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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클 다운’으로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을까.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29, 2006

‘트리클(trickle)’은 넘쳐흐른다는 말이다.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효과는 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신다는 의미다.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부자들이 돈을 써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말로는 하방침투 효과라고도 하고 더 노골적으로는 ‘떡고물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 경제에 르네상스가 오는 것일까. 삼성전자를 비롯해 LG전자와 현대자동차, 포스코, KT 등 업계 1위 회사들은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적어도 앞으로 3년 동안은 큰 위험요인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업들은 매출과 영업이익, 시가총액이 해마다 두자리 수 이상 오르고 있다. 한국 경제는 이제 수확기에 접어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뒤를 이을 다음 대통령은 아마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도 부담이 적을 것이다.

통계의 오류를 경계해야겠지만 트리클 다운 효과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위 계층 실질소득이 조금이나마 늘어났고 소비도 조금씩 회복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문제는 트리클 다운 효과만으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중위 계층이 아니라 하위 계층이다.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노동 조건도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이들의 소득 증가율은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쳤다. 이들의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게 바로 양극화 문제의 본질이다.

참고 : 통계 그래프로 본 양극화의 실상. (이정환닷컴)

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양극화 문제 해결은 필요하지만 세금을 올리지는 않겠다고 했다. 결국 이게 노 대통령의 한계다.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일은 대통령도 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런데 여기서 “국민들”은 중위 계층 이상의 국민들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국민들이 만장일치로 원하는 정책만 할 수는 없다. 사회 정의를 위해서라면 반발을 무릅쓰고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트리클 다운만으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통계가 이를 명확히 증명한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하위 계층 국민들은 계속 가난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에게 양보를 요구하거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를 탓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핵심은 사회적 합의와 연대의 틀을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허한 구호를 늘어놓지 말고 정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최근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논의는 양극화 문제의 함정이 어디에 있는가 잘 보여준다. 무작정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국민들의 동의도 얻기 어렵고 실효성도 크지 않다. 나보다 더 부유한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낸다는 믿음이 있을 때, 내가 내는 몇 만원 가운데 단돈 몇 천원이라도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확신이 있을 때, 그때 이 제도는 정착될 수 있다. 양극화 문제의 해법도 마찬가지다.

정말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넘쳐나는 물로 적당히 바닥을 적시려 할 게 아니라 누군가는 바가지로 물을 퍼 담아내야 한다. 이제는 파이를 키우자고 말할 때가 아니다. 파이는 이미 충분히 크고 이제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파이를 더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겠지만 그 파이가 어떻게 컸는가 돌아봐야 한다. 대기업 성장의 이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과 눈물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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