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보경 프론티어M&A 회장.
“외환은행 불법 매각”이라고 흔히 이야기하지만 불법 여부는 아직까지 가려진 바가 없다. 재판은 지지부진하고 책임자들은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다닌다. 국내 M&A 업계의 대부로 꼽히는 성보경 프론티어M&A 회장은 “명백한 불법은 없다”고 말한다. 어떻게든 법의 구멍을 찾아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부유출 논란은 어떨까. 알짜배기 자산이 출처도 모르는 투기적 사모펀드에 팔려나가는데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단 말인가.
성 회장은 “내년에 경제가 다시 고꾸라진다면 엄청난 시장이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기업을 비롯해 우량한 기업이 매물로 쏟아져 나오고 정부가 국민들 세금을 쏟아부어 경제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M&A 업계에는 ‘대박’ 터지는 기회가 속출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성 회장은 IMF(국제통화기금) 이전 상업금융과 투자금융의 비율이 9:1이었다면 지금은 7:3 정도고 이 비율이 갈수록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주목할 부분은 그 최종 결정권자인 정부 관료들이 과연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다. 이들은 이들 기업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작은 이해관계에도 쉽게 중립을 잃는다. “외환은행의 경우도 그랬지만 정부 관료들은 규정에만 맞추면 됩니다. 최선의 결과를 끌어내기 보다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준에서 적당히 타협을 하는 겁니다. 부정부패가 말도 못하죠.” 성 회장은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걸 누가 감시하겠습니까. 언론이 문제 삼지 않으면 결코 드러나지 않습니다. 100억원짜리 기업을 50억원에 넘겨 받으면서 정부 관료에게 10억원을 집어주는 겁니다.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언론이 권력과 자본의 유착관계를 면밀히 파고들어야 하는 겁니다. 기자들은 이 이너써클을 취재가 안 되는 영역으로 내버려둡니다. 그런데 과연 내버려둬도 되는 것일까요.”
다음은 성 회장과 일문 일답.
– 국내 들어온 사모펀드를 보면 공무원 연금이나 대학 기금 같은 보수적 성향의 자금이 참여하고 있어 의외인 경우가 많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사모펀드의 성격과 맞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뭔가.
“일단 전제할 것은 돈이 많을수록 더 보수적이라는 사실이다. 론스타에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이 들어와 있지만 사실 비중은 많지 않다. 드러나지 않은 검은 돈의 실체에 주목해야 한다. 공무원 연금은 원금 보전에 플러스 알파 같은 굉장히 유리한 조건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 사모펀드가 위험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건 자본 구성의 상당 부분이 검은 돈이기 때문이다. 돈 세탁을 위해 기꺼이 높은 리스크를 감당한다는 이야기다.”
– 검은 돈의 규모가 갈수록 더 커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 대박 터지는 딜은 늘 존재한다. 경제가 위축될수록, 기업들이 나자빠질수록 더 많은 기회가 존재한다. 정부 관료들은 공공의 이익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왜냐, 자신들에게 더 돌아오는 게 없기 때문이다. 챙길 건 챙기고 규정만 맞추면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외환은행 아닌가.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언론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고 철저하게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 검은 돈에게는 이번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맞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투자은행이 박살난 것처럼 알려졌지만 나는 위기의 주범이 곧 그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위기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것도 바로 그들이다. 과거에는 자기 돈으로 게임을 했다면 이제는 펀드를 동원하면 된다. 그 돈은 노동자들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사실은 사는 놈과 파는 놈이 같다는 이야기다. 시장이 폭락하면 노동자들은 쪽박을 차고 그 기회를 이용해 검은 돈은 자산을 부풀린다.”
– 이번 위기도 의도적으로 조장된 것이라고 보나.
“위기라고 떠들었지만 정작 원자재 가격은 올랐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오른 것은 현물이 아니라 선물 가격이었다. 원자재 시장은 이미 초국적 자본에 독점돼 있지 않나. 이들은 선물 가격을 끌어올리고 순진한 개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다음에 한꺼번에 팔아 치워서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반복되는 위기, 한 나라의 경제가 디폴트 될 때마다 초국적 자본은 덩치를 키웠다.”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비롯해 무역과 자본의 장벽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자본의 초국적 연대에 맞서 국내 경제를 지킨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내 자본이냐 외국 자본이냐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도 여전히 기업의 국적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왜냐, 우리나라에 세금을 내고 우리나라에 일자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위협을 받고 있다. 어느 나라에도 세금을 내지 않는 검은 돈이 기업들을 사고 팔면서 차익을 남기려고 한다. 공기업 민영화는 이들에게 대박 잔치가 될 것이다. 이해관계가 없는 정부 관료들이 그 결정권을 쥐고 있다. 이게 정말 걱정스럽다.”
– 세금만 잘 내면 뭐하나. 이익의 상당부분이 주주 배당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사주를 매입하는데 해마다 1조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절대 다수가 외국인 주주 비중이 절반이 넘는다. 다른 대안은 없는가.
“이제 와서 장벽을 더 높이 쌓을 수는 없다. 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세계가 단일 시장이 되면 1등 기업만 살아남게 된다. 2등, 3등 기업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하겠지만 떡고물만 흘릴 뿐 고스란히 검은 돈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정치 권력에 도덕성이 있나. 이미 정부 관료들은 뿌리 깊이 초국적 자본에 결탁돼 있다. 우리 세대는 적당히 버틸 수 있겠지만 우리 다음 세대가 걱정이다.”
– 산업은행이 KKR(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와 업무제휴를 맺고 투자금융 업무 확대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KKR은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투기적 성향의 사모펀드 아닌가. 어떻게 보나.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카지노 자본주의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공공성 높은 핵심 기업들이 투자금융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업은행이 국제적인 기업 사냥꾼 집단과 손을 잡았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업은행은 민영화를 앞둔 주요 기업들의 절대 지분을 쥐고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거래들이 언론의 무관심과 정부 관료들의 방관 아래 밀실에서 진행되고 있다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