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대의 정책 실패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신용카드 대란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경기 부양 해법으로 김 전 대통령은 신용카드 남발을 방관했고 덕분에 소비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지만 수많은 신용불량자들을 양산했고 빈부격차를 확대시켰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이 책은 김 전 대통령이 왜 그런 악수를 둘 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을 파고든다.


김 전 대통령은 신용카드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내수 활성화와 세원 확보 등의 여러 가지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폐해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 김순영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이 책에서 “경제 위기 이후 일시적으로 이뤄졌던 경기 회복은 사실상 저소득 계층이 부채를 짊어져야 가능했다는 점에서 사회의 부가 재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소득 계층의 부가 고소득 계층으로 이전돼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김 연구원은 “민주 정부의 단기적 정치적 이해와 신용카드 회사의 단기적 경제적 이해가 만나서 이뤄진 정부와 기업의 연합은 부분적으로 자기 파멸적인 결과를 낳았다”면서 “경제 위기로 인한 충격이 사회적으로 공평하게 부담됐어야 하나 경제 위기 직후 실업과 도산 등으로 큰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이들은 또 다시 국가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희생됐고 그 수익은 재벌을 비롯한 거대 기업들의 수중으로 들어갔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신용카드 대란을 계급 갈등과 민주주의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왜 민주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불평등이 더욱 확산되는가. 왜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는가.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이 부유한 사람들에게 이전되는 착취가 왜 더 심화되는가. 김 연구원은 “경제 위기 이후 한국의 경험은 사회적 시민권의 약화가 오히려 법적·정치적 시민권 마저 제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김 연구원은 “한국처럼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허약한 정당 체제 아래서 집권 엘리트가 사회적 기반을 갖지 못할 때 이들은 선거를 의식하든 통치에 필요하든 안정된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기존 재벌 기업의 영향력을 이용하는 쉬운 선택을 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대안으로 민주적 대표성과 책임성의 원리를 강화하고 금융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문제제기에 비해 결론이 모호하다는 인상을 준다.

대출 권하는 사회 / 김순영 지음 / 후마니타스 펴냄 /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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