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자동차 공장의 사장이라고 생각해 보라. 주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들면 공장을 더 지어야 한다. 그런데 혹시라도 나중에 주문이 줄어들 때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장을 짓기 보다는 추가 수당을 주고 직원들에게 일을 더 시키는 게 훨씬 이익이다. 직원들은 추가 수당을 받아서 좋고 당신은 매출과 이익이 늘어서 좋다.

그래서 잘 나가는 많은 공장의 노동자들은 야근에 특근에 맞교대로 일을 시킨다. 저녁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기도 하고 주말이면 24시간 연속 쉬지 않고 일을 하기도 한다. 덕분에 추가 수당을 받고 연말이면 성과급도 받고 우리사주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늘 잠만 자고 제대로 여행 한 번 떠날 여유도 없는 노동자들은 과연 행복한 것일까.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된 것은 2004년 7월. 법정 근로시간이 40시간으로 줄어들었는데 실제로 지켜지는 직장은 많지 않다. 주 5일에 40시간이면 하루 8시간 꼴이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정오에 점심을 먹고 다시 오후 1시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6시까지 일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는 시스템이다.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여전히 길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자료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노동자들 연간 노동시간은 2354시간으로 비교 대상 나라들 가운데 가장 길었다. 주당 계산하면 45.3시간, 하루 9.1시간 꼴이다. 주5일 근무 기준으로 환산하면 저녁 7시 이후 퇴근이 기본이라는 이야기다.

노르웨이는 연간 1360시간, 독일은 1435시간, 프랑스는 1535시간, 스웨덴은 1587시간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노르웨이 노동자들보다 연간 994시간이나 더 일한다. 주당 계산하면 19.1시간 더 일하는 셈이다. 비교 대상 나라들 가운데 연간 2천시간 이상 일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그리스(2053시간), 체코(2002시간) 밖에 없다.

노동부 통계도 비슷한 결과를 내놓는다. 우리나라 제조업 노동시간은 2005년 기준 주당 46.9시간으로 ILO(국제노동기구) 회원국 65개국 가운데 59위로 나타났다. 세계 평균은 40.4시간이다. 우리나라보다 주간 노동시간이 긴 나라는 이집트(55.2시간)와 코스타리카(48.5시간), 요르단(61.9시간), 싱가포르(49.5시간), 태국(49.6시간), 터키(52.1시간)가 전부다.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자료에 따르면 금속노조 조합원의 주당 노동시간은 54.17시간, 주당 노동일수는 5.48일로 나타났다. 주 6일 이상 일하는 노동자가 41%, 주 7일 일하는 노동자도 9%나 됐다. 이처럼 노동시간이 긴 것은 상시적인 잔업과 특근 탓이다. 주당 잔업일수는 4.51일, 월간 특근일수는 2.91일로 나타났다.

ILO는 40세가 넘는 노동자는 야간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독일 수면의학회는 주야 맞교대 하는 노동자의 평균 수명이 13년 이상 짧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일주일 내내 10시간씩 야간 노동을 하다가 토요일 아침 8시에 퇴근했다가 같은 날 오후 5시에 출근해 일요일 아침 11시까지 꼬박 18시간을 일하는 경우도 있다.

금속노조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노동자들 가운데 84.7%가 한 가지 이상의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이처럼 건강을 망가뜨리면서 초과노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93.7%가 “초과노동이 없이는 생활이 힘들어서”라고 답변했고 79.8%는 “생활임금을 확보하면 초과노동을 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언론이 귀족노조라고 비난하는 것과 다른 조사 결과다.

언론은 노동시간은 언급하지 않고 이들의 높은 임금만 거론하면서 사회적 반감을 부추겨 왔다. “현대차 생산직 평균 연봉이 5500만원으로 국내 제조업 평균 2942만원의 1.9배에 이른다”는 등의 지적이 대표적이다. 조선일보 등은 현대차의 파업을 두고 “귀족 노조의 배부른 파업”이라고 비난한다. 파업 때마다 나오는 ‘단골 레퍼토리’다.

그러나 금속노조가 말하는 현대차의 실상은 다르다. 현대차 조립 라인의 주간 근무는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이고 야간 근무는 저녁 8시 출근, 새벽 6시 퇴근이다. 2시간마다 10분씩 휴식시간이 있고 식사시간이 한 시간씩 있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퇴근 이후 1시간40분 가량 잔업이 일상화돼 있다. 휴일에는 교대로 특근을 해야 한다.

현대차 생산직 노동자 19년차의 경우 시급은 5322원, 8시간씩 주5일 근무를 하면 1533만원이 된다. 여기에 상여금이 1011만원, 복지수당이 18만원이고 근속수당이 108만원, 기타 가족수당과 장려금, 휴가비 등이 연간 232만원 정도 추가된다. 이를 모두 더해도 통상 연봉은 2901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경제지들이 비난하는 귀족노조에 걸맞는 임금을 받으려면 살인적인 잔업과 특근을 해야 한다. 법정근로시간 8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해서 받게 된다. 19년차의 경우 잔업 시급이 5322원의 150%, 7983원이 된다는 이야기다. 10시 이후와 휴일에는 야간근로 수당 100%를 가산, 시급이 1만644원이 된다.

5천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으려면 주야간 교대근무와 날마다 계속되는 잔업, 격주로 특근을 해야 한다. 현대차 노동자들은 “몸이 망가진다는 느낌이 드는데도 조금이라도 일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돈 버는 기계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노동자들도 많다.

금속노조는 임금삭감 없는 주간 2교대로 전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주간 2교대를 실시하고 있는 르노삼성자동차의 경우 주간조가 아침 7시에 출근, 오후 3시45분에 퇴근, 오후조는 오후 5시에 출근, 다음날 새벽 1시45분에 퇴근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잔업이 퇴근 이후 1시간씩 상시 편성돼 있다.

흔히 노동자들은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잔업과 특근을 기꺼이 수용한다. 임금은 늘어나겠지만 이런 타협으로 다른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자본 입장에서도 교대근무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산량을 3배 가까이 늘리는 최선의 대안이 된다. 특히 현대차 등은 고용인원을 늘리기 보다는 노동시간과 강도를 늘려가면서 이윤을 극대화해 왔다.

현대차 노조는 주간 2교대제를 도입하고 “제도 변경에 따른 근로시간 감축 분은 회사 측이 설비투자를 늘리거나 인력충원을 통해 이뤄야 할 것”이라는 입장인 반면, 회사 측은 “주간연속 2교대를 시행하면 종전대비 1일당 3∼4시간 정도 라인가동시간이 감소하는데 그만큼 임금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언론이 “배부른 파업”의 표본으로 삼는 철도 노동자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3조2교대으로 일하는 역무원의 경우 주간 근무의 경우 오전 9시 출근, 오후 7시 퇴근이지만 야간근무의 경우, 오후 7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9시에 퇴근, 14시간 연속으로 일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열악한 조건이 6일을 주기로 반복된다는데 있다.

주 5일 근무가 도입된 뒤에도 철도청은 고용인원을 늘리기 보다는 1인 승무제 도입 등으로 오히려 노동강도를 높여 왔다. 허병권 운수노조 철도본부 노동안전보건국장은 “6명씩 주야 맞교대를 하다가 4명씩 3조로 나눠 2교대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노동강도가 높아진 곳도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경제지들은 과거 금융산업노조가 은행 영업점 마감 시간을 앞당겨달라고 요구할 때도 “배부른 귀족 노조의 푸념”이라는 입장이었다. 현대차 파업 때 세계일보는 사설에서 “(주문량을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노조는 야간 근무를 하면 건강이 악화된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노조를 공격했다.

보수·경제지들은 연봉이 높다는 이유로 또는 안정적인 일자리라는 이유로 이들의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요구를 묵살해 왔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나라가 됐다.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대우를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선택된 일부에게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높은 임금을 안겨주고 타협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지난해 펴낸 ‘교대제, 무한 이윤을 위한 프로젝트’에서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서 진행되는 야간노동이 아니라 오로지 개별 기업의 경영상의 필요 즉 개별기업의 이윤만을 위해 지금까지 실시되어 오고 있던 모든 종류의 야간노동은 마땅히 당장 철폐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는 “OECD 나라들 노동시간과 GDP 증가율을 비교한 결과 노동시간과 노동생산성의 상관계수가 -0.56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들수록 오히려 생산성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강 교수는 “노동시간이 짧을수록 노동생산성과 공적 사회지출, 즉 복지지출도 높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Similar Posts

4 Comments

  1. 예전에 KBS 스페셜에서 현대차와 도요타에 대해서 방송한적이 있는데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도요타는 1950년 이후로 노사파업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협조적인 노사관계에서 생산성은 급격하게 늘어났고,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2006년 총 매출액은 러시아 GDP에 맞먹는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세계 최장 노동시간에 절대 뒤지지 않을 우리나라 IT 개발자들도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