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인출해 부채 갚는 것 뿐… 미국 국채 의존도 줄일 적극적 대안 절실.

지난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2천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2005억1천만달러로 10월 말보다 117억4천만달러 줄어들어 2005년1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한은이 경쟁 입찰 방식의 스와프 거래를 통해 75억달러를 공급하고 정부가 수출입은행을 통해 67억달러를 대출하는 등 대규모 외화 유동성 공급에 나서면서 급감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음날부터 언론은 외환보유액 급감에 따른 불안감을 쏟아냈다. 상당수 언론이 “2천억달러에 턱걸이 했다”는 표현을 썼고 세계일보는 “심리적 마지노선인 2천억달러 붕괴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12월 중 2천억달러 아래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면서 “10월 중 자본수지가 경상수지 흑자의 5배인 255억3천만달러의 순유출을 기록한 것처럼 외화유출이 유입을 능가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신문은 “우려스러운 외환보유고 급감”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곳간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고갈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면서 “아직도 지지부진한 규제 완화의 속도를 높여 외국인들에게 적합한 투자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엉뚱한 결론을 끌어내기도 했다. 이 신문은 “근본적으로 외국인들의 바이 코리아 행렬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논조는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포함해 대부분 신문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대부분 한은 발표를 인용, “현재의 외환보유액 수준으로 대외지급 수요를 감당하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지적했으면서도 외환보유액 급감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한겨레는 “외환보유액 2천억달러를 사수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연말을 넘긴다 해도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안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부분 언론이 간과하고 있지만 최근 외환보유액 감소는 유동성 공급 차원에서 민간부문에 지원돼 외채상환에 쓰였다는 점에서 과거처럼 인위적인 환율 방어에 외환보유액을 소진한 것과 차이가 있다. KB투자증권 주이환 연구원은 “외환보유액이 감소하는 만큼 외채도 줄어들고 있어 외환보유액 감소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외환보유액의 절대 규모가 아니라 외화대비 적정 외환보유액의 규모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유동외채비율 100%를 안정적인 수준으로 보는데 3분기 기준 이 비율은 94.8% 밖에 안 된다. 10월과 11월 두 달 동안 외환보유액이 392억달러 줄어든 반면, 유동외채도 비슷한 수준인 350억달러 이상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계산이라면 11월 말 기준으로도 유동외채비율은 95.9% 수준이다. 주 연구원은 외환보유액이 2천억달러를 밑돌더라도 유동외채비율이 100%를 크게 웃돌지 않는다면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주 연구원의 표현에 따르면 최근 외환보유액 감소는 가계가 부채 연장이 안 돼서 예금을 인출해 부채를 상환하는 것과 같다. 이 경우 해당 가계의 자산은 줄어들겠지만 재무위험이 더 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채대비 충분한 자산이나 예금을 확보하고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외채 이자 부담과 외환보유액 유지비용을 줄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외환보유액 관련 언론 보도는 외환보유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외환보유액의 적정규모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는데다 이 정도 규모를 유지하느라 외국환평형기금 등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으며 또 외환보유액의 상당부분이 미국 국채에 투자되고 있어 달러화 가치가 하락할 경우 대규모 평가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사실 등이 간과되고 있다.

언론은 외환보유액이 줄어들 때마다 당장 외환위기가 닥칠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적정규모를 초과하는 외환보유액이 엄청난 유지비용과 부작용을 수반한다는 지적하지 않는다. 미국 국채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투자 대상을 다변화하고 신 브레튼우즈 체제를 도입하거나 아시아 공동통화를 설립하는 등의 좀 더 적극적인 대안을 고민하려는 움직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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