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7일 5면 <12년 된 낡은 세법 봉급 생활자 잡는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일련의 감세 논리의 허구성과 자가당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매일경제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물가와 소득수준이 오르고 있는데 과세표준 기준이 조정되지 않아 중산층의 부담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경제는 “근로소득세 왜곡 현상은 소득세 과세기준이 되는 근로소득세 과세표준 금액이 여전히 낮은데다 과세표준 구간도 4개 구간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과세표준은 연간 소득 1200만 원 이하는 8%, 1200만 원 초과 4600만 원 이하는 17%, 4600만 원 초과 8800만 원 이하는 26%, 8800만 원 초과는 35%씩이다.

일단 매일경제가 12년된 낡은 세법이라고 비판하는 것부터 문제가 있다. 과세표준 구간은 지난해 12월 상향 조정됐다. “12년째 변동이 없다”는 매일경제의 비판은 사실과 다르다. 매일경제는 “지난 12년 동안 물가 상승과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도 소득세율 부과 기준이 되는 과세표준은 사실상 제자리 걸음인 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 매일경제 3월7일 5면.  
 

그런데 매일경제는 바로 그 다음 문장에서 “과세표준 구간은 지난 1996년 4월 이후 11년 동안 한 번도 조정되지 않다가 지난해 12월 뒤늦게 미세 조정됐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12년째 변동이 없다”는 비판과 상충되는 문장이다. “12년된 낡은 세법”이라는 제목도 엉뚱하기 짝이 없다.

매일경제의 엉뚱한 딴지걸기는 기사 전반에 걸쳐 계속된다.

매일경제는 “8천만 원 초과 근로자의 세 부담은 2006년에 비해 6525억 원 늘어났으며 4천만~8천만 원 초과 근로자도 5563억 원의 세 부담이 늘어난 것으로 국세청 전수조사 결과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들 고소득 근로자들의 세 부담이 늘어난 것은 매일경제도 지적하고 있듯이 고소득 근로자의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람 수가 늘어난 것은 계산하지 않고 전체 세금이 늘었으니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고 생떼를 부리고 있는 셈이다.

다음 표를 보면 매일경제가 얼마나 억지를 부리고 있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 소득세율. (단위 : 천명, 억원, %) ⓒ국세청.  
 

지난해 8천만 원 초과 근로자는 6만9천 명, 이들이 낸 세금은 2조9963억 원이다. 1인당 4342만 원씩이다. 2005년에는 5만3천 명이 2조3438억 원을 냈고 1인당 4422만 원씩이었다. 사람 수도 늘고 전체 세금도 늘었지만 1인당 부담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4천만~8천만 원 경우는 지난해 32만3천 명이 2조7742억 원을 내서 1인당 859만 원, 2005년에는 26만1천 명이 2조2179억 원을 내서 1인당 850만 원씩이었다. 이 경우는 9만 원 가량 부담이 늘어난 셈이지만 만약 매일경제의 주장처럼 과세 표준을 세분화하면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오히려 부담이 더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비교하면 훨씬 더 명확하다. 다음 그래프를 보자.

   
  ▲ 미국과 한국 소득세율 비교.  
 

미국 독신 가구와 비교할 때, 과세표준 9천만 원 이하의 경우라면 대부분의 경우 우리나라의 세금이 훨씬 적다. 좀 더 엄밀히 따지려면 면세와 소득 공제 혜택까지 살펴봐야 하지만 일단 세율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과세표준 9천만원 이하의 중산층에게 훨씬 유리한 구조로 돼 있다.

매일경제가 문제 삼는 부분은 과세표준 구간을 더 높이라는 것. 이를테면 현재는 8800만원 초과는 35%씩 내도록 돼 있지만 최고 세율 구간을 미국처럼 3억원 이상으로 높이고 중간 구간을 만들어 33%나 그 이하의 세율을 적용하자는 이야기다.

   
  ▲ 미국 가구 소득세 비율.  
 

실제로 과세표준 9천만 원 이상의 고액 연봉자라면 세액 공제 등을 빼고 계산할 때 표면적으로 우리나라의 세율이 더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매경이 주장하는 것처럼 “낡은 세법이 봉급 생활자를 잡는다”는 비판은 정확하지 않다. 지난해 기준으로 과세표준 8천만 원 이상인 사람은 1% 수준이다. 만약 과세표준 전 구간에 걸쳐 미국 보다 더 세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면 결국 상위 1%의 세금을 깎아주자는 주장을 하기 위해 전체 봉급 생활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매일경제의 주장이 얼마나 억지스러운지 확인하려면 우리나라와 미국의 소득 분포의 차이를 살펴보면 된다.

   
  ▲ 소득 분포 대비 소득세율 비교. 미국의 경우. ⓒ미국 국세청.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17% 이하의 세율을 적용 받는 사람이 622만9천명으로 94.1%에 이른다. 26%를 적용 받는 사람이 32만3천명으로 4.9%, 35%를 적용 받는 사람이 나머지 6만9천명, 상위 1%다.

미국에서는 2005년 기준으로 15% 이하의 세율을 적용 받는 사람이 33.6%, 25%를 적용받는 사람이 20.7%, 28%를 적용 받는 사람이 3.5%, 33%를 적용 받는 사람이 1.4%, 35%를 적용 받는 사람이 0.9%씩이다.

세율 구간이 달라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얼추 25% 이상의 세율을 적용 받는 비율만 계산해 봐도 우리나라는 5%가 조금 넘는 정돈데 미국에서는 26.5%나 된다. 매일경제가 미국을 들먹이면서 “선진국들은 우리나라보다 유연한 세금 체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가당착이다.

물론 물가에 연동해서 세율 구간을 조정할 필요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세율을 깎지 않는 이상 과표구간에 걸친 일부를 제외하고는 세금 부담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소득세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는 사실을 매일경제는 간과하고 있다.

   
  ▲ 국가별 실효세율 비교 (OECD Taxing Wages, 2005)  
 

우리나라의 GDP 대비 소득세 비중은 3.4%로 일본(4.7%)나 독일(7.9%), 미국 8.9%)보다 낮은 수준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은 9.1%다. 소득세가 전체 조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우리나라는 13.6%로 일본(17.8%)나 독일(22.8%), 미국(34.7%), OECD 평균(24.6%) 보다 훨씬 낮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소득 공제 등 면세 혜택이 많아 사실상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 사람이 597만명으로 47.4%에 이른다. 저소득 계층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세금 체계라는 이야기다. 다만 이를 두고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진보진영에서도 면세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저소득 계층도 일단 세금을 내고 복지 혜택을 통해 돌려받도록 하자는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 논리는 이처럼 논리적으로 근거가 빈약하다. 중산층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극소수의 상위 소득 계층의 부담을 줄여주는데 그칠 가능성이 크고 오히려 간접세 비중을 늘려 저소득 계층에게 그 부담을 전가시킬 우려도 있다. 현행 제도도 문제가 많지만 최근 논의 대로라면 우리나라 조세 제도는 오히려 더 개악될 가능성이 크다. 매일경제 등 경제지들이 나서서 이를 봉급 생활자를 위한 감세 정책으로 포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악의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사실 하나 더. 매일경제의 이 기사는 지난해 3월8일 <중산층 잡는 11년된 소득세제>의 복사판이다. 11년이 올해는 12년으로, 중산층이 올해는 봉급 생활자로 바뀌었을 뿐 논리 전개도 완벽히 같다. 지난 1년 사이에 과세표준 구간이 조정된 사실을 알면서도 지난해 기사를 그대로 재탕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 지난해 3월8일 매일경제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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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대한민국의 경제신문은 철저하게 ‘가진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문이죠. 애초에 그들은 중산층이나 서민은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이번 기사도 언제나와 똑같은 내용이네요. (어찌피 같은 내용이니 작년기사 날짜만 바꾼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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