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빚이 평균 4128만원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인데 2007년과 비교하면 286만원이나 늘어났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부채가 연간 소득의 3배 이상인 가구 비중이 32.0%나 된다. 특히 부동산 가격이 10% 떨어지면 자산 대비 부채 비중이 4.2%에서 5.2%로 불어난다는 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은 2003년 신용카드 사태 이후 부채가 소비에 미치는 효과가 마이너스로 전환돼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과거에는 빚이 늘어도 소비를 늘렸지만 2003년 이후로는 소비를 줄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고부채+적자 가구의 부채 비중이 7.7%로 5년 전 4.0%에서 2배 가까이 늘어난 것도 우려스럽다.
이와 관련,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텐데, 일단 부동산 가격과 악성 부채의 상관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가격이 10% 하락하면 취약가구의 부채 비중은 4.2%에서 5.2%로 올라간다. 특히 원금 분할 상환이 본격화되면 이들 가구의 소득 대비 부채 비중이 7.9%에서 11.0%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분석됐다.
가계부채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빚이 늘어나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내수 위축과 경기 침체로 이어질 거라는 이야기다. 가뜩이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실업이 늘어나면 가계부채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87.6%, 경제개발협력기구 평균 64.4%를 훨씬 웃돈다.
이와 관련, 경향신문과 매일경제가 전혀 다른 해법을 내놓고 있어 주목된다. 경향신문이 가계부채 급증이 정부의 무모한 부동산 규제완화와 은행의 과도한 대출 경쟁 때문이라고 지적한 반면 매일경제는 부동산 가격 경착륙을 막아야 한다면서 더욱 과감한 규제완화를 주문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25일 사설에서 “은행들은 부동산 투기 붐을 타고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 대출을 늘리는데 온 힘을 쏟았다”면서 “은행들의 과도한 예대율이 한국경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강남 3구를 제외한 모든 투기지역을 해제하는 등 정부 책임도 크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매일경제는 “집값이 급락하면 곧바로 가계 빚 가운데 37%를 차지하는 주택대출 부실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신용경색과 자산가격 하락을 부추길 것”이라면서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를 포함해 주택시장에 남아있는 규제를 모두 풀어 거래부터 살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계대출 만기 연장을 적극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경향신문이 “연체율 급증이 금융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금융감독을 강화하고 채무 재조정 등의 대비책을 미리 세워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반면, 매일경제는 “근본 처방은 어디까지나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있다”면서 “취약계층의 실질소득을 늘려주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매일경제의 주장대로 강남3구까지 투기지역에서 해제해서 부동산 투기수요를 다시 불러 일으키고 가계대출을 만기연장하도록 정부가 은행들에 압력을 넣고 대출 금리까지 낮춰주면 당장 집값 하락을 막을 수 있다. 집값을 다시 끌어올릴 수도 있고 가계부채가 부실화될 위험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빚을 내서 집을 사기 시작할 것이고 가계부채는 더 불어날 것이고 은행들은 더욱 위기에 취약해진다. 집값이 영원히 계속 뛸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이 위험천만한 폭탄 돌리기를 언젠가는 끝내야 할 텐데 매일경제는 다시 폭탄을 돌리자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