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면 ‘1Q84’를 읽지 않을 방법이 없다. 하루키가 ‘해변의 카프카’ 이후 7년 만에 쓴 장편 소설인데다 하루키 문학의 집대성이라는 떠들썩한 평가가 따르는 작품이다. 1권과 2권은 100만부가 팔렸고 1년 만에 최근 출간된 3권은 예약 판매만 3만부를 넘어섰다고 한다. 3권 역시 출간하자마자 곧바로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다.
참고 : ‘1Q84’ 1~2권 서평. (이정환닷컴)
하루키의 소설 가운데 해피엔딩이 있었던가 돌아볼 정도로 1Q84 3권의 결말은 낯설다. 아오마메의 자살로 끝났던 2권과 달리 3권에서는 살아 돌아온 아오마메가 우여곡절 끝에 덴고를 만나는 줄거리다. 두 사람은 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거꾸로 올라가 1Q84의 세계에서 1984의 세계로 돌아온다. 다행스럽긴 하지만 이건 어딘가 헐리우드 영화처럼 억지스럽다.
2권에서 아오마메는 종교 집단 ‘선구’의 리더를 죽인다. 그는 하루키 소설의 계보에서 ‘양을 쫓는 모험’에 나오는 양 사나이의 아버지 양 박사와 우익의 거물인 선생님, 그리고 주인공의 친구인 ‘쥐’의 연장선에 있는 사람이다. 그들의 사념을 양이 장악하고 있을 때 그들은 놀라운 예지력과 직관력을 보인다. 그러나 양이 빠져 나가면 그들은 껍데기가 된다.
‘1Q84’에서 양은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선구’의 리더는 ‘리틀 피플’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그 목소리를 따르던 ‘선구’는 리더가 죽자 엄청난 혼란에 빠져든다. 이들은 이를테면 ‘양이 빠져 나간 상태’가 돼서 아오마메를 뒤쫓는다. 리더를 죽이던 날 아오마메는 20년 동안 만난 적 없는 덴고의 아기를 임신하게 된다. 그게 양을 넘겨받는 의식 아니었을까.
‘양을 쫓는 모험’의 키키와 ‘댄스댄스댄스’의 유키처럼, ‘1Q84’의 후카에리는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매(靈媒)다. 덴고는 후카에리의 소설, ‘공기 번데기’를 ‘리라이팅’하고 난 뒤 1Q84의 세계로 건너온다. 그리고 후카에리와 섹스를 하면서 아오마메와 연결되고 아오마메와 함께 다시 1984의 세계로 돌아온다.
왜 덴고가 주인공인가, 왜 덴고에게만 1Q84의 세계가 열리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메트릭스’에서 트리니티가 네오를 찾아온 건 네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지만 덴고는 평범한 학원 강사일 뿐이다. ‘양을 쫓는 모험’과 ‘댄스댄스댄스’의 주인공인 나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은 여기에 하루키 소설의 일관된 문제의식이 있다.
1995년 옴 진리교 사건을 다룬 ‘언더그라운드’에서 하루키는 “우리들 내면에 존재하는 근원적 공포”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하루키는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지하 괴물, ‘야미쿠로’를 언급하면서 “그것은 우리들 의식의 언더그라운드가 집단 기억으로서 상징적으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순수한 위험 그 자체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하루키에 따르면 ‘야미쿠로’는 “그 어두움에 잠겨 있는 뒤틀린 것들이 순간적으로 현실화돼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미칠지 모르는 의식의 파동”이다. 이를테면 그 의식의 파동은 언제나 우리 발밑에 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 1Q84의 세계처럼 그것은 평범한 우리들 주변에 상존한다.
하루키는 그 어둠의 세계를 “우리가 직시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배제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내적인 그림자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어둠의 세계’는 하루키의 소설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돼 왔다. ‘태엽 감는 새’의 우물이나 ‘댄스댄스댄스’의 양 사나이의 방은 1Q84의 세계의 다른 형태다.
하루키는 묻는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자아의 일정 부분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어떤 제도, 곧 시스템에 인격의 일부를 건네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제도가 언젠가 당신에게 어떤 ‘광기’를 요구하지 않을까. 당신의 ‘자율적 파워 프로세스’는 올바른 내적 합의를 얻고 있는가. 당신의 이야기는 정말 당신의 이야기인가.”
‘언더그라운드’에서 하루키는 옴진리교 사건의 피해자 60명의 인터뷰를 싣고 있는데 그들 하나하나가 소설의 주인공처럼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루키가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언더그라운드’의 문제의식은 다른 소설에서도 그대로 투영된다. 하루키는 ‘언더그라운드’는 당신에게도 있다고, 당신의 언더그라운드를 들여다 보라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일탈을 꿈꾸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현실을 긍정하고 견뎌낸다. 거대 담론을 거부하고 일상적인 가치에 천착하는 하루키 스타일, 그게 하루키 소설의 매력이면서 한계이기도 하다. 덴고를 비롯해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평범해 보이지만 자신의 ‘언더그라운드’를 들여다보고 성찰할 줄 아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20년을 기다려온 덴고와 아오마메의 만남은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이런 해피엔딩은 어딘가 하루키답지 않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고 싶겠지만 그게 결코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걸 하루키도 잘 알고 그의 독자들도 잘 안다. 아마 4권이 나온다면 아오마메가 어느 날 훌쩍 사라지고 덴고는 다시 1Q84의 세계에 휘말려드는 줄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