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인터넷 주인찾기 시즌 2 – 저작권 컨퍼런스.

지난해 6월, 한 누리꾼이 다섯 살짜리 딸이 손담비의 ‘미쳤어’를 따라 부르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가 저작권 침해 신고를 받고 삭제된 사건이 있었다. 분량이라고 해봐야 15초 정도, 귀엽긴 하지만 손담비의 원곡을 대체할 정도의 작품도 아니었고 이 누리꾼이 이 동영상으로 상업적 이득을 챙긴 것도 아니었다.


이 누리꾼은 자신의 게시물이 부당하게 삭제됐다며 저작권 침해 신고를 한 음반저작권협회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부분 승소해서 20만원을 받아냈다. 법원은 이 동영상이 매우 짧은데다 비상업적이고 단순 인용이 아니라 비평이 첨부돼 있기 때문에 저작권법 28조가 보장하는 공정한 인용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른바 손담비 UCC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해프닝은 여러 가지 논란을 남겼다. 내 아들이나 딸이 노래 부르는 동영상을 올리면서 저작권법 침해 여부를 걱정해야 하나. 만약 이 동영상과 함께 비평이나 감상을 적지 않았다면 불법이 되는 건가. 만약 그 블로그에 광고가 달려있다면 상업적인 건가. 어디까지가 정당한 범위이고 어디부터는 아닌가.

2007년에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당한 한 중학생이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저작권을 위임 받은 로펌이 아르바이트생들을 대거 고용해 전자우편을 대량 발송해 어려운 법률 용어를 늘어놓으며 협박한 뒤 합의금을 받아내는 경우도 부쩍 늘어났다. 최근에는 심지어 로펌을 빙자한 보이스 피싱까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한 청소년은 2만2200명, 이 가운데 정식 기소돼 재판을 받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고, 약식기소돼 벌금형을 받은 경우도 17건밖에 안 됐다. 나머지 99.9%는 혐의가 없거나 미미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들 로펌들은 합의금으로 5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를 요구하고 있다. 연간 16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쯤 되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저작권법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작권법이 로펌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 17일 누리꾼들이 모여서 ‘저작권법은 창작의 무덤’이라는 주제로 컨퍼런스를 열었다. 누리꾼들의 자발적인 기획과 참여, 후원으로 진행된 이날 컨퍼런스는 ‘인터넷 주인 찾기’ 연쇄 프로젝트의 두 번째 기획이었다.

블로거 펄은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해 창작 의욕을 독려한다는 애초의 저작권법의 취지와 달리 로펌이 초중고교생들 코 묻은 돈이나 삥 뜯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펄은 “누리꾼들을 잠재적 저작권 위반자가 아니라 잠재적 소비자, 콘텐츠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또 다른 창작자들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블로거 어슬렁은 “저작권법은 저작권자들의 권리 보다는 저작권 유통 사업자들의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고 지적했다. 어슬렁은 “초기 저작권법은 14년 동안 저작권자의 배타적 권리를 인정했는데 이 기간이 계속 늘어나서 지금은 저작권자의 생존 기간은 물론이고 사후 70년까지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블로거 새드개그맨은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빠삐놈’이라는 동영상을 소개했다. ‘빠삐놈’은 빠삐코라는 아이스크림 광고 음악에 영화 ‘놈놈놈’의 주제곡을 합성하고 여기에 원더걸스와 이효리 등의 뮤직비디오를 입힌 패러디 동영상이다. ‘빠삐놈’은 수많은 변주를 낳았고 그때마다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왔다.

새드개그맨은 “‘빠삐놈’은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명백한 불법 콘텐츠”라고 지적했다. 새드개그맨은 “‘빠삐놈’은 ‘짬뽕’의 가치를 넘어선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작물로 봐야 한다”면서 “상업적인 목적도 없고 저작권자에게 아무런 손해도 끼치지 않는 이런 2차 생산 행위까지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우리 저작권법”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사이트에는 저작권이 만료된 음악 파일이 공개돼 있는데 이 사이트의 최신 히트 곡 가운데 하나가 가수 박향림이 1938년에 부른 ‘오빠는 풍각쟁이’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작곡가와 작사가, 가수 등 저작권자의 사후 50년까지 저작권을 보호하고 있는데 이 노래의 경우 작사가 박영호씨가 1953년에 죽었기 때문에 2003년에서야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됐다.

그런데 만약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통과될 경우 저작권 보호 기간이 70년으로 늘어나고 이렇게 오래된 노래들도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된다. 저작권이 보호되는 음악 파일을 내려 받거나 이 노래를 부른 동영상을 블로그에 게재하거나 패러디 동영상을 만드는 건 모두 불법이 된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다.

새드개그맨은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 재산권 피해가 100만원 이하인 경우는 비범죄화한다. 둘째, 개인적으로 제한된 범위에서 이용하는 경우는 복제를 허용한다. 셋째, 비영리적 전송의 경우는 면책하는 조항을 신설한다. 넷째, 디지털 저작물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축소한다. 다섯째,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포괄적으로 허용한다.

펄은 “블로그 포스트에 배경음악을 넣고 싶어도 합법적인 방법이 거의 없다”면서 “방송사들은 심지어 드라마 캡춰 화면까지도 저작권법 위반으로 문제삼는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펄은 “현행 저작권법 아래서는 누구라도 잠재적 범죄자”라면서 “그건 저작권자들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펄은 “과거에는 사람들이 음악을 듣기만 했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과 그 음악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기를 원한다”면서 “이런 상식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합법적인 대안을 만들어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언제까지 블라인드 처리하고 삭제하고 윽박지르면서 고소만 남발할 셈이냐”고 반문했다.

블로거 강정수는 “1900년대 초반에는 시장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창작자 사후 50년까지 저작권을 보호하는 규정이 지속가능한 창작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정수는 “그러나 지금은 시장이 훨씬 팽창했고 수익 규모도 훨씬 커졌다, 따라서 시스템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지식재산권 수입의 80%가 북미와 유럽의 저작권 기업에서 발생한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정수는 “저작권이 과도하게 보호되고 있으며 독점되고 있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법이 대다수 창작자들을 보호하기 보다는 거대 자본을 보호하는데 그치고 있으며 오히려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 그 부작용이 크다는 이야기다.

콘텐츠의 생산과 발행, 유통 시스템이 분리되고 있으며 비용 역시 과거 보다 훨씬 줄어들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정수는 “디지털 시대에도 콘텐츠의 가치는 큰 변화가 없지만 발행과 유통 비용은 줄어들거나 사실상 한계 비용이 0으로 수렴하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우리는 왜 발행과 유통 비용을 그대로 지불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강정수는 “아날로그 시대의 낡은 시스템을 버리고 새로운 지불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그 시스템은 창작자들의 지속 가능한 창작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창작자들을 지원하는 적극적인 사회보장제도와 플래터 같은 소셜 마이크로 페이먼트 시스템을 제도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핵심은 지속 가능한 창작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다. 강정수는 “발상을 바꿔서 소비할 콘텐츠에 미리 비용을 지불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이미 소비한 콘텐츠에 대한 평가의 의미로, 그리고 앞으로 소비할 콘텐츠의 생산을 지원하는 의미로 고마움을 전하는 시스템을 고민해 보자”고 제안했다. 강정수는 이를 ‘땡큐 이코노미’라고 정의했다.

이날 컨퍼런스는 당초 카피레프트를 강령으로 내세운 스웨덴 해적당 아멜리아 앤더스도터 의원이 기조 발제를 맡을 예정이었으나 프랑스 연금 개혁 반대 파업 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돼 불참했다. 해적당은 특허권 폐지와 온라인 복제 허용을 주장하는 정당으로 유럽 의회에서 당당하게 의석 두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오병일씨는 “아직 우리나라는 해적당의 창당을 논의하기는 이르지만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정보의 독점에 저항하는 다양한 형태의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씨는 “당면한 과제는 저작권법과 특허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한계와 오류를 지적하고 대안 정책을 입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컨퍼런스는 지금까지 늘 저작권법을 어기는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져 왔던 콘텐츠의 소비자들이 직접 저작권법의 한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이들은 “우리를 범죄자로 내몰지 말라”는 도발적인 선언과 함께 “지속 가능한 콘텐츠 생태계를 위한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발전적인 대안까지 제시했다.

핵심은 저작권법이 포괄적인 금지가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저작권 보호와 창작 지원이 돼야 한다는데 있다. 정착 단계에 접어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활동이나 다양한 웹 2.0 실험들도 기대되지만 중요한 것은 정보는 나눌수록 가치가 커진다는 오래된 상식과 우리 모두 콘텐츠 생산자면서 동시에 소비자라는 인식의 변화, 그리고 주인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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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 1. 오빠는 풍각쟁이 관련….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것이 FTA에 의해 다시 소급하여 보호되지는 않습니다.따라서 한 번 풀린 오빠는 풍각쟁이는 FTA가 비준되더라도 계속 저작권 만료 저작물이 됩니다.

    2. (지엽적이지만) 빠삐놈에 원더걸스는 없습니다. 엄정화나 전진… ^^;;;

  2. “2003년에 저작권이 해제됐다.” -> “2003년에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되어 자유이용이 가능해졌다” 가 맞는 표현입니다. 태클을 거는 것 같아서 지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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