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끝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경영권 승계 구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21일 기자회견에서 이학수 전략기획실 부회장은 “이 전무는 삼성전자의 글로벌고객총괄책임자(CCO)를 사임한 후 주로 여건이 열악한 해외 사업장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체험하고 시장개척 업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과 이 부회장 등이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겠다고 밝힌 것과 달리 이재용 전무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경력 쌓기를 계속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이재용 전무의 직책 등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에 “정해진 것은 없고 5월 중에 삼성전자에서 인사를 할 예정인데 그때 결정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 부회장은 “회장께서 이재용 전무가 경영 수업 중에 있고 아직 승계 문제에 대해 결정된 바가 없다”면서 “이 전무가 주주와 임직원 사회로부터 경영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승계할 경우 회사나 이 전무에게 불행한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전무가 당분간은 경영 일선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1968년생으로 올해 만 40세인 이재용 전무는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대학원 경영관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복귀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해 지난해부터 삼성전자 CCO를 맡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등이 이번 특검에서 배임과 조세 포탈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것과 달리 이재용 전무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재용 전무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헐값에 넘겨받아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당 이득을 챙겼는데도 이와 관련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번 삼성의 경영 쇄신안에서도 전략기획실을 전격 폐지하고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를 실명 전환해 공익 출자하기로 하고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5를 4~5년 내에 매각하기로 하는 등 특검 이후 여론의 반발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정작 이재용 전무의 부당 이득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이학수 부회장이 “지주회사 전환이 쉽지 않다”고 밝힌 것도 주목된다. 이재용 전무 경영권 승계의 핵심은 삼성에버랜드를 중심으로 한 순환출자 구조에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에버랜드를) 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조언도 많지만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 약 20조 원이 필요하고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의 발언은 이 회장이 퇴진을 선언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의식하고 있고 그 중심에 이재용 전무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부회장은 “삼성은 은행업에 진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삼성생명의 계열 분리나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향후 삼성의 지배구조가 여전히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생명을 두 축으로 한 순환출자 구조로 이어질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와 금산분리 완화, 지주회사 요건 완화 등 재벌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도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했지만 그 지분과 매각 자금이 어디로 옮겨갈 것이냐가 관건이다. 물밑으로 가라앉기는 했지만 이재용 전무의 경영권 승계작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가능성이 크다.
다음은 이학수 부회장 일문일답.
– 전문 경영인 체제로 간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삼성 각 계열사 사장을 포함해 경영진이 전부 전문 경영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룹 회장이나 여러가지 하나의 전략적인 중장기 전략 지원을 위해서 전략 기획실이 존재하면서 각 사의 CEO나 임원들이 확실한 전문경영인임에도 그렇게 비춰지지 않았을 수 있다. 포스코나 다른 회사의 전문 경영인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삼성 각사도 지금 CEO들은 전문 경영인으로 사별로 독자적인 경영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쇄신안에 따라 퇴진 안 해도 되는 것 아닌가. 계열사들은 당분간 과도기적인 상황에 있을 수 밖에 없고. 혼선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은 있나.
” 회장께서 물론 지금처럼 여러 회사 전략적인 부분에 리더십을 발휘해주면 회사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은 한다. 그러나 각사의 경영진들이 충분히 회사를 이끌 능력이 있고 모든 것을 갖춘 분들이기 때문에 회사 경영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 이재용 전무가 해외에서 활동을 하게 된다고 했는데 직책이나 이런 것은 정해졌나?
“이재용 전무의 직책등은 정해진 것이 없다. 5월 중에 삼성전자에서 인사를 할 예정인데 회사 차원에서 인사에서 직책이나 일이나 이런 것들이 정해지리라 생각한다. 회장께서 이 전무가 경영 수업중에 있고 아직 승계 문제에 대해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씀했다. 앞으로 이 전무가 주주와 임직원 사회로부터 경영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승계할 경우 회사나 이 전무에게 불행한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 계열사간 의견 사항에 대해 명예회장직을 맡아서 하게 돠나. 일체 관여를 안하는 것인가?
“그런 일들은 전략기획실도 없어지니 사장단 회의를 통해 하는 지 등을 회장께서 말씀 드린대로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는 것이다. 퇴진을 하는 것은 말씀드린대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달라. 각사 경영은 각사 CEO들이 경영을 할 것. 사장단 회의에서는 공통적인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거나 하나의 세부적인 경영보다 공동 관심사라든지 논의할 사안에 대해 사장단 회의에서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