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살의 이명박은 오갈데 없는 신세였다. 그럭저럭 학교는 졸업했지만 학생운동으로 한차례 감방 신세까지 진 터라 여기저기 원서를 내봐도 매번 미끄려지기만 했다. 시험을 아무리 잘 봐도 마찬가지였다. 현대건설의 인사담당자는 아예 대놓고 전과자를 뽑을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명박은 청와대에 편지를 썼다. “한 개인의 앞날을 국가가 막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국가는 그 개인에게 영원한 빚을 지게 된다.” 협박아닌 협박에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이 마음을 바꿔 먹었고 그 편지 덕분에 이명박은 현대건설에 입사할 수 있었다.
면접 자리에서 정주영 회장은 물었다. “건설이 뭐라고 생각하나.”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말은 잘하는구만.” 정 회장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정 회장은 당당하고 당돌한 이명박에게 마음이 갔다.
신입사원 환영회에서도 빙둘러 앉아 술을 돌리는데 이명박은 끝까지 버텼다.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면서 원이 쪼그라들고 나중에는 정 회장과 이명박 둘만 남았다. 이명박은 그렇게 정 회장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태국 공사 현장에서 일할 때 이명박은 말단 경리였다. 이명박이 보기에 그 공사는 적자가 날 게 뻔했다. 그런데 아무도 이명박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중에 일이 터졌을 때 경리부 사람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책임을 뒤집어 쓰게 된 이명박은 정 회장에게 그동안 준비해 왔던 자료를 내밀었다. “이 공사는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적자가 났다. 괜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지마라. 적자가 난다고 이야기했는데 아무도 내말을 듣지 않았다.”
이명박은 그날 태국 공사현장의 경리 책임자가 됐다. 깐깐하고 원리원칙만 고집하는 이명박을 정 회장은 깊이 신뢰했다. 입사 3년째 되던 해, 이명박은 중기사업소 과장으로 전격 승진한다. 본사 경리과로 가기를 기대했던 이명박은 실망도 잠깐, 정 회장의 뜻을 눈치챈다. 고속도로 건설 현장의 인부들과 부대끼면서 이명박은 현장의 험한 분위기를 몸으로 익혀 나갔다. 이명박은 출근 시간을 한시간 앞당기고 아침마다 직원들에게 맨손체조와 구보를 시켰다.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작업능률이 좋았다. 이명박은 1년 반 뒤 부장으로 승진하고 그 6개월 뒤 다시 이사로 승진한다. 입사 4년째, 28살되던 해다. 이명박은 일찌감치 시장을 내다보고 현대건설이 아파트 공사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의 예측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그뒤 현대건설은 아파트 공사에서도 제법 재미를 봤다.
이명박의 초고속 승진은 계속된다. 입사 7년만에 관리담당 상무, 9년만에 전무, 그리고 10년째 되던해 마침내 부사장을 거쳐 12년째 되던해 나이 서른다섯에 현대건설의 사장이 된다. “당신은 사람을 다룰줄 알아. 나를 위해서, 아니 현대건설을 위해 사장을 맡아주게.” 정 회장은 이명박을 친아들보다 더 깊이 신뢰했다.
그뒤 이명박은 현대건설 회장을 거쳐 1992년 정 회장의 정계 진출과 함께 현대를 떠난다. 정 회장과 다른 길로 정치에 입문해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1998년에는 서울시장에 당선된다.
이명박이 눈부신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건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문제에 부딪히면 이명박은 망설이지 않고 정면돌파했다. 과장 무렵 때는 굴삭기를 몰고가 남의 공장 앞 도로를 파헤쳐 놓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사장 때는 서슬퍼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도 끝까지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기도 했다. 운이 좋았겠지만 이명박은 무슨 일을 시켜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고 그 과정에서 꼭 필요한 사람을 재빨리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이명박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간에서는 나를 신화의 주인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신화는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만 신화일뿐, 안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겹겹의 위기와 안팎의 도전으로 둘러싸인 냉혹한 현실이다. 시련이라는 험한 파도 앞에서 나는 우회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이 작은 용기를 사람들은 신화라고 부르는 것 같다.”
스물네살의 당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자신감 뿐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당신 편으로 만들어라. 작은 일에 매이지 말고 늘 남보다 멀리 내다봐라. 보다 큰 꿈을 꾸고 기꺼이 무모하게 덤벼들어라. 도전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우리나라는 몇몇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살리고,망하게했다. 그러나 정치인에게는 최후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빈국인데,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사는 정치인들이 한심하다.에너지 뿐만아니라,노인,복지문제,교육 ,환경,무역 나아가 외교문제 까지도 완전히 해결할수 있는것을 외면하여, 문제로 만든 무능에 할말이 없다 이제라도 이명박 전시장이 정치를 버리고 우리나라의 문제를 해결할수있는 사업을 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될 수 있을 텐데…..
국가의 건설은 백년 대계라 합였읍니다. 대원군 처럼 건설만 한다고 되는것도 아니고 연기가 바람에 날리듯 바람이 어디로 부느냐에 따라서 종으로 사느냐 주인으로 사느냐. 타협이냐 전쟁이냐. 입니다. 세계지도를 펼치고 보시면 어디로 흐르는지 보일것입니다. 밑에서 위로 동에서 서로- 그쎄요 어디서보느냐 에 따라서 다르지요. 중국땅에 헤메도는 동포들 . 가르쳐 놓으면 모두 바다건너 가버리는군요
김빠지게 왜??? 서로 반목하기 때문이지요. 친척과 잘지내려면 두루두루 찿아보고 관계가 있어야지요. 얼굴도 모르는 사돈집에가서 돈꿔달라면 딸이 이혼당하기 십상이죠.
교육에서 제외되여 삐뚜러진 사람들이 많다고 봐야죠.
누가 그러드군요 남아있는 친구가 없다고? 배우고 가진사람은 다뜨고….구박받던 부녀자들 출산 안해서.동남아에서 데려 오죠. 이게 순환 입니다. 좀 트고 살아야 합니다 서로서로 사랑 해야죠 끌어 않아야 하는데 분위기 험악 하네요. 휴지 두통이 다 젖었군요. 난 멀리서 조국을 바라보는 어머니 입니다. 비들기 올림.
이명박이 말을 믿느냐?
늙은 여우같으니..
정말 죽이고 싶다…
쥐랄하네 자슥이…
이명박이 개새끼만도 못한 놈이라는거 다 알고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