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보호법에 따르면 2007년 7월1일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 이상 고용하면 자동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기업들은 가뜩이나 경기침체 국면에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면서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당장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 하던대로 하고 임금도 받던대로 받게 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계약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쉽게 자를 수 없게 됐다는 것 뿐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왜 그렇게 비정규직법을 폐지하려고 안달을 했을까.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노조를 만들고 임금을 올려달라고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비정규직은 노조를 만들 수 없고 같은 일을 시키더라도 임금을 절반만 주거나 맘에 안 들면 언제라도 자를 수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필사적으로 막았던 것이다. 핵심은 결국 절반의 임금과 해고 편의성에 있다.

실제로 노동부가 실태조사에 나선 결과 7월 1일 이후 2년을 채운 비정규직을 해고한 경우는 30%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70%는 적극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시켰거나 대책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자동적으로 전환이 됐거나 결국 모두 정규직이 됐다는 이야기다. 정부와 기업, 보수언론이 호들갑을 떨던 것과 달리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다른 싸움이 필요할 때다.

(아래는 미디어오늘 오프라인 기사)

해고대란 온다더니 조사발표 미루는 이유는?
고용조정 비율 30% 수준에 그쳐… 노동부 통계 조작 논란.

비정규직 보호법을 방치하면 최대 100만명이 해고된다고 떠들던 노동부가 정작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조사결과, 그동안 노동부의 주장과 달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고의적으로 이를 은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노동부는 아직 발표할 단계가 아니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다.

국민일보는 31일 “1만개 기업체 인사담당자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당초 3대 7이라고 예상했던 정규직 전환대비 고용조정 비율이 7대 3으로 나왔다”고 보도했다. 고용조정이란 비정규직 관련법의 적용을 받는 기간제·단시간 근로자와 파견근로자 가운데 지난 7월1일자로 근속기간이 2년을 넘어 해고·외주화되거나 다른 기간제 근로자로 대체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 비율이 30% 정도에 그쳤다는 이야기다.

국민일보와 한겨레 등이 노동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 같이 보도했는데 노동부는 즉각 해명자료를 내고 “노동부 실태조사 결과는 현재 모수 추정 중에 있어 확정되지 않은 상태며 최대한 빨리 통계분석을 마무리해 이번 주 안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8월 초로 예정됐던 발표를 한 달씩이나 미루는 데 대해 노동계의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통계분석이 아니라 통계조작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이에 앞서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해고 노동자가)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고 언급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겨레는 노동부가 공식 발표를 앞두고 비공식적으로 이 같은 사실을 흘린 것을 두고 “해고대란이라는 오판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무마하려고 물타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면서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노동부가 조사결과를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쟁점이 되는 부분은 이번 조사가 고용조정 비율만 확인한 탓에 기업이 자발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한 비율과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아 자동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이 구분이 안 된다는데 있다. 노동부는 뒤늦게 이들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들마다 조금씩 입장이 다른데 이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봐야한다는 견해와 지금이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조선일보도 1일 사설에서 “노동계와 일부 좌파단체들은 이를 두고 ‘정부가 자기들의 해고대란 예상이 빗나가자 재검증을 한다면서 물타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하고 있다'”면서 “노동부는 당초 약속대로 서둘러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선일보는 “현장실태가 어느 쪽이든 있는대로 드러내놓고 거기에 맞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공개를 꺼리면 꺼릴수록 의혹만 부풀리게 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도 사설에서 “비정규직 논란은 실체보다 자의적인 예측에서 비롯됐던 측면이 적지 않다”면서 “정부는 법 개정만 앞세우며 제도의 소프트랜딩을 위한 지원책 개발에 소홀했고 정치권은 해법 모색은커녕 여야대립에 골몰했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대란설에 일조했던 보수성향 신문들까지 정부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왜 좌파단체들에게 꼬투리 잡힐 짓을 하느냐면서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이다.

노동부의 최종 발표를 지켜봐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해고대란의 규모가 우려했던 것만큼 심각하지 않았으며 비정규직법을 개정하지 않은 덕분에 상당수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고대란 운운하면서 기간연장 또는 폐지를 주장하던 보수·경제지들의 주장이 사실무근으로 드러난 셈이다. 일부 비율이 조정될 수는 있지만 고용조정 규모가 50%를 넘지는 않을 거라는 게 노동부 안팎의 분석이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정규직화의 이유가 자발적 정규직화든 자동적 정규직화든 핵심은 정규직화가 노동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노동부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은 정규직화 사업장을 지원하고 사용사유 제한 도입 등과 같은 제도 개선을 통해 이를 더욱 촉진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근거없는 해고대란설을 부추기며 비정규직법 개악을 밀어붙였던 노동부 장관은 국민 앞에 사과하고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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