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느 보봐르는 말했다. “사랑하는 남자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야 말로 내가 원하는 생활이에요.” 그랬던 보봐르가 한 남자를 만족시키려고 안달을 부렸으니 그가 바로 장 폴 사르트르였다. “사르트르야말로 내게는 순수한 의식이고 자유 그 자체였어요.” 흥미로운 건 이 두 사람이 계약 결혼을 했으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이성을 만났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보봐르는 이렇게 말한다. “사르트르와 나 사이에는 늘 말이 있었어요.”

김영민은 이 책에서 “연인의 살이 고기로 느껴질 때도 그 고기를 다시 살로 되돌리는 법은 오직 말 밖에 없다”고 정리한다. 카시러나 엘리아데는 일찌감치 “사람이 워낙 상징적 동물일진대, 그 살은 이미 말과 섞여 있다”고 규정한 바 있다. 김영민은 “말이 없는 살은 강간이거나 해부이거나 시애(necorphilia)”이며 “그 먼 반대편에는 말과 살이 한데 어울리며 스파크를 일으키는 인간적인 사랑의 무상한 쾌락이 자리한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대개 살이 연정을 부르긴 하지만 살에만 일방적으로 탐닉하는 것은 산망스러울 뿐만 아니라 치명적”이라는 대목에서는 왜 그 수많은 연인들이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서로에게 무덤덤해지는지를 설명해 준다. 김영민은 “생산적인 연애는 극히 드물다”면서 “보봐르와 사르트르, 테일러 부인과 밀, 샤틀레 부인과 볼테르의 관계는 매우 드문 현상”이라고 강조한다. 대개는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버리는 치명적인 낭비, 그것이 연애의 본질”이라는 이야기다.

김영민은 그래서 바울이 예수를 만나거나 융이 프로이트를 만나거나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만나거나 추사가 초정을, 초정이 연암을, 조영래가 전태일을 만나는 등의 사건은 수없이 많은 외상적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고 설명한다. “한 사람의 사유와 태도를 뒤흔드는 바람 같은 진실의 흔적”이 “예술적 창의와 생산으로 승화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는” 그런 특수한 조건에서나 가능한 사랑이라는 설명이다.

김영민의 통찰은 “인정투쟁을 악용하면서 허영과 탐욕의 늪 속에 허우적거리는 사랑이 너무 흔하다”는 대목에서 두드러진다. 김영민은 “생산적 상호인정은 연인 간의 사랑이 창조적 열정과 호혜적 관계를 맺기 위한 토대와 같은 것”이라고 다시 규정한다. “그것은 욕망만도 애착만도 제도만도 아닌 사랑의 관계를 이루기 위한 초석이며 연인이 동무와 겹치면서 이드거니 함께 걷도록 돕는 길”이라는 설명도 신선하다.

김영민은 하버마스-호버트의 이론을 인용해 “인정 망각은 연인을 물화시키는 짓이며 사랑이라는 그 무시무시한 맹목의 동력을 상호인정의 호혜적 의사소통의 관계로 승화시키는 길만이 연정의 생산성을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감성과 오성을 매개하는 상상력처럼 인정은 사랑과 생산성을 매개한다”는 이야기다. 거꾸로 말하면 “인정과 실천적 공감이 없는 애정이 짧은 애착으로 빠지거나 이해관계로 변질되고 만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래서 김영민은 다시 “말은 살로부터 도피처이기도 하다”면서 롤랑 바르트를 인용한다. “언어는 살갗이다…. 그 사람이 내 말 속에 둘둘 말아 어루만지며 애무하며 이 만짐을 이야기하며 우리 관계에 대한 논평을 지속하고자 온 힘을 소모한다.” 하이데거가 아렌트에게 끌렸던 것처럼 연애의 열정은 무지에 근거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무지는 지적 반려에 대한 믿음과 환상, 은밀하면서도 특권적인 지적 소통의 확신에 근거한다는 이야기다.

살과 말, 당신은 연인의 어디에 더 끌리는가. 히타피아는 자신을 사랑한 제자에게 생리대를 보여주면서 말했다고 한다. “나의 제자여. 자네가 진정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네. 그러나 자네는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사랑할 수는 없지. 육체는 그림자일 뿐이라네.” 김영민은 “동무의 길은 인정과 배려를 통해 사랑의 열정을 생산적으로 승화시키는데서 트인다”고 강조한다. 이게 이 책의 결론이 아닐까.

동무와 연인 / 김영민 지음 / 한겨레출판 펴냄 / 1만원.

그리고 이 책과는 전혀 다르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책.
참고 : 유혹의 기술.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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