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울지 않는다면 심폐 기능에 문제가 있거나 두뇌 용량이 2MB에도 못 미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비정규직 투쟁의 새로운 역사를 쓴 이랜드 파업투쟁이 1년을 넘겼다. 이 책은 무심히 흘러간 지난 1년, 이랜드 노동자들의 험난한 투쟁의 기록이다. 이 책은 또한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낸 르포 문학의 새로운 실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대형 할인마트인 홈에버 계산대의 여성 노동자들은 밥 먹을 시간은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한다. 이를테면 오후 4시에 일을 시작하면 7시에서 8시 사이가 손님들이 가장 많이 밀려드는 시간이다. 그런데 직원 식당은 7시 반이면 닫는다. 그래서 대부분 수납직원들은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데 그마저도 10시가 넘어야 먹을 수 있다.

홈에버 상암점에서 일했던 조아무개씨는 언젠가 휴일에 화장실도 못 가고 6시간15분 동안 쉬지 않고 일한 적도 있다. 인원이 줄어든 탓에 2층에 계산대가 8개나 되는데 3개 밖에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30분 이상 기다리던 손님들은 수납직원에게 화를 낸다. “너네 지금 뭐하는 거냐. (계산대를) 더 열어야 할 거 아냐. 왜 안 여냐.”

상암점의 경우 수납직원이 140명은 돼야 정상적인 교대근무가 가능한데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80명 이하로 줄였다. 이들은 하루 8시간씩 앉지도 못하고 웃는 얼굴로 많게는 400명 적게는 280명 정도의 손님을 받는다. 집에 갈 때가 되면 목이 잠겨서 말을 잘 못할 지경이 된다고 한다. 계산대 아래 쪼그리고 앉아 울 때도 많다고 한다.

조씨는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모멸감이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우리처럼 그렇게 살아갈 걸 생각하면 정말 슬퍼져요. 아, 아이들이라도 꿈꿀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그런 세상은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조씨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역시 홈에버 상암점에서 일했던 황아무개씨는 어느날 “드디어 전기가 끊겼다”는 아들의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황씨는 차마 답장을 보내지 못했는데, 아들은 “촛불을 켜고 공부하니 집중이 더 잘 되더라”며 황씨를 위로한다. 황씨의 남편은 실직 상태다. 황씨의 월급 80만원이 네 가족의 생활비였는데, 황씨가 해고되면서 전기세마저도 못내는 형편이 됐다.

“전에는 한나라당이니 민주노동당이니 구분도 못하고 회사랑 집 밖에 모르는 평범한 아줌마였는데 어떤게 시민의식이고 사회를 올바르게 봐야지 제대로 살 수 있는 거라는 걸 느끼고 우리 아이를 세상을 제대로 보는 사람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점점 생각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보람이죠.” 역시 상암점 비정규직 윤아무개씨의 이야기다.

윤씨는 “이 싸움을 이기든 지든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야 조금씩 느끼는 것 같아요. 우리의 권리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또 가깝게는 우리 아들부터 멀게는 우리 후세 사람들에게 희망이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지금도 우리가 이길 것 같아요.”

지난 1년 동안 이들의 수입이라고는 민주노총에서 나온 생계비 지원이 50만원씩 두 차례, 재정사업을 해서 벌어들인 수익이 50만원 한 차례. 그리고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 내놓은 퇴직금 7천만원을 쪼개서 받은 돈이 50만원 한 차례. 그게 전부였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 조합원들이 포기하고 일터로 돌아가기도 했다.

“한 달에 80만원 벌고 싶어” 시작한 파업인데 “아이들 학원까지 다 끊어가면서” 버텨왔다. 조씨는 “이렇게 힘들고 긴 싸움을 저희가 버티는 이유는 다시는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몰라서 못했지만 안 이상 변화하지 않은 홈에버로 다시 들어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아무개씨는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던 일을 묻는 질문에 “매장을 점거했을 때”라고 말한다. “그때 생각하면 진짜로 따사로운 봄날 같아요.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데 다들 아무 생각 없으니까 같이 한다는게 좋았죠. 공권력이 투입되기 전까지요.” 지난해 7월, 상암점 점거농성에 들어간 조합원은 50여명이었데 체포하러 온 경찰은 3천명이나 됐다.

이들은 물대포를 맞으면서 연행됐고 이후 2차, 3차 점거투쟁도 모두 실패했다. 고용안정과 차별철폐를 요구하면서 거리로 나섰던 이들은 어느새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에 서게 됐다. “그만두고 나가서 뭘 하더라도 하루 세끼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우리 아이들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는 결연한 의지로 뭉쳤다.

“저 사람들이 왜 저럴까. 저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오죽하면 저럴까 한번쯤은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우리 입장이 돼 달라고는 절대 안 해요. 입장은 누구나 다르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너무 억울해요. 흔히 생각하든 우리만 잘 살겠다고 그런 것도 아닌데, 월급 많이 달라고 싸우는 것 아니잖아요.” 이씨의 이야기다.

이들의 힘겨운 투쟁에 비교하면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는 촛불집회는 한갓 배부른 투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사회에서 이들은 묵묵히 버티고 결연하게 저항하고 있다. 이랜드는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홈에버를 삼성테스코에 팔아넘겼고 삼성은 고용승계를 약속했지만 이미 해고된 비정규직들은 해당사항이 없다.

이들의 힘겨운 투쟁의 과정을 들여다 보지 않고 이들을 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강해서 버티는 게 아니라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들지만 버티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달라”고 말한다. 이들의 투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의 꿈이 이뤄지는 날 우리 사회는 더 좋은 사회, 더 정의로운 사회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 광우병에 대한 걱정과 관심의 10분의 1이라도 비정규직 문제에 쏟으면 어떨까.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온 마음을 다해 지지한다.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 권성현 외 엮음 / 후마니타스 펴냄 /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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