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일이다. 집권 두 달 만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정부에 강력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도덕성에 문제가 좀 있더라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뽑아줬는데 경제는 여전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물론 벌써부터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경제를 살릴 거라는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이번 굴욕적인 쇠고기 협상은 그 알량한 실용주의의 실효성마저 의심하게 하고 있다.


이명박은 어떻게 이 위기를 탈출할 것인가.

일단 현실적으로 재협상은 매우 어렵다. 이제와서 재협상하자고 나서면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미국이 호락호락 물러설 것 같으면 애초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지난달 22일 입법 예고된 한미 쇠고기 협정은 오는 15일 확정 고시 된다. 재협상을 하려면 15일 이전에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마냥 버틸 수도 없다. 국민들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당장 이번 달부터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게 돼 있고 광우병 논란은 오히려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오늘부터 청문회도 시작된다. 뭔가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집권 초기부터 레임덕 현상에 직면할 수도 있다. 레임덕까지는 아니더라도 거대한 민심의 이반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가뜩이나 눈엣가시인 박근혜까지 압박을 하고 있다. 박근혜로서는 지금 국면에서 잃을 게 없다. 오히려 당내 입지를 강화할 절호의 기회다. 이명박의 편은 많지 않다.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이 지원 사격에 나섰지만 논리가 궁색하다.

민주당 역시 잔머리를 굴리고 있지만 입장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민주당으로서는 한나라당과 공조를 하게 되면 한나라당이 먹을 욕까지 다 얻어먹게 된다. 보수 2중대의 한계다. 민주당이 살아남으려면 한나라당과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특별법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위험 부담이 큰 선택이다. 가뜩이나 17대 국회를 보름 남짓 남겨둔 상황이다. 시간도 많지 않고 의석 수도 부족하다. 18대 국회로 넘어가면 특별법은 아예 불가능하다.

그래도 굳이 가정해 본다면 특별법 통과는 국제 협약을 국내법으로 뒤집는다는 의미다. 민주당이야 일단 명분을 얻겠지만 이명박 정부는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민심도 잃고 정국의 주도권도 잃고 오매불망하던 미국의 신임도 잃게 된다. 한미 FTA는 물론이고 실용주의 개혁도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 이명박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한미 FTA가 비준·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축산업자들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없다는 것. 만약 FTA가 통과된 뒤라면 애초에 이런 논의조차 무의미하게 된다.)

결국 지금 시점에서 이명박에게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다. 재협상은 절대 없다고 못을 박은 뒤고 이제 와서 재협상을 하겠다고 나서도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 특별법은 일단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문제는 여론인데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아무리 떠들어 봐야 소용 없다. 고등학생들을 학교에 붙잡아 두거나 집회를 강제해산하는 등의 강경한 해법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미국산 쇠고기가 이명박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됐다는 사실이다. 이명박은 아마도 18대 국회가 시작되면 뭔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지만 사사건건 감정적인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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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오늘 오전에 청문회를 보았는데 질문 하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보여 한숨만 푹푹 나왔습니다. 질문하는 쪽은 대답이 어떻게 나오든 자신이 준비한 말만 계속 하려 들고, 농림부쪽은 국제기준법에 의거했고 전 정부가 계속 진행해 왔던것을 마무리만 지었을뿐이라는 식의 대답만 계속 되니… 에효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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