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윈도우 비스타를 노트북에 설치하고 한 달이 다 돼 간다. 공식 출시 이전에 윈도우 비스타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신나는 경험이었다. 아직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이제 와서 다시 윈도우 XP로 돌아가라고 하면 정말 괴로울 것 같다. 과거 윈도우 XP의 인터페이스가 어딘가 거추장스러운 느낌이었다면 윈도우 비스타의 인터페이스는 훨씬 더 담백하면서도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윈도우 키와 탭 키를 누를 때 뜨는 에어로 글래스다. 에어로 글래스란 비활성창을 투명하게 비치도록 만든다거나 여러 창들을 3차원으로 배치하고 전환할 때마다 창의 크기가 달라지기도 하는 애니메이션 효과를 말하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두 탄성을 내지른다. 윈도우 비스타는 3차원을 구현하는 벡터 그래픽 방식으로 설계됐기 때문에 이런 역동적인 화면 구성이 가능하다.

바탕화면에 띄우는 사이드바도 매력적이다. 윈도우 비스타에서는 웹이 운영체제와 완벽하게 통합됐다. 웹 브라우저를 따로 띄우지 않고도 위젯이라는 응용 프로그램을 바탕화면에 띄워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바탕화면에서 실시간 뉴스를 보거나 환율이나 날씨를 확인할 수도 있다. 스티커 메모를 붙여놓을 수도 있고 앞으로 훨씬 더 멋진 위젯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기뻤던 건 크게 개선된 파일 검색과 관리 기능이다. 시작 버튼을 누르면 맨 아래 검색 창이 뜨는데 여기에 검색할 단어를 집어넣으면 곧바로 이 단어가 들어간 파일의 목록이 주르륵 뜬다. 미리 폴더를 지정해두면 파일 이름뿐만 아니라 오피스 문서나 전자우편의 본문 내용까지 검색해 관련 파일을 찾아낸다. 과거 윈도우 XP의 파일 검색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다.

엔터테인먼트 기능도 크게 강화됐다. 과거 윈도우 XP 미디어센터 에디션의 기능이 그대로 흡수돼 PC를 TV나 오디오 등 다른 멀티미디어 기기를 연결해 제어하는 것도 가능하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많이 찍는 사람이라면 수많은 폴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파일 관리 기능에 푹 빠져들 것이다. 계정에 따라 접근 권한을 달리 설정하는 등 보안 기능도 돋보인다. 윈도우 XP에도 있던 기능이지만 훨씬 안정된 느낌이다.

그러나 윈도우 비스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첫 번째 충고는 무엇보다도 하드웨어 사양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테스트에 쓴 노트북 PC는 HP의 컴팩NX6320, 1.66GHz의 코어2듀어 프로세서에 512MB의 메인 메모리, 게다가 키보드 아래쪽에는 ‘윈도우 비스타 케이퍼블’이라는 스티커까지 붙어있었다. 포장을 막 뜯은 새 노트북이었는데도 윈도우 비스타를 설치하고 난 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속도가 느려졌다.

윈도우 비스타는 USB 메모리 드라이브를 가상 메모리로 쓸 수 있는 레디부스트라는 기능이 있다. 이번 테스트 과정에서는 2GB의 USB 메모리를 꽂아 레디부스트로 활용했는데 만족할 만큼 빨라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부팅할 때마다 USB 메모리를 꽂는다는 것도 성가신 일이었다. 결국 512MB의 메모리를 추가로 구입해 1GB의 메모리를 확보한 뒤에야 윈도우 비스타를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다.

윈도우 비스타를 한 달 정도 쓰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인터넷 뱅킹과 신용카드 결제가 거의 안 된다는 것이었다. 윈도우 비스타가 액티브X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기 때문인데 대부분의 은행들이 늦어도 이달 말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물론 해결한 뒤에도 관리자 권한으로 웹 브라우저를 다시 실행시키거나 보안 승인을 여러 차례 거쳐야 하는 등 불편함은 여전히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액티브X 문제를 마이크로소프트나 윈도우 비스타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액티브X는 웹에서 응용프로그램을 구현하는 플러그인인데 문제는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액티브X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데 있다. 더 큰 문제는 액티브X가 악성 바이러스나 스파이웨어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데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비스타에서 액티브X를 지원하지 않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드웨어나 응용 프로그램의 호환 문제도 심각하다. 대부분의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이 윈도우 비스타 전용의 하드웨어 드라이버 파일을 아직 내놓지 못한 상태다. 윈도우 XP에 맞춰 나온 드라이버 파일은 호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윈도우 비스타 전용으로 나온 최신 제품이 아니라면 필요한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제조업체에서 드라이버 파일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드웨어 사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테스트에 사용한 노트북에서는 한글 2005가 설치되지 않았다. 다행히 한글 2007은 설치됐지만 문서 작성 도중 갑자기 멈추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나마 한글 2005 이전 사용자라면 패치 파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2007에서 작성한 문서 파일은 이전 버전의 오피스에서 열리지 않았다. 옛날 버전으로 따로 지정해줘야 한다.

이밖에도 가상 드라이브를 만들어주는 데몬이나 CD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네로도 역시 설치되지 않았다. PDF 파일을 작성하는 어도비 아크로뱃 6.0 역시 설치되지 않았고 한국인식기술의 명함 스캐너는 하드웨어 드라이버를 설치하는데 실패했다. 또한 미디어 플레이어가 훨씬 더 강력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Divx 파일을 제대로 재생하지 못했다. 다행히 곰 플레이어는 무난히 작동했다.

인터넷 사이트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네이트온 메신저는 실행할 때마다 호환성에 문제가 있다는 메시지가 떴고 시작할 때 뜨는 팝업 메시지는 볼썽사납게 익스플로러의 새 창 한 구석에 떴다. 한 달에 100건씩 제공되는 무료 문자 메시지 보내기 기능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실행시킬 때마다 익스플로러에 텅 빈 창을 하나 더 띄우기도 했다. 리니지나 바람의 나라 등 온라인 게임도 보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윈도우 비스타를 섣불리 평가 절하할 이유는 없다. 하드웨어 사양이 충분하다는 전제 아래 윈도우 비스타가 윈도우 XP보다 훨씬 편하고 멋지다는 것은 분명하다. 윈도우 비스타 사용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이고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도 장기적으로 이에 적응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도기에 겪는 불편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당장 윈도우 비스타 구입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가격 역시 부담스럽다. 윈도우 비스타 홈 베이직 버전의 경우 27만4천원, 얼티미트 버전의 경우 59만7천원이나 한다. 각각 영문판은 199달러와 349달러씩이다. 영문판 거의 두 배 가까이 비싼 셈인데 마이크로소프트는 우리나라의 경우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파는 물량이 99.9%에 이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덕분에 비스타가 설치된 새 컴퓨터를 구입하는 게 아니라면 개별 업그레이드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블로터닷넷에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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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1. 설치가 안되는 ActiveX는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하는것으로 해결할수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 뱅킹 실행 방법
    인터넷 익스플로러 아이콘에서 마우스 오른쪽 클릭,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을 선택
    인터넷 브라우저를 통해 은행 웹사이트 접속, 종전과 동일하게 인터넷 뱅킹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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