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돈줄이 말랐다고 난리법석이다. 주가 폭등과 맞물려 주식투자로 돈이 몰리면서 은행에서는 유례없는 돈 가뭄이 시작됐다. 다급한 은행들은 은행채와 양도성 예금증서를 마구 남발하고 있고 금리가 치솟으면서 채권 가격이 가파르게 추락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8%대로 치솟았다. 너도 나도 채권을 내다팔기 시작하자 급기야 한국은행이 나섰다. 한은은 국고채를 사들여 채권 가격을 잡겠다고 나섰지만 금리는 오히려 더 뛰어올랐다.
더 파고들면 달러화 품귀현상도 최근 금융시장 불안의 원인이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내다팔기 시작하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환율이 상승했다. 특히 외국계 은행들이 국채를 내다팔기 시작하면서 시장의 충격은 거침없이 확산되는 추세다. 그동안 달러화를 들여와 원화로 바꾸고 국채를 사들여 짭짤한 재미를 봤는데 환율이 뛰어오르고 금리가 오르면서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난 때문이다.
이 정도면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의 파장이 바다 건너 우리나라 안방까지 치고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당장 대출 이자 부담이 늘어났고 새로 대출을 받기도 어려워졌다. 은행이 대출을 줄이면 중소기업들 연쇄 도산이나 부동산 경기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제지들은 오히려 한 목소리로 한은의 추가 개입을 주문하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30일 3면 <'금리 패닉' 금융시장 전체 흔드나>에서 “한은이 스와프 시장에 달러를 공급하거나 원화 유동성을 충분히 지원해야 채권 시장의 불안이 진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1조5천억 원의 국고채 단순 매입은 언발에 오줌누기”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외환시장의 유동성 경색에서 비롯한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머니투데이는 채권시장 관계자의 말을 인용, “신용경색으로 국제 금융시장의 달러 유동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한은은 오히려 외화차입을 규제하고 달러화를 공급할 의지가 없다는 뜻을 밝혀 외환 파생상품시장과 채권 시장을 패닉상태로 만들었다”고 호된 비판을 쏟아냈다.
파이낸셜뉴스도 당국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파이낸셜뉴스는 “한은과 금융당국이 시장불안을 방기했다”면서 “대표적인 게 대손충당금 추가적립과 은행채 발행에 대한 준비금 부과 검토방안”이라고 지적했다.
서울경제는 3면 <네탓 공방하며 단기처방… 시장은 피멍>에서 “문제의 본질은 은행의 유동성 부족인데 단발성 액션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당국에서 단기 외채 급증에 대한 규제책을 들고 나오면서 스와프 시장의 왜곡이 발생해 오늘과 같은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도 5면 <자금 증시 쏠림으로 변동성 증폭>에서 “환율 하락 및 단기 외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정부와 한은의 규제가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환율 하락을 방어하라고 주문해왔던 태도와 모순된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이런 상황이 더 이어지면 서민들의 생활고가 가중되는 것은 물론이고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도 뒷걸음질 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국고채 및 환매채 추가 매입, 대손충당금 적립 완화 같은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금융시장 동향은 “전염성 탐욕(infectious greed)”이 확산되는 과정이다. 금융시장은 과열의 신호를 내보냈지만 유동성은 끊임없이 공급됐고 거품은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시스템의 붕괴 위험은 그 어느때 보다도 심각하다. 그런데도 경제지들은 모럴헤저드에 대한 경고 없이 일단 막고 보자는 주문만 계속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그나마 조금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철저하게 경제학원론을 따르라는 주문이다. 중앙일보는 E2면 <다급한 한은 경제학 원론도 무시>에서 “(한은의 개입이) 급한 불을 끌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충격의 원인이 외부에 있기 때문”이고 “쏠림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작은 외부충격에도 시장이 다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것은 정부와 한은의 역할이고 책임이지만 자칫 모럴 헤저드를 방조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최근의 금융 불안은 다분히 과잉 유동성과 거품이 낳은 결과다. 누군가는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언제까지나 폭탄 돌리기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