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왕국의 게릴라들’에 실린 글은 대부분 지난해 10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이후 프레시안에 실린 일련의 기사들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관심 갖고 지켜봤던 사람들에게 딱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이른바 삼성 공화국의 실체와 삼성 특검의 향방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한다.
주목할 부분은 지금부터 20년 전인 1987년과 2007년의 교묘한 대비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은 20년 전에는 군부독재와 맞서 싸웠는데 지금은 삼성과 맞서 싸우고 있다. 그때는 군부독재와 싸우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지만 지금은 목숨까지 걸지 않아도 된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특정 기업의 불법 행위를 바로잡는 것이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이루는 것만큼 심각하고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군부독재와 싸울 때는 목숨을 걸어야 했지만 삼성과 싸울 때는 삼성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직간접적인 이익 또는 그런 기대를 포기해야 한다. 민주화를 외치면서 광장에 모이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민주화는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고 명확하게 옳으니까. 그러나 삼성을 바로 잡는 일은 우리 사회 분배 구조에 대한 정면 도전이 된다.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 계층에 편입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삼성에 대한 비판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옳은 것과 이로운 것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로운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옳은 세상을 만들기는 요원하지만 당장 내게 이로운 것인가를 따지는 것은 쉽다. 삼성을 흔들면 경제가 흔들린다는 억지 주장이 먹혀드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삼성과 싸우는 일은 결국 대중의 이기적인 욕망과 맞서는 일이다.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모두에게 옳고 이로운 해법을 찾는 일이다.
삼성 왕국의 게릴라들 / 프레시안 특별취재팀 지음 / 프레시안북 펴냄 / 1만2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