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토끼몰이식 진압작전 그 숨막혔던 순간.

11시가 넘어서자 집회 참가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교보빌딩 앞에서 출발해 종각역 사거리를 돌아 조계사를 지나 안국동을 거쳐 광화문으로 진격했다가 경찰버스의 바리케이트를 맞닥뜨렸다. 다시 방향을 틀어 창덕궁을 지나 대학로까지 갔다가 동대문을 거쳐 광화문으로 돌아왔을 때 대오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12시50분. 그러나 진짜 축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사람들은 군데군데 원을 그리고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대학로까지 갔던 시위대가 돌아와 합류하면서 동심원은 더욱 커졌다. 너도나도 노래를 하겠다며 기타를 넘겨받았고 진보신당의 심상정, 노회찬 공동대표와 영화배우 김부선씨 등이 나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심 전 의원 등이 멋쩍은 듯 금방 들어가 버리고 난 뒤 조승수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합류했고 인터넷 방송으로 현장 중계를 하던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도 가세했다. 시위대는 ‘진중권! 진중권!’을 연호하기도 했다. 진 교수는 어울리지 않는 막춤으로 분위기를 한층 띄웠다.

‘아침이슬’과 ‘내 나라 내 겨레’, ‘바위처럼’에 이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르던 때였다. 광화문 사거리를 막고 있던 경찰 버스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경찰 들어온다”고 소리를 쳤다.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거리로 뛰어갔다. 1시35분.

당황한 상당수 사람들이 허둥지둥 반대편으로 빠져나갔지만 오히려 경찰을 향해 뛰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곳곳에서 “뭉쳐라, 뭉쳐라”라는 구호가 들리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열린 바리케이트 사이로 쏟아져 들어왔고 시위대는 경찰들 방패 앞에 줄을 맞춰 앉아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고시철폐 협상무효”, “우리는 정당하다”, “평화시위 보장하라”, “폭력경찰 물러가라”….

기자들이 몰려들어 시위대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플래시를 터뜨렸고 집회 내내 행사 진행을 도왔던 예비군들이 스크럼을 짜고 그 뒤를 둘러쌌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예비군들이 여성분들은 빠져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시위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중학생이나 많아봐야 고등학생이 분명할 것 같은 10대도 군데군데 섞여 있었는데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가 당신들에게 우리를 지켜달라고 했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경찰들은 방패를 앞세우면서 조금씩 간격을 좁혀왔고 시위대는 구호를 외칠 뿐 여전히 꼼짝도 않고 앉아있었다. 조금만 더 밀고 들어오면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시위대 앞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위대는 ‘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했다. 경찰은 바닥에 앉은 시위대와 대치하는 한편 양쪽 인도를 치고 들어와 시위대를 에워쌌다. 시위대가 완전히 고립되자 예비군들은 그때서야 “예비군들은 보내달라”며 우루루 빠져나갔다. 남아있는 시위대는 200여명.

같은 순간 교보문고 앞 인도에서는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쓰려져 들것에 실려 옮겨졌다. 당시 상황을 지켜봤다던 한 60대 남성은 “경찰이 계속 밀고 들어와 그 남자가 같이 밀었더니 경찰이 밀쳐냈는데 넘어지면서 땅에 뒤통수를 들이받았다”고 말했다. 맞은 편 GS25 편의점 앞에서는 예비군복을 입은 30대 남성이 갑자기 실신해 역시 들것에 실려 옮겨졌다. 의료 자원봉사자들이 발빠른 대응이 돋보였다.

경찰에 포위된 남아있는 시위대는 대부분 20대 초반의 대학생들과 일부 10대 후반의 여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다들 표정은 밝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 2조를 외칠 때는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도 보였다.

경찰은 마이크를 들고 “마지막 경고”라며 “길을 열어줄 테니 해산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위대는 “경찰부터 해산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경찰이 미란다 조항을 통보하고 강제 진압을 하려는 순간, 시위대에 섞여 있던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가 나서서 거세게 항의했다.

“도대체 누가 교통을 방해하고 있나. 길을 막고 있는 것은 경찰 당신들이다. 경찰이 먼저 철수를 하면 우리도 인도 쪽으로 빠지겠다. 이미 시위대가 많이 줄었으니 바리케이트부터 풀고 한쪽이라도 차량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해라.”

경찰이 다시 마이크를 들고 시위대에게 물었다. “경찰이 빠지면 여러분도 차량 통행이 가능하도록 비켜주시겠습니까. 약속할 수 있습니까.” 시위대는 잠깐 술렁거렸지만 “네”라고 대답했고 경찰이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시위대 가운데 일부는 이대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맞섰지만 “경찰이 물러났는데 우리가 길을 막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다른 의견에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청계광장으로 이동했다. 새벽 3시였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는 지금까지의 그 어느 집회나 시위와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불법집회를 엄단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리고 실제로 200명 이상을 연행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경찰이 방패를 앞세워 밀고 들어왔을 때 아무런 저항 없이 바닥에 앉아 구호를 외치는 20대 초반 또는 10대 후반의 어린 학생들을 찍어누르지는 못했다. 기꺼이 ‘닭장 차’를 탈 준비가 돼 있는 이 당돌하고 당당한 시위대를 경찰은 애초에 힘으로 꺾을 수가 없었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이들을 잡아가둬도 이 집회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옳다”고 확신하고 있는, 굳이 경찰과 힘으로 부딪히지 않아도 자신들이 결국 이길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이 젊은이들을 도대체 무엇으로 굴복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은 경찰을 먼저 물러나게 만들었고 당당히 걸어서 청계광장으로 옮겨가 마무리 집회를 하고 자진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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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제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의 일을 상세히 적어주셨네요.
    무척 궁금했었는데, 감사합니다.
    직장인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마음이 아프네요~
    주말엔 꼭 새벽까지 있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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