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걷잡을 수 없이 폭락하면서 자사주를 사들이는 기업이 부쩍 늘어났다. 주가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현금을 쏟아부어 주식을 사들이면 당연히 주가가 뛰어오른다. 문제는 이런 주가 움직임은 기업의 가치와는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데 있다. 자사주 매입은 일시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릴 뿐 만약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언젠가는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게 돼 있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앞다퉈 자사주 매입에 나서는 것은 주주들 눈치를 보기 때문이거나 경영진이 주주들의 이해관계에 복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7일 26면 ‘자사주 사들여 주가방어 나선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업의 펀더멘털과 관계없이 최근 수급사정이 악화된 데 따라 주가가 지나치게 떨어진 종목이 발생하자 자사주 취득을 통한 기업들의 주가관리가 본격화하고 있다”면서 “자사주 취득이 수급을 개선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머니투데이도 7일 31면 ‘너도 나도 자사주 매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근 자사주를 매입한 두산건설 관계자의 말을 인용, “최근 유상증자설 등의 루머로 불안 심리가 확산돼 주가가 적정주가보다 현저히 저평가된 상태”라며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은 이런 불안감을 해소해 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자사주 매입은 회사 차원에서 주가가 저평가 돼 있다는 판단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주가에 긍정적인 신호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들 신문의 논리대로 최근의 주가 하락이 펀더멘털과 관계없이 수급사정이 악화된 탓일 뿐이라면 수급이 살아나면 언제라도 다시 주가가 펀더멘털에 수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신문은 자사주 매입을 통한 동원한 ‘주가관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오히려 장려하고 있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유동 물량이 줄어들면서 주가의 움직임이 탄력을 받게 된다. 만약 이렇게 사들인 자사주를 소각하게 되면 자기자본 이익률이 개선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근본적인 펀더멘털 개선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주가를 띄우기 위한 목적으로 막대한 현금이 주식시장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자사주 매입은 신자유주의와 주주자본주의의 핵심이기도 하다.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등 펀더멘털 개선에 투자돼야 할 기업의 현금을 단순히 일시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주식시장에 쏟아붓는다. 자사주 매입은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을 기회비용으로 한다.

과거 여러 사례들을 분석해 보면 자사주 매입 기업들은 실제로 전체 거래소와 코스닥 기업 평균 대비 주가 상승률이 높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주식수가 줄어든 기업들 주가 상승률 평균은 65%로 전체 평균 18%의 3배나 됐다. 자사주 매입의 효과이기도 하고 자사주 매입에 막대한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이들 기업이 상대적으로 우량 기업인 때문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기업들 자사주 매입 규모가 해마다 천문학적인 규모로 늘어나고 있고 그만큼 주식시장을 통한 부의 이전 효과도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산업은행 산은경제연구소 최창현 연구원에 따르면 기업들이 현금 배당보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선호하는 이유를 세금 문제에서 찾는다. “특정 주식을 장기 보유한다고 가정하면 매해 일정액의 배당금에서 세금을 공제하는 것보다 배당금을 이익소각의 형태로 계속 유보하다가 매각할 때 한번 공제하는 것이 더 큰 복리효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배당보다는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시장에 주는 메시지가 더 강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배당은 해마다 규모를 늘릴 때는 상관없지만 만약 규모를 줄일 경우 오히려 주가가 폭락하는 경우도 있다. 기껏 배당을 주는데도 많지 않다는 이유로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 자사주 매입은 많든 적든 투자자들에게 환영을 받을 수 있다.

더 중요한 대목은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대주주 지분 비율을 오히려 높여주고 영향력을 늘려준다는 사실이다.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준다는 명목이지만 실제로 대주주가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 경영진 입장에서도 스톡옵션을 받기 위해 주가를 끌어올려야할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펀더멘털을 개선하기는 요원하지만 당장 자사주를 사들이기는 훨씬 쉽다.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두고 논란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펀더멘털에 미치는 효과는 거의 또는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주주들은 환영하겠지만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희생하는 대가로 주주들에게 이익을 몰아주는 머니게임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언론은 노골적으로 자사주 매입을 부추기고 정작 이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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