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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매각, 금감원의 거짓말 드러나다.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28, 2005

론스타의 외환은행 편법 인수 의혹과 관련, 10월 24일부터 국회 재정경제위원회가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대상으로 문서검증에 들어갔다. 금감위와 금감원은 무엇인가 결정적인 단서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줬고 론스타는 파고들면 들수록 더 짙은 의혹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문서검증의 핵심은 금감원이 내놓은 이른바 비관적 시나리오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다. 금감원은 외자유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외환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이 6.2%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고 이를 근거로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는 론스타에게 매각을 승인했다. 문제는 그 비관적 시나리오가 터무니없이 과장된 데다 정작 그 구체적인 근거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금감원이 국정감사 때 내놓은 자료를 보자. ‘2003년 하반기 추가 부실요인’이라는 제목의 표에는 중립적 시나리오와 비관적 시나리오가 나란히 적혀 있다. 주목할 부분은 SK글로벌의 대손충당금이다. 중립적 시나리오에는 905억원으로 잡혀있는데 비관적 시나리오에는 188억원으로 잡혀있다. 비관적 시나리오가 대손충당금을 더 적게 잡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밖에도 두산중공업의 유가증권감액손실도 비관적 시나리오에서 더 적게 잡혀있다.

결론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두 개의 시나리오는 동일한 기관에 의해 일관된 기준을 갖고 작성된 것이 아니다. 다른 기관에서 만든 자료를 그냥 나열해 놓은 것뿐이라는 이야기다. 금감원은 주석에서 “중립적 시나리오의 추정근거는 회계법인의 2002년 12월말 기준 자산부채실사 결과에서 2003년 상반기중 충당금 적립액을 차감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비관적 시나리오의 추정근거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도 없다.

이번 문서검증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가 쏟아졌다. 이번에 금감원이 추가로 내놓은 자료를 보면 중립적 시나리오의 근거 자료가 외환은행의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에서 나온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비관적 시나리오의 출처는 나와있지 않다. 금감원은 이 자료를 외환은행에서 받았다고 거듭 밝혔다. 이 문서에는 ‘02729’라는 숫자가 찍혀있는데 이 번호가 외환은행의 전화번호 앞자리 숫자라는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국감에서 이 두 시나리오를 “외환은행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은행감독1국에서 추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자료를 보면 금감원이 시나리오를 추정한 것이 아니라 이 자료를 그대로 받아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금감원의 거짓말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문제는 이 자료를 누가 금감원에 보냈느냐는 것이다. 금감원은 외환은행에서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역시 의혹이 남는 부분이다.

먼저 이 자료의 작성 시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자료 상단에는 2003년 7월 21일이라고 날짜가 찍혀있고 금감원도 그 날짜가 맞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외환은행이 같은 날 열렸던 이사회에 제출한 경영계획수정안은 이 자료와 전혀 다른 내용이다. 일치하는 숫자가 거의 없을 정도다. 여기서도 역시 결론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금감원이 외환은행에서 받았다고 제시한 자료는 외환은행이 만든 자료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이 거짓말을 했다면 이 자료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중립적 시나리오는 삼일회계법인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됐고 비관적 시나리오는 외환은행에서 만든 게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외환은행에서 만든 별도의 경영전망 자료는 이사회에 제출됐을 뿐 금감원 자료에는 참고되지 않았다. 비관적 시나리오는 과연 어디서 만든 것일까. 이번 문서검증에서 금감원 관계자들은 “외환은행에 확인해보라”는 말만 반복했을 뿐 그 출처를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금감원은 비관적 시나리오가 론스타의 회계법인인 삼정회계법인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의혹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금감원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결국 외환은행에서 받은 팩스 자료 5장 이외에 비관적 시나리오를 뒷받침할만한 더 구체적인 자료는 없는 셈이다. 금감원은 외환은행에서 받았다는 것만 알뿐 구체적으로 어디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는 자료를 놓고 외환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전망했다.

금감원 관계자들이 “경영지표 개선과 관련해 약정서를 맺으려고 했을 뿐 매각할 계획은 없었다”고 밝힌 부분도 주목된다. 금감원이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부분이다. 물론 금감원에서 생각없이 만든 엉터리 자료를 놓고 금감위가 별다른 검토없이 매각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로 활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금감위는 졸속 매각의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금감원의 약정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혹투성이다. 외환은행은 2분기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9.6%에 이른다. 그런데 이 약정서에는 2분기 실적이 빠져있고 3분기 실적 목표는 9.3%로 잡혀있다. 이 약정서가 체결된 때는 8월 12일. 이미 2분기 실적이 발표된 뒤다. 금감원은 이 약정서에 왜 2분기 실적을 빼놓았을까. 게다가 3분기에는 왜 2분기보다 더 낮은 실적목표를 내놓았을까. 이 이해할 수 없는 약정서를 체결한 이유는 무엇일까.

10월 28일로 예정됐던 외환은행 문서검증이 돌연 31일로 연기된 것도 의혹을 낳는 부분이다. 문서검증반장을 맡고 있는 최경환 의원실 관계자는 “금감원 등이 이미 모든 문서를 파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필요한 자료를 내놓지 않는 상황이라면 진실에 접근하기가 아주 어려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경환 의원은 문서검증 결과 의혹이 충분치 밝혀지지 않을 경우 국정감사 뿐만 아니라 특별검사를 요구할 계획이다.

국감에 들어가면 증인 심문 등은 할 수 있겠지만 문서검증 이상의 진실에 접근하기는 어렵다. 특검이 가장 확실하겠지만 특검을 요구하려면 좀 더 치명적인 의혹이 제기돼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자칫 미궁에 빠지게 될 가능성도 있다. 편법과 졸속매각의 정황은 이미 충분히 드러나 있다. 앞으로 밝혀져야 할 것은 그 구체적인 과정과 그 과정을 지시한 배후의 세력이 누구냐다.

지금까지 나온 결론을 다시 정리해보면 이렇다. 중립적 시나리오는 삼일회계법인에서 만들었고 비관적 시나리오는 중립적 시나리오와 다른 기관에서 다른 기준으로 만들었다. 금감원은 비관적 시나리오가 론스타의 회계법인인 삼정회계법인에서 나온 건 아니라고 밝혔다. 아직까지 비관적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자료라고 나온 건 외환은행에서 받은 팩스 자료 5장 밖에 없다. 그 자료에는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숫자만 적혀있을 뿐이다.

그 모호한 숫자를 토대로 금감원은 자기자본비율 6.2%라는 전망을 만들어냈다. 현재로서는 그 계산도 정확하다고 보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외환은행은 그렇게 졸속으로 팔려나갔다. 그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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