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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 초임, 일본 보다 높다고? 전경련의 어설픈 거짓말.

Written by leejeonghwan

February 26, 2009

30대 그룹 채용 담당자들이 모여서 대졸 신입사원 연봉을 최고 28%까지 깎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이들 채용 담당자들은 대졸 초임 2600만원이 넘는 기업들이 대상이고 향후 다른 기업들까지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임금을 깎아 마련된 재원으로 고용을 유지하거나 신규 또는 인턴 채용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주목할 부분은 이들이 대졸 초임을 깎아야 한다면서 그 근거로 우리나라 대졸 초임이 일본보다 높다고 주장한 대목이다. 전경련은 기자들에게 배부한 참고 자료에서 “2007년 기준 우리나라 대졸 신입 초임은 월급 기준으로 198만원으로 일본의 162만원이나 싱가포르 173만원, 대만 83만원 보다 높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대졸 초임은 일본과 비교하면 모든 업종에 걸쳐 높은 수준이며 기업규모로 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일본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전경련은 “기업 규모가 클수록 격차가 커서 1천명 이상 대기업의 경우 두 나라의 격차가 4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대졸 초임 삭감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구체적인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과연 우리나라 대졸 초임이 일본 보다 높은 것인지 석연치 않다. 전경련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의 자료를 인용했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사무직 대졸 초임이 평균 20만5074엔, 기술직이 20만6579엔이다. 2007년 환율로 환산하면 원화로는 161만원, 올해 환율로는 320만원이 된다.

그런데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만든 참고 자료를 보면 2007년 일본 산노총합연구소 자료가 인용돼 있는데 여기에는 일본의 대졸 초임은 연봉 기준으로 292만엔으로 돼 있다. 2007년 환율 7.89원을 적용하면 원화로는 2304만원이 된다. 그해 원엔 환율이 바닥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올해 2월 환율로는 4538만원 수준이 된다.

월급 기준으로 환산하면 일본 대졸 초임이 전경련 자료에서는 162만원, 경총 자료에서는 192만원으로 30만원이나 차이가 난다. 전경련은 삭감 기준을 2600만원 이상으로 한정한 근거로 2008년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를 인용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일본 대졸 초임이 239만엔으로 돼 있다. 원화로는 2630만원, 월급 기준으로는 219만원이 된다.

162만원과 219만원. 어떻게 비교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198만원보다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전경련은 여러 자료 가운데 굳이 환율이 가장 낮았던 2007년, 그것도 대졸 초임이 가장 낮게 집계된 자료를 인용하면서 “경쟁국보다 과도하게 높은 대졸 초임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끌어냈다.

26일 주요 언론 가운데 이 사실을 지적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대부분 언론이 전경련 발표를 단순 인용해 우리나라의 대졸 초임이 일본 보다 높다는 사실을 기정사실화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대졸 초임 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임금체계의 거품을 과감하게 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나라가 국내총생산 대비 대졸 초임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2007년 기준으로 1인당 GDP 대비 대졸 초임은 우리나라가 127.9%나 되는 반면, 일본은 72.3%로 차이가 크다. 그러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우리나라의 취업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사회 후생복지가 열악해서 직접 임금 비중이 높은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일자리 나누기의 핵심은 노동시간 단축인데 정부와 기업들은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생각으로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이윤을 늘릴 수 있겠지만 가뜩이나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 내수 기반을 갉아먹고 오히려 실업을 늘리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 하종강 소장은 “인건비를 절감해서 경제 위기를 넘어선 나라도 기업도 없다”고 지적한다. “임금을 깎아서 낮은 생산성을 보완하는데 익숙해지면 오히려 장기적으로 경쟁에서 뒤쳐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하 소장은 “임금 삭감은 최악의 경우에 임시적인 조치로 제한돼야 한다”면서 “결코 경제위기 극복의 해법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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