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이후 세계 경제는 급격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의 골격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데 새로운 질서는 아직 등장하지 않은 상태다.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위기의 징후와 경고의 메시지가 쏟아져 나오긴 했지만 특히 미국 경제가 이렇게까지 망가질 거라고는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뚜껑을 열고 보니 팍스 아메리카나의 신화는 허상이었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의 초라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동안 미국 국민들은 빚을 내서 부동산 투기에 나섰고 투자은행들은 파생 금융상품을 사고팔면서 거품을 키워왔다. 재무제표에서는 이익이 늘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가치 창출은 없는 공허한 숫자 놀음일 뿐이었다. 한 군데서 부실이 터져 나오자 곳곳에서 곪은 상처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미국을 비롯해 유럽과 세계 전역으로 부실의 연쇄 도미노가 확산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기축통화 역할을 해왔던 달러화의 위상도 크게 추락했다.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화폐 가치를 낮추기 시작했고 결국 전면적인 환율 전쟁으로 비화됐다. 글로벌 공조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늘어났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해법은 찾지 못했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세계 경제가 겪고 있는 위기는 단순히 미국의 위기를 넘어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과 한계에서 비롯했다는 반성이 확산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단순히 잘못 설계된 파생 금융상품이 빚어낸 일시적 혼란이 아니라 규제완화와 시장경쟁의 원리에 내재된 필연적인 함정이었다. 단순히 환율 전쟁을 자제하자거나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부실 금융기관들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 세계경제의 구조적인 부실은 이미 적당히 고쳐서 다시 굴러가게 만들 수 있는 상태를 지났을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 이후의 자본주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신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자유시장과 자유무역, 규제완화, 국제적 분업 등을 강조하는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말한다. 1970년대 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확산되면서 케인즈 이론에 뿌리를 둔 수정 자본주의가 실패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케인즈 학파가 정부의 재정지출로 유효수요를 창출하고 완전고용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반면 신자유주의를 주창한 시카고 학파는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먼저 케인즈 학파의 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극복한 뉴딜 정책의 이론적 기반을 제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다시 말해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린다는 믿음이 확고했던 시절이라 산더미처럼 재고가 쌓이고 실업이 늘어나는 답답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는 경제학자가 없었다. 그때 케인즈는 정부가 나서서 돈을 풀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인즈의 유효수요의 원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들 임금을 깎으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임금이 낮아지면 물건을 만들어도 사줄 사람이 없게 된다.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기업이 망하고 실업이 늘어나고 공황에 빠져드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충분한 임금과 고용이 보장돼야 물건이 팔린다, 다시 말해 유효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창출된다는 논리다.
케인즈는 사회 전체의 유효수요 총량이 그 사회의 고용량을 결정짓는다고 주장했다. 임금을 올려야 실업이 줄어든다는 혁명적인 발상이 케인즈 이론의 기초가 됐다. 케인즈는 늘어난 소득이 모두 소비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충분한 유효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고 여기에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케인즈 이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학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다시 세계적인 불황이 닥치면서 하이에크와 그가 이끄는 시카고 학파가 뒤늦게 주목을 받게 됐다. 케인즈가 정부의 시장 개입을 해법으로 제시한 것과 달리 하이에크는 시장에 대한 통제를 죄악으로 평가하면서 완벽한 시장의 자유를 강조했다. 하이에크는 정부가 할 일은 사유재산과 시장경쟁의 원리를 보호하는데 있으며 거기에서 더 나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는 세계 경제에 또 다른 도전의 시기였다.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기업의 이익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정부의 재정 적자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났다. 두 차례나 오일 쇼크가 터지고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뛰어오르면서 케인즈의 유효수요 원리도 먹혀들지 않게 됐다. 케인즈의 이론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게 확실해지자 그 대안으로 하이에크와 신자유주의가 다시 주목 받게 됐다.
케인즈가 “이리 떼의 자유가 양 떼에게는 죽음을 뜻한다”면서 “경제적 자유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무제한적 경쟁은 승자의 탐욕과 패자의 굶주림으로 양극화될 뿐”이라고 지적한 반면 하이에크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시장에 대한 통제는 인간을 노예의 길로 몰고 갈 뿐”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하이에크의 주장은 케인즈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케인즈가 죽고난 뒤 30년 가까이 지난 1974년에서야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된다.
신자유주의의 기원은 193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월터 리프먼 콜로키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이에크는 이 자리에서 정부는 충분히 약해져야 하지만 시장의 질서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전적인 자유주의와 결별하는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라는 프레임을 만든 것도 하이에크의 성과였다. 그 뒤 1947년 밀턴 프리드먼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몽펠 르랭 학회에 합류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기틀이 확립됐다.
프리드먼은 정부의 시장개입을 배제하는 대신 통화공급을 조절해 물가를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케인즈가 대공황의 원인을 수요부진이라고 보고 유효수요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과 달리 프리드먼은 경기침체가 시작됐는데 중앙은행이 통화공급을 줄인 것이 대공황의 진짜 원인이었다고 반박했다. 프리드먼이 뒤늦게 주목을 받게 된 건 이처럼 케인즈가 풀지 못한 스태그플레이션의 해법을 명쾌하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심각한 경기 침체와 재정 악화로 1976년에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던 영국이 앞장서서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도입했고 미국이 그 뒤를 이었다.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정부의 규제와 과도한 복지, 무역장벽 등이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고 대대적인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단행한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장경쟁의 원리를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미국과 영국은 대규모 감세를 단행하는 한편 공공지출과 복지제도를 축소하고 경쟁원리를 강화하면서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기반을 다졌다. 국영기업을 매각하고 통신과 철도, 석유, 가스 등을 민영화했다. 교육과 주택, 의료 등 정부 보조금도 삭감했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정부의 개입을 전면 부정하는 반면 신자유주의는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보호할 수 있는 작지만 강한 정부를 추구한다는 게 중요한 차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을 정면으로 뒤집는 공급의 경제학을 내세워 공급이 수요를 견인한다고 주장했다.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경제성장과 고용촉진이 이른바 레이거노믹스의 핵심 철학이었다. 영국에서는 ‘대처리즘’을 표방한 대처 수상이 과도한 복지제도와 강력한 노동조합이 ‘영국병’의 원인이라며 대대적인 노조탄압에 나섰다. 이때부터 이른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국정운영의 철학으로 자리 잡게 됐다.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이 최대의 호황을 누렸던 건 일련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거둔 성과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공공부문의 축소와 심각한 소득 불균형 문제를 낳았고 무분별한 규제완화로 시장의 변동성을 키워 경제위기를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국경을 넘어 양극화를 세계 전역으로 확산시켰고 특히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 세계경제를 종속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의 제도적 골격은 1989년 미국 국제경제연구소의 존 윌리엄슨이 중남미 나라들의 개혁 해법으로 제시한 워싱턴 컨센서스에 잘 드러나 있다. 미국은 이들 나라들에 금융지원을 대가로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무역장벽 철폐, 금융시장 개방, 환율 자유화 등을 요구했다. 미국 재무부와 IMF, 세계은행 등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설립되면서 가속도가 붙게 된다.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겪었던 일련의 변화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IMF는 외환 유동성 고갈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우리나라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재벌 기업집단의 해체와 노동시장 유연화, 금융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을 강요했다. 다행히 짧은 기간 안에 외환위기를 극복했지만 우리나라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사회 전반에 시장경쟁의 원리를 확대 적용한다. 노동시장 규제가 사라지면서 경쟁력 없는 단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쫓겨난다. 공공부문이 무너지면서 경제적·사회적 약자들은 시스템에서 도태되고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까지 위협을 받게 된다. 경제적 자유라는 미명 아래 정부의 역할을 방기하고 시장에 내준 셈이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에서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세대를 넘어 확대 재생산된다.
반면 자본시장은 비대하게 팽창했다. 초국화된 금융자본은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생산부문 전반을 지배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챙기지만 어느 나라에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자본시장은 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배 규모로 성장했다. 세계적으로 금융거래의 95%가 단기적 투기거래로 추산된다. 금융규제도 대부분 사라져서 금융 파생상품 시장이 세계 GDP의 10배 규모로 불어났다.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관행화됐고 단기 이익에 저해되는 설비투자는 눈에 띄게 둔화됐다. 인수·합병이 늘어나면서 심지어 고액배당과 유상감자로 알짜배기 기업을 털어먹고 나가는 투기자본의 ‘먹튀’도 성행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금융상품 판매나 손쉬운 부동산 담보 대출에 매달리면서 경제 전반에 거품을 키우고 있다. 금융 공공성 역시 무의미한 구호가 됐다.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에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 누구에게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신자유주의는 1인1표가 아니라 1원1표의 권력구조, 철저하게 더 많이 가진 자들을 위한 시스템을 만든다. 감세와 규제완화, 시장자율 등은 기득권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흔히 ‘트리클링 다운’이라고 말하는, 넘치는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낙수효과’는 아직까지 검증된 바 없다.
그러나 ‘세계는 평평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자유무역이 빈곤을 퇴치하고 경제성장을 불러오는 최선의 수단이라는 이데올로기가 1990년 이후 세계 전역으로 확산됐다.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은 자유무역이 오히려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기술력 없는 후진국의 경제를 선진국에 종속시킨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확산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과 미국에 뿌리를 둔 초국적 금융자본이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역사적으로 선진국의 경제발전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아니라 보호무역과 보조금, 각종 특허와 지식재산권 보호에 기초했다”면서 “최근 세계화의 논의는 결국 선진국 기업들에게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 주기 위한 전략”이라고 비판한다. 장 교수는 후진국들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건 ‘사다리 걷어차기’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한 바 있다. 선의가 의심스러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비유도 마찬가지 맥락에서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신자유주의 성장전략의 한계를 드러낸 의미심장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미국 2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업체 뉴센추리파이낸셜이 파산신청을 한데 이어 금융회사들의 부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리만브러더스와 AIG 등이 잇따라 무너졌고 미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이를 두고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세계화하는 시스템이 지속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통제되지 않은 자본의 탐욕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의미심장한 교훈을 남겼다. 2000년 이후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계속 뛰어올랐고 부동산 담보대출도 크게 늘어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신용이 부족해 일반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까지 이 투기열풍에 끌어들였다. 금융회사들은 대출채권을 유동화하고 이를 온갖 파생상품으로 만들어 사고팔면서 재미를 봤다.
문제는 거품이 언젠가는 터진다는데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빚을 내서 집을 사고 집값이 오르면 그 빚을 갚는 그런 시스템이 영원히 지속가능할 수는 없다. 가뜩이나 미국은 담보비율이 터무니없이 낮아서 한번 집값이 빠지기 시작하자 집을 팔아서도 빚을 갚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금융회사들은 무더기로 대출을 남발하고 여기에서 가공의 이익을 창출해 왔다. 집값이 영원히 계속 오른다는 가정에서만 가능한, 애초에 불가능한 도박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서브프라임 사태 직후 양적완화 조치를 단행해 장기 유동화 증권이나 장기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마구 찍어내면서 결과적으로 미국의 부실을 다른 나라들에 떠넘기는 효과를 불러왔고 세계적으로 환율전쟁을 촉발시켰다. 미국 입장에서는 1986년 플라자 합의 때처럼 희생양을 찾고 싶겠지만 이미 미국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다.
분명한 것은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극단적인 시장자유가 만들어낸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이 드러났으며 아직까지 명확한 해법을 찾지 못한 상태라는 사실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부실을 도려내기 보다는 적당히 덮어둔 상태인데다 시스템 개혁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천문학적인 규모로 불어난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 달러화 시스템의 붕괴를 대비해야 할 때다.
지난 30년 동안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불러온 변화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국제무역과 금융거래가 크게 늘어났고 둘째,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와 무역장벽이 무너졌으며 셋째, 공공부문이 대부분 민간부분으로 넘어갔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 비준을 앞두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쯤해서 우리는 확고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프리드먼은 1930년 대공황 때 중앙은행이 통화공급을 줄인 것이 위기를 불렀다고 주장했지만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그때도 통화공급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던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통화공급을 늘렸는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져있었던 셈인데 이는 오히려 케인즈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유동성 함정’은 최근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아서 최근 케인즈가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전 세계은행 부총재는 지난해 출간된 ‘스티글리츠 보고서’에서 “세계화한 외부성(global externality)을 교정하고 글로벌 공공재(global public goods)를 공급하는 것이 이번 위기에 대한 해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스티글리츠는 “위기 해법은 케인즈의 주장대로 총수요 관점에서 봐야 한다”면서 “글로벌 총수요가 증가할 수 있도록 정책을 짜야 한다”고 케인즈의 손을 들어줬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강도 높게 비판해 왔던 이마뉴엘 월러스틴 예일대 교수도 서브프라임 사태 직후 “달러화가 기축통화로서 역할을 상실하면서 미국의 엄청난 채무에 의존한 성장정책은 지속 불가능하다”고 예견한 바 있다. 월러스틴은 “세계적으로 강도 높은 보호주의가 부상할 것이며 실패한 기업을 정부가 인수해서 케인즈주의적 처방을 내리는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자유주의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데올로기로 퇴조할 것인지 아니면 한동안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계속 군림할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50년을 이어온 논쟁 역시 마찬가지고 미국의 달러화 헤게모니를 둘러싼 논쟁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치명적인 결함이 드러났으며 고삐 풀린 시장의 탐욕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제기되는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명확한 대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권력과 부의 평등한 분배가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주의의 큰 방향이 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감세와 규제완화 기조 역시 수정될 것이고 정부의 시장 개입과 통제도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무너진 사회안전망을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만만치 않겠지만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상 변화는 불가피하다.
(이슈엔 주제특강.)
좋은 글 잘봤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라는 허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걸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