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곽노현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다만 형법 126조에 따르면 검찰이나 경찰 등 범죄 수사를 하는 사람이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피의사실 공표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해당하는 범죄다. 설령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언론사 기자에게 슬쩍 흘리거나 자료를 넘겨주는 것도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된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교육감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상대 후보에게 금품을 주는 대가로 사퇴를 종용했다는 언론 보도는 대부분 검찰이 흘린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명백한 피의사실 공표다. 검찰이 흘린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배껴쓰기에 바쁜 언론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녹취록이 있는지 여부, 있다면 실제 대화를 녹취한 것인지, 기억을 되살려 정리한 것인지의 여부, 그리고 그 진실 여부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진보 진영에서 곽 교육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것도 아직은 이르다. 굳이 무죄 추정의 원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좀 더 명확하게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는 판단을 유보하는 게 바람직하다. 진보 진영 전체에 흙탕물이 튈까 조바심을 내는 꼴은 정말 한심하다. 부정이 드러나면 당연히 사퇴를 할 것이고 그에 따른 책임과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 플레이, 그리고 과도한 추측 보도를 경계하고 비판하는 것이 우선이다.
곽 교육감의 피의사실보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가 더 위험한 것은 검찰의 언론 플레이와 여론 재판이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곽 교육감의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리면서 곽 교육감은 소명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범죄자로 낙인 찍혔다. 재판 결과 곽 교육감의 무죄가 입증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훼손된 명예가 복구되지는 않는다. 왜 하필 지금 이 사건을 터뜨렸을까. 검찰의 의도에 의혹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나는 곽 교육감이 무죄라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곽 교육감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좌우를 막론하고 피의 사실은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입증돼야 하며 그 전에 이처럼 검찰의 언론 플레이와 여론 재판으로 섣불리 단죄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좀 더 막중한 도덕적 책무를 지닌 공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 시점에서는 공정한 수사와 결론을 기다리고 요구해야 할 때다. (그의 범죄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섣불리 보수 언론의 프레임에 놀아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