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안츠생명보험은 전국에 걸쳐 5개의 지역본부와 55개의 지점과 292개의 영업소, 37개의 대리점을 두고 있다. 이 지역본부와 지점과 영업소와 대리점들은 모두 프린터와 복사기와 팩시밀리, 스캐너를 여러 대씩 두고 있었는데 모두 2800여대, 1년에 A4 용지 소모량만 6800만장에 이를 정도였다.

알리안츠는 정확한 비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시장 조사업체 가트너는 이런 이미징과 프린팅 비용이 많게는 기업 이익의 3%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알리안츠의 김성돈 이사가 프린팅 시스템을 손봐야겠다고 생각한 때가 2004년 7월의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점이나 영업소의 전산 소모품 관리는 지점장이나 영업소장의 관할이었다. 본사에서 예산이 내려오면 그 예산으로 토너나 A4 용지를 사거나 프린터나 복사기를 수리하거나 교체하기도 했다. 물론 예산이 남는 경우도 있었고 부족한 경우도 있었다. 비용 통제와 관리가 전혀 안 됐다는 이야기다.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던 HP 홍순모 과장은 “숨어있는 복사기, 잠자는 복사기가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이른바 디지털 복사기라는 것들도 네트워크에 제대로 연결된 기기가 드물 정도였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파지가 넘쳐났고 툭하면 프린터나 복사기, 팩시밀리가 고장 나서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토너 아까운 줄 모르고 영업사원들은 공적이거나 사적인 프린트를 잔뜩 걸어놓고 대책 없이 퇴근하기도 했다. 가뜩이나 프린터나 복사기가 오래되고 고장도 잦아 교체시점이 다가오기도 했다. 김 이사가 TPM 서비스에 주목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TPM(total print management)은 통합 프린트 관리의 줄임말이다.

알리안츠는 8개월의 사업성 검토를 거쳐 HP와 제록스, 신도리코, 렉스마크, 청호 등 5개 업체에 입찰을 받아 벤치마크 테스트를 거쳤다. 6개월의 심사를 거쳐 지난해 10월 HP가 최종 선정됐고 4개월의 시범 운영과 2개월의 구축 기간을 거쳐 올해 5월부터 TPM 시스템이 구축됐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규모다.

도입 이후 3개월, 알리안츠와 HP는 TPM 시스템 도입 이후 30% 이상의 경비 절감 효과를 거둔 것으로 자체 평가하고 있다. 사업 초기에 예상했던 22%를 훨씬 뛰어넘는 결과다. 프린터와 복사기, 팩시밀리 기능을 결합한 복합기로 교체하면서 기기 수도 1499대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당연히 사무실 공간도 넓어졌고 관리도 수월해졌다.

TPM 서비스는 기존의 기기를 들어내고 새로운 기기를 들여놓는 데 그치지 않는다. TPM의 핵심은 PPU(pay per use), 사용량별 요금 지불 서비스에 있다. 이미징과 프린팅을 모두 아웃소싱하고 출력 또는 전송하는 만큼만 비용을 내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 장에 얼마씩 지불하기로 하고 달마다 그 비용을 결제하는 방식이다.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에 이르는 복합기를 직접 사지 않고 그 비용을 프린트나 복사 또는 팩스 전송 요금에 포함시켜 오랜 기간에 걸쳐 나눠서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토너 비용도 포함된다. 장당 요금이 그만큼 비싸지겠지만 당장 기기나 소모품 구입비용의 부담을 덜 수 있고 무엇보다도 체계적인 비용 관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까지는 지점이나 영업소 차원에서 토너 구입비용이나 복사기 수리 또는 교체비용 등을 관리했는데 이제는 본사 차원에서 일목요연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됐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어느 지점에서 얼마나 복사를 했고 어느 영업소의 어느 복합기에 토너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등도 본사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비용이 30%나 줄어든 것은 복합기로 교체하면서 기기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 덕분이기도 하지만 대량 구매에 따른 가격 인하 효과도 있다. HP 입장에서도 한번 팔고 끝날 게 아니라 계약기간 만큼 지속적인 수요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여력이 있다. 알리안츠와 HP의 TPM 서비스 계약기간은 4년이다.

우편이나 팩스 비용도 크게 줄어들었다. 보험회사의 업무 특성상 지급 관련 서류들을 우편이나 심지어 행낭에 담아 인편으로 본사에 배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TPM 서비스 도입 이후에는 간단히 서류를 스캔한 뒤 인터넷을 이용해 본사 서버에 이미지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권한이 있는 누구나 그 이미지를 내려 받아 열람하거나 출력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서류 전달에만 이틀씩 걸리던 지급 관련 업무가 단순히 몇 초 정도로 줄어들게 된 것도 TPM 서비스 덕분이다. 모든 프린터와 복사기와 팩시밀리와 스캐너가 하나의 네트워크에 연결되고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김 이사는 “아직은 지급 관련 서류에 한정돼 있지만 앞으로 신계약 업무까지 모두 이미징 프로세스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2층에서 7층으로 서류를 전달하려면 직접 서류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면 이제는 문서를 스캔하고 저장 위치만 지정해주면 된다. 지방과 본사의 의사소통 구조도 더욱 편리해졌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업무 효율성이 크게 개선됐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비용 절감 차원이 아니라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도 TPM을 고려할 이유가 충분하다.

무분별한 프린터 사용이 크게 줄어든 것도 기대치 않았던 성과다. 장당 과금 형태로 바뀌면서 사적인 용도로 프린터를 쓰기에는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게 됐기 때문이다. 어느 영업소의 어느 컴퓨터에서 프린트를 많이 쓰는지, 무슨 파일을 출력하는지 본사에서 확인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프린터를 마음 놓고 쓸 수 있을까.

특별히 컬러 인쇄를 부분적으로 제한하거나 허용하는 기능도 있다. 이를테면 본사 차원에서 지방 영업소의 컬러 잉크 용도와 사용량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꼭 필요한 곳에만 컬러 잉크를 쓴다면 중요한 인쇄물의 경우 오히려 비용을 아끼지 않고 선명한 출력을 보장할 수도 있다.

HP는 알리안츠의 모든 지점과 영업소의 복합기들을 통합 관리하면서 유지 보수를 맡고 토너가 떨어지기 전에 교체용 토너를 공급하는 일도 맡는다. 보통은 토너 잔량이 30% 미만으로 줄어들 때, 사용량이 많은 기기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 때 새로운 토너가 배달된다. 고장 신고를 접수받으면 4시간 이내에 출동해 해결하도록 하는 계약도 맺었다.

과거에는 프린터나 팩스가 고장 나면 AS를 불러도 최소 하루 이상 걸렸는데 이제는 4시간이면 충분하게 됐다. 만약 신고 이후 4시간이 지날 경우 계약이 전면 파기되고 유지보수 비용을 처음부터 다시 산정하도록 계약이 돼 있다. 프린터 등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일손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기기 고장에 따른 업무 차질을 거의 최소로 줄일 수 있다.

HP 이미징 프린팅 그룹의 조태원 부사장은 “알리안츠의 TPM 도입 사례는 알리안츠 본사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우수 성공 사례로 꼽힌다”고 말했다. TPM 도입이 비용 절감 뿐만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 전반에 효율성을 가져온 모범 사례다. “덕분에 1~2년은 잘리지 않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할 정도다.

HP는 HP 비즈니스 잉크젯 시장규모가 지난해 기준으로 2005년 2만여대에서 올해 8만대 선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2007년에도 두 자리 수성장을 보일 전망이다. 컬러 레이저 프린터 시장 역시 지난해 5만 3000대 선에서 올해 6만 5000대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고 2007년에도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정환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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