 근본적으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때문이다. 이윤창출이 고도화될수록 추가 이윤을 얻기가 어려워진다. 이에 대한 자본의 저항은 기술 혁신과 노동에 대한 통제, 두 가지로 나타난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 기술 혁신 역시 한계를 맞으면서 노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는 발전해 왔다. 이게 바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본질이고 한계다. 이 위기를 넘어설 해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 과거에는 없던 위기라는 말인가.

“지금 위기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3차 조절위기의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다. 3차 조절위기가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애초에 위기의 해법으로 선택한 신자유주의가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스스로 붕괴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독점자본의 이윤증식 요구에 충실히 복무하면서 공공부문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하부구조를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국가의 존립기반까지 흔들고 있는 셈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조절위기는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이 만드는 주기적 공황과 달리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 따른 구조적 한계를 의미한다. 흔히 주기적 공황은 과잉자본이 해소되면 끝나지만 조절위기는 주기적 공황이 반복되면서 과잉자본의 해소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을 의미한다. 조절위기의 극복은 구조재편과 자본주의의 단계적 이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게 김 교수의 이론이다.)

– 독자들을 위해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 먼저 1차와 2차 조절위기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1차 조절위기는 1873년에 시작해 1895년까지 20년 이상 이어진 장기불황이었다.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하고 경쟁이 심화하면서 이윤율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이윤이 안 나는데 굳이 공장을 돌릴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결국 공장이 멈춰서고 실업이 늘어나면서 사회 전반으로 불황이 확산됐다. 이 최초의 위기는 거대 독점자본이 등장하고 이윤율이 회복하면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 그러나 거대 독점자본 역시 결국 이윤율 저하의 함정을 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 2차 조절위기는 1930년대 들어 다시 찾아왔다. 거대 독점자본 역시 생산성이 늘어나면서 이윤율이 줄어들어드는 딜레마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 결과 사적독점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국가독점이 시작됐다. 국가가 공공 서비스와 사회보장 시스템으로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한편, 국가재정으로 과잉자본을 해소하고 독점이윤을 보장해주는 케인즈주의적 방식이다. 이를 일컬어 이른바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한다.”

– 간단히 다시 정리해 보자. 1차 조절위기의 해법은 자본의 집중과 독과점화였다. 2차 조절위기의 해법은 정부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케인즈주의의 도입이었다. 그리고 지금 겪고 있는 3차 조절위기의 해법이 바로 신자유주의였는데 이 역시 한계를 맞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기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이후 3차조절 위기를 넘어 그 다음 단계는 불가능한 것인가.

“최근의 위기는 이전의 조절위기와 애초에 해결방식이 다르다. 국가독점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결합은 독점자본의 이윤 창출에는 기여했지만 새로운 성장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그동안 시장의 실패를 보완해 왔던 국가 시스템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모순을 모순으로 극복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 국가의 해체는 과연 가능할까. 미국도 이번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을 쏟아붓지 않았나. 결국 이 시스템의 최종 책임은 국가가 지는 것 아닌가.

“그게 바로 딜레마다. 우리나라 1997년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국가는 자본의 위기를 마냥 방치하지는 않는다. 공황의 극복은 과잉자본의 청산과 새로운 축적 조건의 확립으로 가능할 텐데 국가의 개입은 오히려 이런 모순을 보완하거나 그 해결을 지연시킨다. 그리고 그 비용은 물론 국민들 세금으로 조달한다. 손실을 사회화하고 또 외부화시켜 세계화한다. 만약 국가가 손을 놓고 있었다면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을 것이다. 지금 세계 경제가 치명적인 공황으로 치닫지 않는 것은 국가가 여전히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 국가를 해체하려는 동시에 국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상황인데, 이를 신자유주의의 구조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나.

“이 지점에서 좀 더 정확히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는 결코 국가를 축출하지 않았다. 나는 이를 이데올로기적 기만이라고 본다. 국가의 축출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고, 오히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국가는 더욱 적극적으로 경제 전반에 개입한다. 노동 유연화와 공공부문 민영화, 광범위한 규제 완화, 자본시장 육성을 위한 대대적인 지원 등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케인즈주의가 독점자본의 이윤을 일정 부분 제한했다면 신자유주의는 자유화와 세계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철저하게 독점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한다. 문제는 이런 국가의 개입이 이윤율 저하를 더욱 가속화하고 결과적으로 독점자본의 존립기반을 무너뜨린다는데 있다.”

–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금융산업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긴 하지만, 성장의 한계를 금융산업으로 넘어서는 것은 가능할까. 과연 최근 금융위기가 돌발적인 상황이고 다시 복원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구조적인 한계이고 다음 단계로 이행이 불가피한 것인지가 궁금하다.

“독점자본이 3차 조절위기의 탈출구로 선택한 것이 바로 금융투기였다. 성장의 한계를 규제완화와 금융 세계화로 넘으려는 발상인데 호황의 말기에는 과잉 유동성이 자산가격 거품을 불러오고 실제로 수익창출의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문제는 1980년대 이래 과잉 유동성이 계속 누적되면서 공황국면에서도 거품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는다는데 있다. 실물경제가 이윤율의 한계를 맞는 상황에서 금융자본이 이윤을 증식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성장률은 둔화하고 실업은 늘어나고 있으며 정부의 재정적자와 채무는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실물경제의 뒷받침이 없다면 금융투기의 팽창은 결국 돈 놓고 돈 먹기의 제로섬 게임일 뿐이다. 이런 머니게임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자본시장은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지 않았나.

“세계적으로 전체 금융거래 가운데 상품과 서비스 교역과 관련된 거래는 1~2% 수준이고 나머지는 모두 투기적 목적의 거래라고 한다. 과연 생산부문과 괴리된 이런 투기적 거래가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가뜩이나 미국 자본시장은 독점자본과 금융자본이 결탁해 만든 국제적 수탈의 결과다. 이 역시 한계가 분명하다. 세계화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나라들이 결국 세계화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이 ‘세계시장’에는 시장의 모순을 조절할 수 있는 ‘세계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미국 주도 초국적 금융자본의 몰락이 바로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조절수단을 상실한 세계 경제의 위기 메카니즘은 결국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 신자유주의 좀 더 넓혀서 자본주의 이외의 다른 대안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민중적인 정치적, 정책적 대안을 대중 속에서 발전시키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라면 세계화와 자유화라는 큰 흐름을 인정하면서도 국제적인 수준에서 그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실현하고 또 그 전제로서 국민적인 수준에서 사회적 통제를 확대하는 것이다.”

– 흥미로운 이야기다. 결국 우리는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가와 맞서 싸우면서 동시에 국가를 지켜야 하는 상황인데.

“전선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싸움은 공공부문의 영역을 누가 확보하느냐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이 싸움은 애초에 국가독점자본을 부정하지 않는다. 국가를 부정하지 않고 당연히 새로운 사회를 꿈꾸지도 않는다. 독점자본의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론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싸움의 다른 한편에는 마르크스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싸움이 있다. 이들은 국가독점자본을 지키느냐 없애느냐를 놓고 싸운다. 사회적 연대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순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사회민주주의는 결국 복지 시스템의 후퇴를 경험하고 있다.”

– 결국 여전히 마르크스주의가 대안이라는 이야기인데.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이행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무너질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체제 전복을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니고. 자본주의 이후를 고민하면서 국가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은 모순 아닌가.

“그건 오해다. 좌파는 개혁 투쟁에는 개입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이행을 위해서만 싸운다? 그래서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이다? 상투적인 비판이다. 좌파는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 논쟁에 끼어들어서 국가의 역할을 케인즈주의보다 더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질서 아래서도 공공부문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고 동시에 자본주의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면서 케인즈주의의 한계를 넘어 좀 더 왼쪽으로 나간 싸움. 그 싸움에서만 자본주의의 이행을 준비할 수 있다. 좌파가 공공부문 수호 투쟁에 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다시 정리해보자. 자본주의 내부에서 싸우면서 자본주의 이후를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대중은 이데올로기와 싸우는 게 아니라 생존의 조건들과 싸운다. 체제 전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개량주의라고 몰아붙이면 곤란하다. 삼성그룹을 국유화하자거나 사립대를 국립대화 하자는 등의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고 먹혀들지도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 이후 물질적 위기가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면서 대중의 이데올로기가 많이 오염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특히 최근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그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고 정치적 지형 역시 조금씩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사회 공공성 투쟁에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 과연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고 여전히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에 대한 환상도 남아있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운동의 기반은 여전히 취약한데.

“좌파인 척 하는 온건한 신자유주의자들이 더 문제라고 본다. 이들은 재벌개혁을 요구하고 정부 조세정책과 예산집행을 감시하고 비판하면서도 결국 자본주의 질서를 더욱 강화하는데 기꺼이 협력한다. 이 지점에서 온건한 신자유주의자들과 좌파들이 대립하는데, 물론 폭넓은 연대가 필요하고 실제로 연대도 해야겠지만 결국 지향점이 다르다. 이들 온건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좌파들이 말하는 자본주의의 이행을 몽상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은 수익성 높은 공기업을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결국 모순을 드러낸다. 이들이 믿는 주류 경제학에는 공황도 없고 실업도 없다. 효율적인 시장과 완전 고용만 있을 뿐이다. 이들이 정부 관료부터 진보적 시민운동까지 모두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의 위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당연히 설명하지도 못하고 아무런 대안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도 이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 지금 국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신자유주의가 패배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게 분명해지면 다른 길로 가야 한다. 사회적 조절의 확대와 민주적 통제의 강화, 나는 이를 민주적 구조개혁이라고 부르는데 당장은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에 맞서 공공부문 수호 투쟁, 사유화 반대 투쟁이 당면 과제다. ”

Similar Posts

One Comment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