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상식 밖의 궤변을 늘어놓았는데 언론이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보기 좋게 받아쓰느라 고심하는 모습이다. 그 궤변이 모든 언론의 최대의 광고주, 삼성을 위한 궤변이기 때문이다.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경영진들이 16일 선고공판에서 모두 무죄나 면소,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특검의 공소가 부실하다는 핑계를 댔지만 삼성의 면죄부는 특검과 법원의 합작품이라고 보는 게 맞다.


참고 : 삼성 재판 결과, 참을 수 없는 궁금증 7가지. (이정환닷컴)

두고두고 논란이 되겠지만 이번 판결문에서 발견되는 어처구니 없는 궤변을 몇 문장 뽑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조세포탈이 적발된 뒤에도 세금을 바로 납부할 것을 다짐하면 불법 행위의 책임을 줄일 수 있다.
– 비서실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도 결국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 이사회 결의 등 절차를 갖췄다면 3자에게 헐값에 경영권을 넘겼더라도 처벌할 방법이 없다.
– 스스로 손해를 용인했기 때문에 배임이 아니다.
– 주주의 이익은 회사의 이익이고 회사에 손해를 안 끼쳤으면 문제될 것 없다.
– 계열사 입장에서 보면 배임이 될 수 있지만 그건 이 재판에서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 시세 대비 얼마나 싼 값에 넘겼는지는 검찰이 증명해야 한다. 비상장 주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증명 못하면 무죄다.
–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는 걸 몰랐다면 위법이라고 볼 수 없다.
– 부정한 방법으로 번 돈 아니면 조세 포탈이 무거운 범죄는 아니다.
– 조세포탈 규모가 크지만 이는 삼성전자 주가가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 징역 3년이 넘으면 집행유예가 안 되지만 징역 5년의 경우 2년6개월씩 나눠서 각각 집행유예를 줄 수 있다.

중앙일보는 5면 “주주들 스스로 용인한 손해… 배임죄 묻기 어려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환사채 발행이 비서실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해도 실권으로 인한 기존 주주들의 손해는 스스로 용인한 것이므로 배임죄로 보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단을 아무런 비판없이 그대로 인용했다.

엄밀히 따지면 법원은 배임죄가 아니라 조세포탈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애초에 특검의 공소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었지만 대부분 언론이 이 전 회장 등의 무죄 사실에만 주목했다. 에버랜드에 대해 배임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에버랜드의 주요 주주였던 삼성물산 등 계열사들에 대해 배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부분도 대부분 언론이 간과했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사건에 대해서도 중앙일보는 “BW를 발행한 시점에서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으려면 법정형이 무기징역 이상이거나 이득액이 50억원 이상 인정돼야 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 주당 순이익 증가율을 최대로 봐도 44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인용했다. 44억원의 부당이득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지만 이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았다.

서울경제는 사설에서 아예 이 전 회장이 중형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는 것과 상반된 평가다. 이 신문은 “형량의 적정 여부를 떠나 개인으로서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불행”이라며 “반기업 정서에 따라 과민반응을 한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또 “이 전 회장은 이번 유죄판결로 기업인으로서는 물론이고 국제올림픽위원으로서 활동하는데도 많은 타격이 예상된다”면서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것을 잃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경제를 위해 법적 정의를 희생할 수도 있다는 다분히 위험한 논리다.

서울신문도 “삼성, 경제위기 극복 선봉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삼성의 경영권 불법승계를 주장해온 측에서는 불만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벌써부터 대외 신인도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면서 “삼성에 흠집을 가하는 장외 공방은 자제하고 앞으로 있을 상급심의 법리 해석과 판단을 지켜봤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 정도면 거의 삼성 사외보 수준의 논리다. 이 신문은 “삼성은 1993년 신경영 선언으로 재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면서 “이번에도 위기 극복의 선봉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일부 신문이 “사법정의 외면한 솜방망이 판결”이라며 비판을 쏟아냈지만 대부분 신문은 판결문을 단순 인용하는데 그치거나 아예 평가를 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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