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원의 어부사 가운데 탁영가라는 게 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데, 정운찬 서울대 교수의 국무총리 내정 소식을 듣고 이 시가 생각이 났다. 발 씻을 물에 왜 갓끈을 담그려고 하는 것일까.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濯兮 可以濯吾足.

케인지언과 MB노믹스의 기묘한 만남.

스스로를 케인지언이라고 부르는 정운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국무총리로 내정됐다. 케인지언이란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라는 의미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완전고용을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유방임주의가 아닌 소비와 투자, 즉 유효수요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보완책, 공공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영국의 경제학자다. 케인즈주의와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MB노믹스의 만남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언뜻 보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전제로 하는 케인즈주의와 이명박 정부의 MB노믹스는 닮은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의욕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4대강 개발사업은 케인즈주의가 이름을 얻던 무렵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 이를테면 테네시강 댐 개발 사업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러나 4대강 개발사업과 뉴딜정책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일단 뉴딜정책에서 건설·토목부문 예산이 10%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나머지 90%는 복지와 사회 안전망 확보에 투입됐다. 실업급여와 의료보험도 도입됐고 대규모 증세가 이뤄졌다. 실제로는 뉴딜정책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2차대전을 치르면서 막대한 재정을 지출한 결과 실업문제가 해결되고 케인즈주의의 성과가 입증됐다는 게 정설이다. 케인즈주의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의 무차별 감세와 규제완화는 뉴딜정책과 거리가 멀고 케인즈주의와도 애초에 방향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재정지출을 통한 유효수요 창출이라는데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기조는 기업이 잘 되면 경제가 살고 경제가 살면 고용이 창출된다는 가정을 두고 있지만 케인즈주의는 유효수요 확보, 다시 말해 내수기반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는 정반대의 가정을 두고 있다.

물론 케인즈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쓴 편지에서 “돈 항아리를 땅 속에 묻어 놓고 사람들에게 땅을 파서 갖고 가게 해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쓴 적도 있지만 이는 4대강 개발사업의 ‘삽질’과는 맥락이 전혀 다르다. 핵심은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효수요 창출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이 필요하다는데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수요보다는 공급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개발사업은 표면적으로는 고용창출과 환경개선을 목표로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건설회사들 배를 채워주는데 그칠 개연성이 크다. 케인즈주의가 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정하고 보완하는데 주력하는 반면 MB노믹스는 철저하게 시장원리를 강화하는데 주력한다.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추진하고 있지만 건설·토목부문에 집중돼 있고 대부분의 정책에서 정부의 개입을 배제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전형적인 신자유주의를 지향한다.

정운찬 교수의 기용이 뜻밖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 총리 내정자는 “경제이론으로 효력을 상실한 레이건 정부 시절의 공급 경제학에 기대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것은 큰 실수(지난해 12월 ‘지식의 지평’ 기고문)”라고 지적한 바 있다. “감세가 실제 경제효과 없이 소수부자들의 재산을 불려주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의 정설로 굳어진지 오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 교수의 과거 발언과 그의 평소 주장을 돌아보면 애초에 이명박 정부와는 노선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상당수 언론이 정 교수의 기용에서 화합과 통합, 중도실용 등의 의미를 읽어내고 있지만 이 대통령과 정 교수 사이에는 애초에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근본적인 정책 기조의 변화가 있거나 심각한 마찰이 불가피할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결국 정 총리 내정자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를 바꾸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가 학자적 양심을 희생하면서 적당히 타협하거나 아니면 심각한 불협화음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상당수 언론이 그의 과거 발언을 인용하면서 그를 비판적인 인사로 소개하고 있지만 애초에 세계관 자체가 다르다고 보는 게 맞다. 정 총리 내정자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명박 대통령과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밝힌 것은 이 기묘한 만남의 성격을 말해준다.

한편 자유선진당 심대평 전 대표의 영입이 무산된 뒤 정 내정자가 막바지에 검토 대상에 올랐다는 점도 청와대나 여권 내부에서 충분한 논의가 없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진보적인 이미지의 충청권 총리를 영입해 중도실용 노선을 강화하고 돌아선 민심을 달랜다는 게 이번 개각의 핵심 의도였겠지만 케인지언과 MB노믹스의 결합은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만남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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