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지난달 30일 한겨레경제연구소 주최로 열린 국제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를 정리한 것. 세미나 주제는 “웹 진화와 미래의 신문”이었고 나는 토론자로 참석했다.
한겨레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른 바 ‘노드 프로젝트’의 핵심은 “돈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 제 값 받고 팔겠다”는 함석진 뉴미디어전략팀 팀장의 말로 요약된다. 종교(조현)와 공동체(권복기), 환경(조홍섭), 사진(곽윤섭), 맛과 여행(박미향·이병학) 등의 전문 콘텐츠가 선별됐고 콘텐츠 매니저가 배치돼 콘텐츠의 가치와 상품성을 높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NHN과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고 상당한 수익도 창출했다. “무엇보다도 기자들에게 장기적인 비전을 심어준 것이 가장 큰 성과”라는 것이 함 팀장의 설명이다.
한겨레의 새로운 시도를 평가절하할 생각은 없다는 것을 전제로, 아래 그래프를 먼저 보자. 조인스닷컴 가운데 뉴스 부문과 블로그 부문의 트래픽 추이를 따로 집계한 결과다. 코리안클릭 자료.
올해 들어 블로그 부문이 뉴스 부문을 따라잡았거나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방문자 수가 늘어났다. 놀랍지 않은가.
늘어난 방문자 수의 상당 부분은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서 넘어온 것이다. 미디어다음과 조인스닷컴이 제휴를 맺은 시점과 방문자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이 일치한다.
우리나라 인터넷 환경에서 언론사닷컴이 자체적으로 새로운 트래픽을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는 기사 한 건으로 많게는 10만명에서 최대 50만명까지 방문자를 끌어온다. 그리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고정 독자로 남는다. 뉴스로 불러들이지 못하는 독자를 블로그로 불러들이는 셈이다. 우리나라 인터넷 환경에서 이만큼 강력한 트래픽 유발 수단은 아직까지 없다.
서울신문의 경우도 보자.
섣불리 예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파르게 방문자 수가 늘고 있다. 이 경우도 역시 서울신문이 기자 블로그를 개설하고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 피딩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포털 사이트 입장에서도 천편일률적인 일과성 기사보다 독특한 주장과 관점을 담은 이야기들, 기사로 쓰지 못하거나 쓰지 않는 이야기들이 더 잘 팔린다. 이를테면 1개의 언론사와 그 언론사 기자들 200명의 200개의 1인 미디어들이 경쟁하게 된다. 물론 200개의 블로그 가운데 제대로 돌아가는 곳은 얼마 안 된다. 미디어다음이 지난해부터 블로거뉴스를 적극적으로 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잘 돌아가는 몇 안 되는 블로그들이 서울신문의 트래픽을 크게 늘렸다.
일부에서는 언론의 포털 종속을 우려하지만 사실 기자들은 기꺼이 종속되기를 원했다. 물론 블로거들도 마찬가지다. 방문자 수가 늘어나고 자신의 목소리에 영향력이 생기고 개인 브랜드가 강화된다.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된다. 그리고 돈도 된다. 미디어다음 블로거 기자들 가운데는 한달에 6천달러의 광고 수입을 얻었다는 사람도 있다. “포털과 싸워 이길 수 없다면 포털을 이용해야 한다”는 건 노드 프로젝트의 핵심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최병성 목사의 쓰레기 시멘트 사건이나 농촌진흥청 살리기 청원 운동, 블로거들의 세계 은행 영업시간 공동 취재, 전국 대학등록금 공동 취재, 그리고 묻힐 뻔 했다가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분노로 다시 이슈로 끌어올려진 YTN 돌발영상 사건… 누구나 가능하다. 뜻만 옳다면 누구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끌어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기자가 아니라도. 미디어다음이 아니라도. 핵심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바뀌고 있다는 것.
이 지점에서 한겨레와 서울신문은 다른 선택을 했다. 한겨레는 돈 되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기자들을 전문가로 키우겠다고 나섰고 서울신문은 기자들을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난립하는 블로고스피어로 내몰았다. 그 결과 거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서울신문 사이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서울신문에도 멋진 기자들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한겨레나 서울신문이나 둘 다 지향하는 목표는 같다.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더 많은 독자들을 끌어모으고 영향력을 확대하고 새로운 수익모델을 모색하자는 것. 잠깐 복습을 하자면, 웹 2.0의 기본 원칙은 플랫폼으로서의 웹과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그들의 집단지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전문 기자와 콘텐츠 매니저가 특별한 조직적 지원을 받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종교와 공동체와 환경과 사진과 맛과 여행이 과연 한겨레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한겨레가 아니면 하지 못하는 그런 차별화된 콘텐츠일까. 이런 질문이 필요한 것은 서울신문과 달리 한겨레에 거는 독자들의 기대 수준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과연 한겨레 노드 프로젝트는 웹 2.0의 원칙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가. 여기에 플랫폼이 있나. 콘텐츠가 자생하고 상호 공존하는 그런 생태계가 있나. 사용자들, 더 구체적으로 진보적 성향의 독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보장되나. 그들의 집단지성이 제대로 발현되고 있나. 좀 더 나가 한겨레는 88만원 세대의 고민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가난한 사람들이 이명박을 찍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현실… 한겨레는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고민하고 있는가.
1.
예리한 지적이네요. 그래도 이 미친듯한 속도를 쫓아가는 것도 참 힘이 듭니다.
2.
한겨레 20주년인데, 처음 만들어졌던 한겨레는 진보, 합리, 인간성의 플랫폼이었는데, 스스로의 그 가치를 잊어가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3.
서울신문 정체가 좀 애매하다는 생각 많이 합니다. 한경대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최근의 사설이 굉장히 보수적으로 보입니다. 이유가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