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미래의 라디오는 이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라스트에프엠(last.fm)은 당신이 좋아할 것 같은 음악을 계속해서 들려준다. 당신의 음악 취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들을 수도 있고 별도의 어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설치할 수도 있는데 이 어플리케이션이 당신의 컴퓨터를 뒤져서 당신이 평소에 듣는 음악 파일을 분석하고 당신의 취향을 알아낸다. 그래서 당신이 모르는, 당신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음악을 찾아서 흘려 보낸다.
당신보다 당신의 취향을 잘 알아맞히는 이런 시스템은 고도의 인공지능인 것 같지만 사실은 수천만 회원들의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다. 라스트에프엠은 수천만 회원들이 어떤 음악을 반복해서 듣거나 그냥 넘겨 버리는지 데이터를 수집한다. MP3 플레이어를 컴퓨터에 연결할 때마다 그들이 하루 종일 무슨 음악을 들었는지가 집계된다. 회원들은 이곳에서 비슷한 취향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음악을 서로 추천하거나 최신 음악을 검색한다.
하루 종일 내가 좋아하는 음악만 흘러나오는데 좋은 음악은 몇 번이라도 되풀이해서 들을 수 있고 성가신 광고나 뉴스는 듣지 않아도 된다. 듣고 싶은 음악을 하나만 찾으면 비슷한 음악을 이어서 들려준다. 완벽한 개인 방송국 아닌가. 음악을 쏘아준다(scrobble)고 표현하는데 어떻게 이런 음악을 찾아내는지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아이팟터치나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라면 와이파이 무선 인터넷으로도 접속 가능한 어플리케이션이 나와 있다.
라스트에프엠은 회원들에게 공짜로 음악을 들려주고 저작권자들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한다. 핵심 수입은 배너광고인데 지출 대비 수입이 신통찮았던지 올해 3월부터는 미국과 영국, 독일 이외의 지역 회원들에게는 달마다 3달러씩 이용료를 받고 있다. 아쉽긴 하지만 크게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다. 미국의 CBS는 2007년 5월, 이 애매모호한 수익모델의 회사에 무려 3억2천만달러를 투자했다.
2000년 초반 닷컴버블 시절, 라스트에프엠처럼 스트리밍 방식의 음악 서비스를 하는 회사들이 우리나라에도 여럿 있었는데 모두 망했다. 차이가 뭘까. 상당수 사람들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데 충분한 비용을 지출할 용의가 있다. 음반 회사들은 온라인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고 저렴한 가격에 디지털 음악 파일을 구매하려는 수요는 어둠의 경로로 내몰렸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MP3 파일을 찾아서 재생하는 일은 여전히 불편하고 성가시다.
라스트에프엠의 성공은 애초에 사람들의 음반 구매와 소비 패턴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세상에 음악은 무궁무진하고 누구도 모든 음악을 소유할 수는 없다. 라스트에프엠은 음악을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만약 당신의 MP3 플레이어가 네트워크에 접속 가능하다면 굳이 음악을 꾸역꾸역 담아서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좋아하는 음악을 언제라도 무제한 들을 수 있다면 한 달에 3천원 정도는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지 않을까.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세계적으로 3천만명이 넘는 회원들의 개인화 데이터와 그들의 충성도는 라스트에프엠의 확고한 진입장벽이 됐다. 음악이야 말로 글로벌한 상품인데 이 회사는 일찌감치 이를 어떻게 포장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서 듣고 싶어하는 수요도 물론 있겠지만 상당수 사람들이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듣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그게 바로 웹 2.0 시대에도 여전히 라디오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다.