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도 이런 굴욕이 있을 수가 없다. 졸속도 이런 졸속이 있을 수가 없다. 협정문의 점 하나 고칠 수 없다더니 결국 재협상까지 가면서 그나마 최대 성과라고 평가했던 자동차 부문을 송두리째 양보했다. 그런 가운데 미국 정부가 3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결과를 일방적으로 발표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본부장은 3일 기자회견에서 “양측 대표단은 금번 회의 결과를 자국 정부에 각각 보고하고 최종 확인을 거쳐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4일 일방적으로 무역대표부 홈페이지에 협상 결과를 공개해 버렸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까지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본부장을 비롯해 상대방 대표단이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도중에 이처럼 일방적으로 협상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심각한 외교적 결례가 아닐 수 없다. 이때문에 미국 정부가 우리 대표단에 사전 양해를 구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가뜩이나 우리나라는 굴욕적인 재협상을 했다는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내세워 서둘러 여론 몰이에 나서면서 우리 정부의 입장이 더욱 곤혹스럽게 됐다. 청와대는 4일 성명을 내고 “공개된 자료는 추가협상 타결 내용 중 일부분”이라며 “우리 정부 발표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국 정부가 공개한 협상 결과에는 이미 알려진 대로 한국산 승용차에 대해 미국 측이 물리는 2.5%의 관세철폐 기한을 5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기존 협정문에는 배기량 3천CC 이하 승용차는 협정 발효 후 즉시관세를 철폐하고, 3천CC 초과 승용차는 3년 내에 철폐하기로 돼있었다.

또한 한국에서 판매되는 미국 자동차 가운데 미국의 안전기준을 통과했을 경우 자가인증을 허용하는 연간 판매대수를 기존 6500대에서 2만5000대까지 4배나 상향조정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당초 FTA 협정 발표 즉시 미국산 승용차에 대해 부과해 온 8%의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었지만, 이번 협상에서 4년 동안 4%로 낮춘 뒤 5년째 완전 철폐하도록 했다.

10년간 철폐키로 했던 미국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관세도 4년 동안은 4%로 낮추고, 5년째 모두 철폐키로 했다. 적어도 자동차 부문만 놓고 보면 미국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반면 우리나라는 파격적인 양보를 한 셈이다. 이미 4년 전에 타결된 협정을 이렇게까지 양보하면서 재협상을 했어야 했느냐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그동안 농업과 축산업, 금융, 서비스 부문에서 일부 피해가 불가피하지만 자동차 부문에서 크게 유리하다며 한미 FTA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번 재협상으로 이런 명분까지 사라지게 됐다. 불평등·굴욕 협상이라는 비난과 함께 향후 국회 비준 절차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본부장은 자동차 관련 분야를 양보한 대신 축산물과 의약품 분야에서 미국의 양보를 얻어냈다고 언급했으나 크게 의미있는 성과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성과라면 쇠고기 부문 추가 개방을 막은 것 뿐인데 이 역시도 국민들을 설득시키기에는 감동이 부족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굴욕적인 재협상 결과는 지난 3월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최근 연평도 폭격 사건 등을 거치면서 종속적인 한미 관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항공모함 출동 대가를 너무 비싸게 치른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국민들을 속였다는 비난에서도 자유롭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 의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내년 상반기에도 비준이 어려운 상황이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이명박 정부 집권 후반기에 진입하면 자칫 한미 FTA 비준이 장기화되거나 영구 미제로 남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미 FTA를 계기로 경제 성장을 최대 성과로 가져가려던 이명박 정부의 계획도 오리무중이 됐다.

김종훈, “일방적 양보라는 지적 동의할 수 없다.”

정부가 3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서 자동차 부문을 크게 양보한 대신 쇠고기 수입 확대를 저지했다는 사실을 최대 성과를 내세우고 있지만 국민들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본부장은 5일 기자회견에서 돼지고기 관세철폐 시기를 2년 늦췄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날 발표된 재협상 결과를 종합하면 우선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 2.5%를 발효 후 4년 동안 유지한 뒤 없애기로 했다. 한국은 발효 즉시 미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 8%를 4%로 인하한 뒤 4년 뒤에 없애기로 했다. 결국 한미 양국이 모든 승용차에 대해 4년 뒤부터는 관세를 철폐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동시에 연비와 안전기준 등도 대폭 완화해서 자동차 부문만 놓고 보면 미국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날 통상교섭본부가 밝힌 우리의 성과는 돼지고기 관세철폐 기간을 2년 늦춘 것과 의약품 허가와 특허 연계의무 이행을 3년 유예한 것, 그리고 기업 전근자 비자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것 등 전반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김 본부장은 “우리의 일방적 양보라는 일부의 평가에 저는 동의할 수 없으며 양국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합의의 결과라고 자평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승용차 관세철폐 일정은 상호 적용되는 것이며, 우리 승용차 관세도 당초 즉시철폐에서 4년 후 철폐로 연장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애초에 미국의 관세율이 2.5%에 지나지 않고 우리는 8%에 이르는데다 우리 승용차의 미국 수출이 미국 승용차의 국내 수입에 비교해서 훨씬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본부장이 주장하는 것처럼 상호 윈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세이프 가드 조항도 향후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우리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돼지고기 관세철폐를 늦춘 것은 일부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3년의 유예기간을 둔 것일 뿐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쇠고기 수입 조건을 지켜냈지만 그 대가가 크다는 점에서 애초에 재협상을 시작한 것부터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도 성과로는 국민들을 설득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비준 역시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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