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잘못하면 회사를 잘리는 수가 있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회사의 입장과 배치된다면 위험하다. 특히 상당수 고객들의 반발을 사는 발언이라면 더욱 그렇다.)
반토막 난 펀드를 아직까지 들고 있는 투자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곧 바닥을 친다고, 이제 와서 팔면 오히려 손해라고, 정부는 물론이고 금융회사들과 언론은 한 목소리로 근거없는 낙관론을 확대 재생산해왔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의 부설 연구소인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한상춘 부소장이 “지금까지 환매를 못한 것은 개인들 탐욕 때문”이라고 지적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인 한 부소장은 16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펀드가 반토막난 투자자들은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의 질문에 “작년 12월 초와 올해 1월 초 이런 위험에 대해 사전에 많이 경고를 했다”며 “그런 상태에서 지금까지 환매를 못한 것은 개인의 탐욕이나 기대심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시골의사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경제평론가 박경철씨가 이에 반박해 “경고를 작년말부터 하셨다고 했는데 못 들은 사람이 많았다”며 “목소리가 좀 작으셨다”고 말했다.
한 부소장의 발언에 방청객이 술렁였던 것은 물론이고 시청자 게시판에는 항의 게시물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도 한 부소장의 발언을 질타하거나 비꼬는 글이 쏟아졌다. 미래에셋은 지난해부터 불어 닥친 펀드 열풍의 선두 주자이기도 하고 주가가 폭락한 뒤에도 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며 환매를 하지 말 것을 앞장서서 외쳐온 대표적인 낙관론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박현주 회장이 나서서 공격적인 성향의 인사이트 펀드를 설립, 중국 투자 비중을 크게 늘려 반토막 이상의 손실을 보고 있기도 하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되자 미래에셋은 17일 공식 해명자료를 내고 한 부소장을 직위해제했다. 가뜩이나 대량 펀드환매가 이른바 펀드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미래에셋으로서는 민감한 발언일 수밖에 없다. 미래에셋이 이례적으로 강도높은 조치를 취한 것도 투자자들의 분노를 한 부소장 개인에게 돌리려는 의도라는 것이 시장의 관측이다. 미래에셋은 한 부소장의 발언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일뿐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강창희 소장은 “본의 아니게 한 개인의 의견이 저희 연구소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비추게 됐다”면서 “연구소 설립 취지와 맞지 않게 개인적 의견을 피력해 투자자 여러분의 심려를 끼친 한상춘 부소장을 직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강 소장은 “한 부소장이 장기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미래에셋의 입장과 달리 부적절한 표현을 써서 투자자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린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날 한 부소장의 발언은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장에는 위험 징후가 쏟아졌고 일부에서나마 과열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상당수 개인 투자자들은 반등을 기다리다가 손절매할 기회를 놓쳤다. 이를 탐욕이나 기대심리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주가의 방향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결코 쉽지 않지만 손절매 원칙만 지켜도 과도한 손실은 피할 수 있다. 물론 언론이 과열로 치닫는 시장을 감시하고 제때 경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탓도 있다.
문제는 이런 비판에서 한 부소장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데 있다.
한 부소장이 지난해 말과 올해 1월 한국경제에 쓴 칼럼을 보면 한 부소장 역시 시장에 낙관론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일조를 해왔음을 알 수 있다. 한 부소장은 12월23일 “‘MB 효과’와 코스피 5000 포인트”라는 제목의 칼럼에서는 “새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꾸준히 올라갈 경우 코스피지수는 3000이 아니라 5000포인트 달성도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망한 바 있다.
제목만 봐도 한 부소장이 강력한 낙관론자였음은 분명해진다. “한국 증시 ‘새 정부 출범하면 큰 장 선다'(12월9일)”, “뭉칫돈, 새해에는 ‘펀드’ 로 더 몰린다(12월30일)”, “중국 증시 폭락설과 신 역발상 투자(1월6일)” 등 한 부소장은 철저하게 낙관론으로 일관해 왔다. 특히 “올 하반기 증시 ‘환율’ 이 효자된다(1월20일)”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는 “올 하반기 이후 미국과 세계 경기가 안정되고 유리한 환율 움직임까지 겹칠 경우 수출업종이 우리 경기와 증시 안정에 크게 기여하는 효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결과적으로 현실과 전혀 다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한 부소장의 칼럼과 별개로 토론회에서 한 소신 발언이 과연 직위 해제의 대상이 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다. 한 부소장이 틀린 말을 했나. 개인 투자자들 또는 고객들은 아예 비판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되는 것인가. 한 부소장의 직위 해제 사유가 그가 그동안 주장했던 낙관론을 뒤집는 일관성 없고 무책임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가가 아무리 빠져도 환매를 해서는 안 된다는 미래에셋의 영업 철학에 배치되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한 부소장의 직위해제는 석연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