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에 자금을 지원하는 문제를 두고 미국 GM 본사와 우리나라 정부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GM은 한국 정부가 먼저 지원을 하지 않으면 포기할 수도 있다면서 으름장을 놓고 있고 우리 정부는 본사의 지원 없이 먼저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벼랑 끝으로 내닫는 전형적인 치킨게임의 양상이다.
일단 발등의 급한 불은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할 선물환 계약이다. 모두 43억700만달러 규모. 당장 5월과 6월에만 8억9천만달러를 막아야 한다. 만약 만기 연장이 안 될 경우 당장 달러를 조달해서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연말까지 환차손 규모가 2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GM대우는 지난해 2903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고도 8757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선물환 등 파생상품 거래에서 1조4986억원의 손실을 냈기 때문이다. GM대우의 보유현금은 5천억~6천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년 안에 갚아야 할 유동부채가 5조8542억원, 현금화가 가능한 유동자산은 4조8897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발등의 불을 끄더라도 정상화가 되기까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한동안 자금지원이 계속돼야 하고 여전히 회생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다. GM 본사는 당장 제 앞가림도 못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뒷감당이 두려워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채권은행들은 추가 지원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GM대우의 지분은 GM인베스트먼트 48.2%, 스즈키 11.2%, SAIC 9.9%, GM AP 2.7% 등 GM 계열사들이 모두 72%를 보유하고 있다. 산업은행 등 국내 채권단이 보유한 GM대우 지분은 28%다. 산업은행은 일단 GM 본사가 지원을 약속하면 우리도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채권은행들을 대표해서 선물환 만기 연장을 독려하고 있기도 하다.
일단 분명한 것은 GM 본사가 GM대우에 자금지원을 할 여력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 정부와 채권은행들의 추가 부담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가 대주주 책임론이다. 만약 회생에 성공한다면 결국 GM 좋은 일만 시키는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왜 세금을 들여서 미국 회사를 돕나.
최근 거론되고 있는 출자전환 논의는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자금을 지원하되 증자를 통해 GM대우의 보통주를 매입하자는 이야기다. 필요하다면 기존 주주들의 감자도 할 수 있다. 채권은행들이 상당한 부담을 지게 되겠지만 GM대우가 지금 이대로 파산할 경우 경제 전반에 미칠 충격과 기회비용을 비교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유화 절차를 밟고 있는 GM 본사의 경우도 주목할 만하다. GM은 정부 구제금융 100억달러와 노동조합 출연금 102억달러, 무보증 채권 270억달러 등 모두 472억달러를 출자전환하기로 했다. 이 경우 기존 주주의 지분은 1% 수준으로 쪼그라들고 정부가 50%의 지분을 확보해 최대주주가 된다. 노조가 39%, 채권단이 10%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정부가 민간기업의 지분을 인수하기에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유화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래서 특혜 지원의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소유의 형태가 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공적자금을 집행하되 그 혜택이 사회적으로 배분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유화가 두려운가. 우리는 이미 10년 전 외환위기 때 지금의 GM대우와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 대우그룹 계열사들과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를 비롯해 현대그룹 계열사들, 우리은행과 SC제일은행, 외환은행, 한국씨티은행 등을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려낸 바 있다. 만약 파산하거나 말거나 이들을 모두 시장원리에 맡겨뒀으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이를 다시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공적소유가 사적독점으로 변질되는 문제가 있었지만 정부는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하고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해야 한다. 대마불사의 신화를 다시 확인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언론의 반응은 매우 조심스럽다. 경제 논리로만 보면 GM대우는 파산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맞을 수도 있다. 언론 역시 3자인데 채권단에게 추가 자금지원을 강요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정부의 개입이나 공적자금 투입 역시 시장 논리에는 맞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언론이 정부와 GM의 치킨게임을 GM대우의 위기를 단순 중계하는데 그치고 있다.
동아일보는 28일 사설에서 단호하게 “미국 본사의 회생 여부가 불투명하고 GM대우의 강도 높은 자구방안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 세금을 멋대로 퍼주겠다는 정치 행태는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이 신문은 “일단 정부 세금이 들어가고 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끝없이 국민 세금을 잡아먹는 블랙홀이 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서울경제는 27일 “PEF 방식 대기업 구조조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금융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 “산업은행이 중심이 돼 사모펀드(PEF)를 조성하고 다른 기관 투자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이 신문은 “산업은행이 최대 지분을 소유하게 되지만 경영은 기존 경영진에게 위임하는 형태가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은 29일 “GM대우 회생 핑퐁게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GM이 GM대우 경영권을 갖는 이상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산업은행의 자금 지원이 쉽지 안흥며 GM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방법도 증자 뿐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최악의 경우 법정관리를 통해 독자 생존 또는 3자 매각 등 현실적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뉴스는 29일 “GM 지분 담보로 자금 지원 후 매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추가 지원금만큼 GM의 GM대우 지분을 담보로 잡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독일의 GM오펠도 비슷한 방식으로 지원을 받은 바 있다. 이 신문은 그러나 “곧바로 회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원금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와 산은이 개입하는 경우에도 GM이 손을 뗄 경우 미국 판로가 막히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수출 물량의 60% 정도가 GM의 시보레 브랜드로 판매되기 때문에 당장 수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GM 입장에서도 당장 자금 지원은 못하지만 중국 시장의 교두보인 GM대우를 선뜻 포기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GM대우의 선물환 계약도 자금지원에 앞서 명확히 가려져야 한다. 왜 1천원 미만의 터무니 없이 낮은 환율에 2011년까지 장기계약을 체결한 것일까. 이 때문에 GM대우가 천문학적인 손실을 보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수익을 내는 금융기관은 어디일까. 이대로라면 자칫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이 고스란히 파생상품 손실로 빨려 들어가게 될 가능성도 있다.
만약 GM대우에 우리 정부의 지원이 결정된다면 파생상품 손실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 아울러 금융회사들도 그 부담을 나눠서 떠안아야 한다. 채권단에 마냥 내맡겨 둘 게 아니라 최종 대부자인 정부가 좀 더 주도적으로 개입하고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이해관계의 충돌을 중재하고 이 극단적인 치킨게임을 끝내는 건 결국 정부의 역할이고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