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팻 메시니(Pat Metheny) 공연.

  • 팻 메시니 그룹이 아니라 팻 메시니 단독 공연이었다.
  • 올해 일흔 살인데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다.
  • “Beyond the Missouri Sky”는 역시 좋았고 중간중간 쉬어가면서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았다. 어렸을 적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기타 자랑까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 뭐냐는 질문에 1번은 스티비 원더, 2번은 허비 행콕이라고 말했다.
  • 한때 ‘메쓰니’라고 썼는데 표준 표기가 ‘메시니’로 바뀌었다.

라이브 루핑(Live Looping).

  • 루프 레코딩은 반복해서 녹음하는 걸 말한다. 반주를 먼저 녹음하고 그 위에 노래를 입힌다거나, 피아노 이중주를 한 사람이 연주할 수도 있다.
  • 라이브 루핑은 루프를 라이브로 돌린다. 둥둥둥둥 베이스 먼저 깔고 그걸 틀면서 어쿠스틱 올리고 그 위에 다시 신디사이저를 입힌다.
  • 마치 세 사람의 팻 메시니가 함께 연주하는 것 같은 효과를 준다. 혼자 페달을 밟으면서 풀었다 놨다 마술 같은 공연이었다.
  •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진짜 미친 짓은 마지막 앵콜 때 나왔다.

오케스트리온(Orchestrion).

  • 오케스트리온은 녹음기 발명 이전에 유행하던 자동 연주 기계다. 팻 메쓰니는 19세기 악기들을 무대 위에 늘어놓고 21세기 방식으로 연주한다.
  • 팻 메시니의 오케스트리온은 실로폰과 드럼, 비브라폰, 파이프 오르간 등 수십 개의 악기를 동시에 연주하는 방식이다. 금속 조각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찰랑거리는 소리를 만들기도 하고 유리 병에 바람을 불어넣기도 한다.
  • 기타 연주를 MIDI 신호로 변환해서 솔레노이드와 유압 피스톤을 작동시켜 오케스트리온을 연주하는 방식이다.

30명의 팻 메시니: 오케스트리온+라이브 루핑.

  • 오케스트리온을 라이브 루핑 방식으로 연주한다는 건 루프 레코딩이나 오버 더빙과는 다르다. 연주를 녹음하는 게 아니라 신호를 기록해서 연주를 불러내는 방식이라고 하는 게 맞다.
  • 고풍스러운 철물점 또는 미친 발명가의 작업실, 디즈니의 판타지아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도 많았다.
  • 루프는 단순 반복되는 게 아니라 쪼개고 겹쳐지면서 오케스트레이션된다. 실제로 오케스트리온 라이브 공연은 여러 조합의 음악을 레이어처럼 쌓는 구조로 만든다. 모든 오케스트레이션은 팻 메시니가 무대에서 페달로 직접 구동한다.
  • 1회전: 기타로 리듬을 연주하면서 드럼과 퍼커션, 심벌즈, 탬버린 등을 연주할 신호를 만든다.
  • 1.5회전: 드럼과 퍼커션, 심벌즈, 탬버린 등을 연주한다.
  • 2회전: 기타로 코드를 연주하면서 피아노와 마림바, 비브라폰 등을 연주할 신호를 만든다.
  • 2.5회전: 드럼과 퍼커션, 심벌즈, 탬버린에 피아노와 마림바, 비브라폰을 올린다.
  • 3회전: 기타로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루프에 저장한다.
  • 4회전: 기타로 테마를 연주하면서 루프에 저장한다.
  • 5회전: 기타로 특수효과를 만든다. 글로켄슈필과 파이프오르간 등을 연주할 신호를 만든다.
  • 연주: 신호와 루프를 불러내면서 레이어를 쌓거나 빼면서 연주한다. 자동 피아노와 비슷한 원리다. 녹음된 걸 재생하는 게 아니라 팻 메시니의 지휘에 따라 기계가 즉석에서 연주한다.
  • 마치 30명의 팻 메시니가 한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과 같은 효과다. 일고여덟 바퀴를 돌면서 음악이 비로소 완성된다. 혼자 온 이유가 있었다.

더 깊게 읽기: 글렌 굴드의 자동 피아노.

  • 글렌 굴드는 콘서트를 거부하고 완벽한 녹음에 매달리기로 유명했다. 같은 곡을 수백 번씩 녹음하고 가장 좋은 부분을 따붙여서 최상의 연주를 만들어 냈다.
  • 굴드가 죽고 난 뒤 굴드의 연주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건반 두드림과 음량, 페달링 등 모든 정보를 신호로 바꿔서 자동 피아노에 집어넣었다. 이 리마스터링 앨범이 발매되기도 했지만 이제 누구라도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피아노 연주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 뉴욕타임스는 “같지만 같지 않다”고 평가했지만 굴드의 영혼을 거의 복제했다고 할 수 있다.
  •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임윤찬 콘서트도 어느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다르고 음반도 어느 오디오로 듣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디지털로 변환한 연주를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연주하게 할 수 있다면 이곳이 곧 콘서트장이 된다.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미러’ 같은 상황이다.)

팻 메시니가 오케스트리온으로 만들려는 것.

  • 자동 피아노가 있으면 피아니스트 혼자서 연탄곡(Piano four hands)을 연주하는 것도 가능하다. 오케스트라 파트를 먼저 연주하고 피아노 파트를 레이어로 쌓으면 된다.
  • 팻 메시니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밴드를 30명으로 늘릴 수도 있지만 팻 메시니가 30명 있으면 가장 좋은 거 아냐?
  • 확실히 팻 메시니 아니면 할 수 없는 미친 짓에 가까운 시도다. 글렌 굴드를 자동 피아노로 복원하려는 시도와 달리 이것은 100% 아날로그고 일회적이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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